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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6, 2016

‘식물 국회’라는 오명…원인은 박 대통령과 언론에 있다


2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이 낸 테러방지법에 대한 표결이 시작되자 야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안은 새누리당 의원 156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야당에선 김영환 국민의당 의원이 유일하게 표결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졌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9대 국회에 대한 국민들 인식이 나쁜 이유는?
‘역대 최악의 국회’ 오해 둘러싼 거짓과 진실
이번 임시국회 회기는 3월10일까지입니다. 새누리당은 3월9일이나 10일 본회의를 열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관계법 등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야당은 반대 의사가 명확합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노동관계법을 직권상정할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4·13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 법안 처리를 위해 국회가 다시 열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19대 국회는 이제 끝난 것입니다.
오늘은 19대 국회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정말 그럴까요?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였을까요?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19대 국회는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가운데 개원했습니다.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으로 무척이나 시끄러웠습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2015년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국회가 예산 심의를 엉성하게 했고 법안에 대한 토론도 생산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건 매우 주관적이고 막연한 평가입니다. 과거에도 국회에서 예산심의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습니다. 법안에 대한 토론이 생산적으로 이뤄진 적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산과 법안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행정부가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9대 국회를 역대 최악이라고 몰아붙이는 근거가 뭘까요? 국회선진화법입니다.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몸싸움과 폭력이 난무하던 ‘동물국회’는 사라졌지만 야당이 반대하면 법안 처리를 하나도 할 수 없는 ‘식물국회’가 됐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주로 새누리당과 친여 성향 논객들이 그런 주장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검색해보면 19대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1만7748건 가운데 15.0%인 2667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18대 국회에서는 1만3913건의 법률안 가운데 2353건(16.9%)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17대 국회에서는 7489건 가운데 1915건(25.6%)이 통과했습니다.
국정실패 책임 국회로 떠 넘기는 대통령의 ‘낙인 효과’와
여야 정치권 ‘양비론’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물타기 효과’
‘낙인’ ‘물타기’ 공통점은 ‘정치혐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법안 통과 비율이 다소 낮아지고는 있지만 이전 국회에 비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의정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불필요하게 많이 제출하는 추세를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의원발의 법률안은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 19대 1만6656건으로 급속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안처리 비율은 근거로 19대 국회를 식물국회라고 비판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양이 아니라 질로 따져보면 어떨까요?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제출한 주요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대부분 이미 통과되었습니다.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주요 법안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관계법 등 몇 가지 되지 않습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을 장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법입니다. 이 법이 통과된다고 당장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둘러 제정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노동관계법은 앞으로 상당기간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중요한 법안입니다. 노사간 의견이 워낙 달라 노사정위원회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면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정부의 뜻대로 서둘러 처리할 법안이 아닙니다.
19대 국회를 식물국회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예산안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헌법이 정한 예산통과 시한 하루 전(12월1일)에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상정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19대 국회에 들어와서 정부 예산안이 법정기일 안에 통과되는 전통이 세워졌습니다.
식물국회에 대한 이러한 반론은 야당의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국회사무처가 전문가들의 분석을 거쳐 내놓은 논리적 반박입니다. 19대 국회가 식물국회로 전락했다는 새누리당과 친여 성향 논객들의 주장은 정치적 공세일뿐 사실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한국갤럽이 2015년 10월6~8일 조사해서 발표한 여론조사가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국회의 역할을 잘했다고 보는지 잘못했다고 보는지 물었습니다. 82%가 ‘잘못했다’고 평가했고 10%가 ‘잘했다’고 응답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2013년 5월부터 8월까지 조사에서는 잘못했다는 답변이 65%~80%였는데 2014년 11월과 2015년 5월 조사에서는 90%에 육박했다고 한국갤럽은 밝혔습니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이렇게 나쁜 이유가 뭘까요? 특히 19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첫째, ‘박근혜 낙인 효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뒤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고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갑자기 사퇴하자 2013년 3월4일 대국민담화를 한 일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국회에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면서 우리 경제를 새롭게 일으킬 성장엔진 가동이 늦어지고 있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기회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입니다.”
담화의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태도가 더 놀라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듯 연설했습니다. 분노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입니다. 국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강압적 태도는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대통령 취임 뒤 지금까지 감정을 드러내며 국회를 비난한 연설은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지난 2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는 테러방지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관계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국회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손날로 책상을 열번 쿵쿵 내리치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비난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경제가 침체하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대체로 행정부의 무능과 잘못 때문이지 국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도 현직 대통령의 발언은 힘이 있습니다. 국정 실패의 책임을 국회로 떠넘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3년 동안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사람들의 머리에 깊숙이 박혔습니다. 낙인 효과입니다. 그리고 그 효과가 지금 국회에 대한 극도의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언론의 물타기 효과’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오래전부터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잘못이 명백한 경우에도 그 책임이 여당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거나, ‘여야 정치권’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을 동원해 양비론으로 물타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왜곡·편파성·선정성 등을 앞세운 종합편성채널(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이 저널리즘의 가치를 추락시키고 방송 뉴스 전체의 판도를 바꿀 태세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승객들이 종편을 시청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사실 왜곡·편파성·선정성 등을 앞세운 종합편성채널(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이 저널리즘의 가치를 추락시키고 방송 뉴스 전체의 판도를 바꿀 태세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승객들이 종편을 시청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여야 정치권’은 대체로 정당과 국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언론이 ‘여야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하면 할수록 국회의 이미지는 점점 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의 이러한 물타기 보도의 효과는 2011년 11월 출범한 종합편성채널(종편) 출범 이후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종편을 많이 시청하는 계층일수록 확실히 국회에 대한 반감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박근혜 낙인 효과’와 ‘언론의 물타기 효과’의 공통점은 강한 ‘정치혐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회가 테러방지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3월1일 밤 더불어민주당의 유인태 의원이 본회의장 발언대에 올랐습니다. 법사위에 계류중인 사형폐지법안을 본회의에서 토론해보자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인태 의원은 “여기 초선 의원들 중에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사람들이 많을텐데 국회의원 4년을 하니까 죄인이 되지 않았느냐. 지금처럼 정치혐오가 심해지면 이 나라 이 민족의 미래가 암담하다. 상생의 정치, 타협의 정치를 위해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제 정치를 그만두는 원로의 간절한 마지막 당부가 ‘정치혐오 극복’일 정도로 우리나라의 정치혐오는 극에 달해 있습니다.
‘정치혐오’는 기득권층의 반정치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 현상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우리나라 기득권층은 언제나 정치혐오를 부추겼습니다. 투표율이 낮아져야 기득권층이 선거에서 이기고 계속 집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지독한 정치혐오가 최근 잠시 위력을 잃는 신기한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자 야당은 무제한 토론으로 맞섰습니다. 47년만에 등장한 필리버스터는 국민들에게 국회와 국회의원의 존재 가치를 모처럼 재확인시켜준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열흘동안의 필리버스터가 끝나고 한국갤럽이 3월2~3일 조사해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에 대해 40%가 ‘잘한 일’, 38%가 ‘잘못한 일’이라고 응답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박근혜 대통령이 무제한 토론을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하락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했던 19대 국회 평가 여론조사를 필리버스터 이후에 다시 했다면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가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강하게 주장하면 그렇게 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누군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정치혐오를 부추겨 반사이득을 취하려는 기득권층은 아닌지, 기득권층이 퍼뜨리는 정치혐오에 감염된 사람은 아닌지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2~3년 뒤 또 누군가는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말할 것입니다.
‘역대 최악’을 따지려면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을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0%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약속했지만 지금 우리나라 모습은 어떻습니까? 경제민주화는 증발했습니다. 수출은 줄고 성장률은 둔화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한미관계, 한중관계가 모두 뒤틀리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믿고 따라줄까요? 참 궁금합니다. 국민들의 인내가 바닥나면 박근혜 대통령은 순식간에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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