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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ctober 31, 2016

남대문엔 중국인 관광객만.. 1층 점포도 문 닫았다

31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문을 닫은 한 화장품 가게 앞에 임차인을 찾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가게뿐 아니라 문을 닫은 점포가 시장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김재용 남대문시장 상인회장은 "손님 끌기 좋은 1층 점포가 폐점을 하고 서너 달째 임대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경기가 이만저만 가라앉은 게 아니다"고 했다. 손님이 없어 종업원이 우두커니 서 있는 가게가 여럿이었다. 한 화장품 매장 점원은 "중국인 관광객을 빼면 물건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백화점·대형마트·식당 발길 뚝 끊겨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소비가 갈수록 움츠러들고 있다. 소득이 늘지 않고 향후 경제 전망도 밝지 않아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통계청은 이날 9월 소매판매가 8월보다 4.5% 감소해 5년7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는 자동차·가전제품 같은 내구재, 옷·가방 등 준내구재, 음식료품을 비롯한 비내구재 등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모든 지수가 일제히 8월보다 하락했다. 특히 비내구재와 내구재 하락 폭은 각각 5.1%, 6.1%에 달했다.
소비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휴대전화 판매가 갤럭시노트7 사태로 발목을 잡힌 영향이 컸다. 9월 초 갤럭시노트7이 판매 중단되면서 9월 통신기기 판매액은 8월보다 11.6% 급감했다. 삼성전자는 국내에 50만여대가 판매된 갤럭시노트7을 연말까지 모두 교환해야 한다. LG전자도 3분기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이 2분기 대비 4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먹는 데 쓰는 돈도 줄여나가고 있다. 배추를 비롯한 추석 농산물 가격 상승 탓에 9월 음식료품 소비가 7.0% 줄었다. 외식도 자제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한우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작년 이맘때는 하루 20~30명의 손님이 찾아왔는데, 지금은 서너 명에 그친다"며 "3년 전 식당을 내기 위해 받은 대출 빚도 다 갚지 못했는데 최근 직원들 월급 줄 돈이 없어 또 대출을 받아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연말까지 버텨보고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으면 폐업할 생각"이라고 했다.
백화점·대형마트에서도 매출이 줄고 있다. 9월 소매점 판매지수는 백화점(-4.1%), 수퍼마켓(-3.5%), 전문소매점(-7.3%) 등에서 모두 8월 대비 마이너스였다. 임진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2012년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이 2%대 초반에 그치고 있고, 경제 주체들이 향후 경기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가계소득이 늘어도 소비를 늘리지 못하고 저축만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올해 2분기 평균소비성향은 70.9%에 그쳤다. 쓸 수 있는 돈을 100만원 들고 있어도 70만9000원만 썼다는 뜻이다. 2분기 평균소비성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한 2008년 4분기(74.6%),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2분기(73.3%),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작년 2분기(71.6%)보다 모두 낮은 역대 최저치다.
◇4분기 소비 더 나빠질 듯
문제는 소비가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향후 조선업·해운업을 비롯한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해서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쏟아지면 소비 여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급증하는 가계부채도 소비 발목을 잡는다. 가구당 평균 부채는 지난해 이미 6000만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기업들의 재무 상황이 나빠져 내년에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9월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2008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로 최고치인 2.67%에 달했다.
9월 28일부터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소비가 더 위축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화훼업체와 음식점의 매출 타격이 예상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300곳을 대상으로 '청탁금지법의 중소기업·소상공인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 10 곳 중 7곳(매우 어렵다 42%, 다소 어렵다 27.7%)은 경영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소비 혹한기가 왔지만 정부의 대응은 굼뜨다. '건국 이래 최대 할인전'이라며 코리아세일페스타를 열었지만 국내 소비자를 끌어오는 데는 실패한 채 중국 관광객들만 불러왔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코리아세일페스타 기간에 그나마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중국인 관광객 덕을 봤지만 전통시장 상인이나 수퍼마켓, 음식점 등은 소외됐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포인트 활성화, 10조원 규모 정책 패키지 등 최근 정부가 꺼내든 소비 활성화 대책도 소비를 일으키기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비·생산·투자가 악순환에 빠지면서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올 4분기 성장률이 0%를 간신히 넘긴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본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으로 인해 고소득층 이외 경제 주체들은 식료품을 제외한 나머지 품목에 대한 소비를 미루고 있고, 이어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서 경제 전반이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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