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uesday, April 30, 2024

MBC가 아니라 KBS ‘파우치’ 대담이 선거참패 불렀다

 [미디어전망대]

한국방송(KBS)은 지난 7일 방영된 ‘특별 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을 ‘파우치 논란’으로 명명했다. 한국방송 갈무리

이희용 | 언론인

방송법이 발효된 지 올해로 60년이 됐다. 1964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첫 방송법은 현행법과 마찬가지로 방송의 자유와 독립 보장에 관한 조항을 선언적으로 담고 있으나 고갱이(핵심)는 방송윤리위원회 설치와 방송윤리 규정 제정이었다.

1961년 5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3년 12월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언론 관련법 정비에 나선다. 계엄포고령으로 통제하는 대신 법령으로 규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명분으로 ‘윤리’를 앞세웠지만 목표는 ‘언론 장악’이었다.

1단계 조치는 방송법 제정이었고, 2단계는 1964년 8월 언론윤리위원회법 국회 통과였다. 언론윤리위법은 언론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와 1964년 8월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으로 이어졌다. 기자협회도 올해 환갑을 맞는다.

그 뒤 방송법은 63차례나 개정됐다. 1980년 언론기본법에 통합돼 폐지된 적도 있었고, 2000년에는 종합유선방송법·한국방송공사법·유선방송관리법을 아우르며 통합방송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개정의 주된 이유는 기술 발달에 따른 새로운 매체 등장과 방송시장 환경 변화였다. 큰 틀의 제도 변경을 앞두고는 방송제도연구위원회, 방송개혁위원회,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등 여야 추천 전문가들로 특별위원회를 꾸려 운영하기도 했다.

여야 정치인들은 입버릇처럼 “방송은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지만 방송을 내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건 여당이나 야당이나 오십보백보였다. 민주당은 노조나 시민사회를 앞세우고 국민의힘은 검찰과 감사원 등 공권력을 동원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내 편으로 만들려는 방식이 갈수록 뻔뻔해지고,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 우악스러워졌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방송에 대한 국민 불신은 높아지고 방송인들의 자존감은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박민 사장 취임 이후 한국방송(KBS)은 안팎의 반발과 비난에 직면해 있다. 문화방송(MBC) 안형준 사장은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았으나 사장 임면권을 지닌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의 임기는 8월 12일 끝난다. 현 정권은 엠비시도 케이비에스처럼 방문진 이사 일부를 임기 도중 교체해 사장을 갈아치우려고 했다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방문진 개편 이후엔 엠비시도 케이비에스의 길을 걸을 공산이 크다.

엠비시에도 정권 입맛에 맞는 사장이 들어서면 여권은 당장 속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정권의 신뢰와 인기는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추락할 것이다. 엠비시의 비판 보도로 정권이 위기에 몰린 게 아니라 케이비에스 신년 대담 탓에 여당이 참패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은 ‘땡전뉴스’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공영방송 사장 선임제도를 바꿔야 한다. 공영방송이 황폐화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대통령이나 여야 정당에도 득이 되지 않고 국민에게는 불행이다. 전국 단위의 선거가 한참 남은데다 엠비시 사장 선임을 앞둔 지금이 방송법 개정을 추진할 적기다.

지난해 말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계류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의 핵심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학계·시청자·방송종사자로 넓히고 특별다수제를 도입해 특정 정파가 사장 선임권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 후견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좌파가 방송을 영구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으나 개정 필요성에는 개혁신당을 포함한 범야권이 공감하고 있다.

허점이 있다면 보완하고, 일방적이라고 여겨지면 절충하면 된다. 그게 협상이고 정치다. 오는 30일 22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라도 여야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만일 이 시기를 놓치면 여야 모두 다음 정권을 손에 넣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오판할 공산이 크고 공영방송 위상을 바로 세울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