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독학 3년 만에 《채식주의자》 번역해 세계에 알려
“이번 수상은 번역 문학의 큰 승리” 축하 메시지 전해(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소설가 한강(53)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가운데 그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36)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11일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데보라 스미스는 영국 중부의 소도시 동커스터 출신으로 200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는 21세까지 모국어인 영어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영국에 한국어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단 점에 주목, 한·영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런던대 동양 아프리카대에서 한국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는 동시에 2010년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박사 과정을 마쳤을 2014년 당시 그는 26세의 젊은 번역가였다.
이때 번역을 맡았던 작품이 바로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다. 이 과정도 극적이었다. 2014년 영국 런던 도서전 행사의 주빈국은 한국이었다. 당시 관계자들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문학 번역자를 수소문했고, 《채식주의자》의 매력에 빠져 번역 샘플을 현지 출판사에 보낸 스미스와 연이 닿게 된 것이다. 이후 정식 영문 번역을 맡은 그는 출판사 접촉부터 홍보까지 도맡으며 《채식주의자》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결과적으로 일련의 과정은 2024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밑거름이 됐다. 2016년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한강'이라는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번역의 공로를 인정받아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한강의 수상에 대해 부커상 측도 노벨상위원회의 트윗을 공유하며 "엄청난 소식이다. 얼마나 멋진 뉴스인가!"라고 축하하기도 했다.
스미스는 맨부커상 수상 이후 2016년 한국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항상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려고 한다"며 "다른 번역가와 마찬가지로 원작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번역가가 원작을 보강하는 역할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영국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채식주의자》를 어떻게 번역했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번역한 책이 영국 독자가 처음 접하는 한국 문화가 될 수 있다"며 "소주, 만화, 선생님 등의 단어를 그대로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 번역에도 '형'이나 '언니' 같은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맨부커상 수상 이후 오역 시비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한강은 스미스의 번역에 신뢰를 표하기도 했다. 한강은 "저는 소설에서 톤, 목소리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데보라 씨의 번역도 톤을 가장 중시하는 번역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몽을 이탤릭체로 독백하는 부분의 느낌을 제 감정, 그 톤 그대로 번역하셨다고 느꼈고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채식주의자》 뿐 아니라 한강의 또 다른 작품인 《소년이 온다》와 《흰》을, 이예원과 함께 《희랍어 시간》 등을 번역했다. 나아가 아시아 문학을 다루는 비영리 번역단체인 출판사 '틸디드 액시스 프레스(Tilted Axis Press)'도 직접 설립,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서울의 낮은 언덕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 등을 세계에 소개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틸디드 액시스 프레스 역시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는 10일(현지 시각) 엑스(X·옛 트위터)에 "한강의 수상을 축하한다"며 "이번 수상은 번역 문학의 큰 승리"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영어권에 그의 작품을 가져온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이예원에게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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