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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anuary 3, 2017

꿈의 양자컴퓨터, 올해 현실이 될까

[오철우 기자의 사이언스온]

[한겨레]
구글이 지난해 발표한 ‘9큐비트’ 성능의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구글 제공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상태, 0이면서 동시에 1인 상태.’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에선 서로 다른 두 상태가 겹치는 이른바 ‘중첩’이라는 신기한 양자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양자세계에선 아주 자연스러운 물질의 존재 양식이다. 0과 1이라는 신호 외에 중첩 상태를 컴퓨터 연산에 이용할 수 있을까? 물질의 실존 양식을 연산 신호로 쓸 수 있다면 컴퓨터 성능엔 획기적 발전이 이뤄지지 않을까?
양자현상을 연산에 이용하는 컴퓨터, ‘꿈의 컴퓨터’로 불리며 오랫동안 멀게만 느껴지던 양자컴퓨터가 2017년엔 ‘어엿한 실물’로 등장할까? 새해는 양자컴퓨터가 특정 문제풀이에서는 디지털 컴퓨터를 능가하는 이른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해가 될 수 있을까?
몇 년 새 구글이나 아이비엠(IBM) 같은 세계 기업과 기술력 갖춘 신생 기업들이 실제 모형을 선뵈면서 양자컴퓨터가 뜨거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 컴퓨터가 처음 등장하던 시기에 갖가지 기술의 경쟁을 거치며 ‘실리콘 반도체’와 이진법 ‘비트’라는 표준을 정착시켰듯이, 지금의 양자컴퓨터 경쟁은 다양한 방식 중에서 무엇이 미래 양자컴퓨터의 대세가 될지를 판가름하는 과정이기도 해 더욱 관심을 끈다.
0과 1 비트 디지털컴퓨터와 달리
‘0이면서 동시에 1’인 양자현상 이용
‘큐비트’ 연산으로 성능 획기적
구글 지난해 9큐비트 규모 선봬
올해 안 49큐비트 구현 나서
실현 땐 디지털보다 양자 우위 원년
최근 MS 위상학 이용한 개발 도전
이론적으론 가장 완벽, 갈 길은 멀어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
큐비트 프로세서 안정성 위해
양자세계 정밀 제어·측정이 관건
신약 개발 등에서 장점 발휘
경쟁은 당연히 ‘하드웨어’ 실물에서 가장 뜨겁다. 양자현상을 실물의 양자 계산장치 안에 구현하려는 여러 모형이 시도되고 있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교수(계산과학)는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려는 방식이 그동안 수많이 제시됐는데 근래에 손에 꼽을 정도로 압축되고 있다”며 “몇 가지 방식 중에서 무엇이 주도 기술로 떠오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그는 “양자정보과학이 말하자면 밀월의 시기를 지나 성숙기에 들어서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이진법인 ‘비트’로 연산하는 디지털 컴퓨터와 달리, 0과 1 외에 중첩의 양자 상태도 신호로 쓰는 ‘큐비트’ 연산을 한다. 이순칠 카이스트 교수는 “그 덕분에 매우 방대한 데이터도 ‘양자 병렬처리’로 계산해 디지털 컴퓨터로 풀지 못하는 강력한 암호조차 풀 수 있고 최적의 분자 구조를 찾는 난해한 작업도 빠르게 수행해 신약 개발 같은 분야에서 장점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자연산이 일어나는 양자 프로세서가 외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완벽히 격리돼야만 안정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고전물리와 양자물리를 격리하는 하드웨어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최근 해외 매체 보도들을 종합하면 구글, 아이비엠 같은 세계 기업들이나 아이온큐 같은 신생 기업들이 서로 다른 안정적 모형을 개발하고 있다.([표 참조])
한쪽에선 전기저항을 없앤 극저온 초전도체 환경에서 전자 흐름의 양자현상을 신호로 사용하는 초전도 회로(‘초전도 루프’)가 큐비트로 개발되며, 다른 곳에선 이온 입자 낱개를 전자기장에 가두고서 그 양자현상을 이용하는 ‘이온 덫’ 큐비트가 개발되고 있다. 또한 다이아몬드 분자 구조에 일부러 결함을 만들고서 그 안에서 전자와 원자핵을 제어하는 양자연산도 유력한 모형으로 시도된다. 이 가운데 구글은 지난해 6월 초전도 회로 모형에서 전자 9개를 제어하는 9큐비트 규모의 양자컴퓨터를 시연해 화제가 됐다.
최근 새로운 주자가 출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노벨물리학상 수상 업적인 ‘위상학’(토폴로지)을 이용한 양자컴퓨터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0여년 전부터 저명한 수학자들을 영입해 아직 이론으로만 제시되는 ‘유사입자’의 양자현상을 이용하는 컴퓨터를 개발 중이다. 김재완 교수는 “구태여 비유하면 갈대들이 흔들려 물결을 이룰 때 ‘물결’은 실재하는 물질이 아니지만 그 거동을 마치 입자처럼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를 개발 중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측정센터의 정연욱 연구원은 위상학 양자컴퓨터에 대해 “이론적으론 가장 완벽하지만 구현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고 평했다. 연구자들은 ‘유사입자’ 존재가 입증된다면 그 자체가 큰 뉴스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 암호화 기술 위협
과연 양자컴퓨터의 큐비트가 기존 디지털 컴퓨터도 풀지 못하는 연산 문제를 거뜬히 풀 수 있는 ‘양자 우위’의 잠재력을 올해 안에 선뵐 수 있을까? 현재 구현된 양자 프로세서의 규모는 모형별로 다르지만 최대 10큐비트 안팎인데, 올해에 그 큐비트가 얼마나 더 확장될지가 양자 우위를 판가름 하는 데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구글은 올해 안에 ‘49큐비트’의 양자컴퓨터를 구현하겠다는 개발 일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김정상 미국 듀크대 교수(아이온큐 공동창업자)는 “구글이 진짜로 49큐비트를 안정적으로 실현한다면, 그건 어떤 디지털 컴퓨터도 할 수 없는 연산과제를 수행하는 ‘양자 우위’를 보여준다는 의미”라며 “올해 실현될 수도 있지만 늦어도 2018~2019년까지는 실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사실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이다. 큐비트 프로세서가 외부 간섭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엔 많은 장치가 필요하고, 전자나 원자핵의 양자현상을 하나하나 정밀 제어해 연산을 수행하게 하는 장치와 기술이 필요하고, 또한 연산의 결과물인 프로세서 안의 양자 상태를 측정 장치를 통해 들여다보는 시스템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점결함 방식의 양자컴퓨터를 연구 중인 이상윤 연구원(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양자세계를 정밀 제어하고 측정하는 데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어야 해 과학자들을 흥분시키고 도전 의지를 자극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양자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암호화 기술이 위협받을 처지에 놓이면서 새로운 암호화 기술에 관한 논의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양자컴퓨터의 개발 연구가 표준과학연구원, 과학기술연구원과 몇몇 대학 연구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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