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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February 17, 2015

정청래에 대한 진보진영의 불편한 비판들... 조선 등 수구언론들...'간계와 이간질'로 정청래 죽이기 나서

정청래에 대한 진보진영의 불편한 비판들...
조선 등 수구언론들...'간계와 이간질'로 정청래 죽이기 나서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5/02/17 [02:24]

잠자는 거인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의 존재감의 상실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야성을 찾으라’는 야권 지지자들의 안타까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에 빠진 거인처럼, 130여석 거대 야당은 싸울 줄 몰랐다. 그나마 정국의 주요한 국면마다 야성을 발휘하며 국민의 속을 긁어주던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강경파’라고 매도해 버렸다.

그 결과,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무수한 실정들과 악정들, 국가적 책임이 있는 참사들, 그리고 심지어는 정권의 정통성의 문제가 걸려 있는 국정원 및 국가기관들의 선거개입 사건 등의 정국에서조차 제 1야당은 그 존재감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매번 여당에 끌려 다니고, 농락 당하다 결국 정국의 주도권을 내 주고 말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종북’ 공세에 감전이라도 된 듯 얼어붙었고, 특히 박근혜에 대한 비판에는 스스로 몸을 낮췄다. 이런 제1야당을 두고 야권의 지지자들은 ‘새누리2중대’ 혹은 ‘제2여당’이라고 비아냥 거렸다. 이러한 야당의 무능력의 결과는 '거침없이 퇴행하는 민주주의와 추락하는 삶의 질'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야성의 부활

이런 무기력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 듯, 새정연의 지난 전당대회에 나섰던 당대표 후보들과 최고위원 후보들은 한결같이 ‘강한 야당’, ‘이기는 야당’을 구호로 내세웠다. 심지어, 새정연 내에서 ‘저주받은’ 낙인처럼 여겨지던 “강경파”를 스스로 자처하는 후보도 나왔고, 정청래 의원은 ‘당대포’를 자처 하기도 했다. 거침없는 대여 공격의 선봉에 서겠다는 의미였다.

전당대회 기간 동안 조금씩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유약한 이미지를 극복한 문재인이 당대표로 선출되었고, '당대포'를 자처한 정청래도 최고위원에 선출 되었다. 문재인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새정연은 활기를 띠고 있다. 모처럼 대여 공격에 있어 강경하고 일치단결된 모습을 모여주고 있고, 당의 지지도도 수직상승하고 있다.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문재인은, 박원순에 밀리며 만년 2위로 고착되는 듯 하다가, 단숨에 다른 모든 후보들에 한참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갈등의 시작?



잡음도 없지는 않다. 문재인이 당대표에 오르자마자 이승만, 박정희를 참배한 것은 야권 내의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정치적 의도가 무엇이건, 또 그 효과가 어떠하건 간에, 이것은 많은 야권 지지자들을 불편하게 했고, 심지어는 분노케 했다. 평소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에겐 ‘악감정’이 고착되게 만들었고, 그의 지지자들 중에서도 이 행동만은 비판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그런데, 그런 비판들 중에서 가장 큰 파문을 몰고 온 것은 다름아닌 정청래 최고위원의 발언이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내 통합을 먼저 생각해야지, 첫날부터 대선주자 행보를 하면 안된다"며 "다른 최고위원들도 눈치만 보면 안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해야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의 발언 중 진짜 문제가 된 부분은 다음이다 

정 최고위원은 당내 인사들의 말을 빌어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히틀러 묘소 참배할 이유는 없다', '일본이 과거사를 사과한다고 야스쿠니에 참배하고 천황에 절할 이유는 없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이것은 즉각 “이승만, 박정희 ‘참배’를 히틀러 묘와 야스쿠니 참배에 견준 것”으로 해석되며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정 최고위원의 발언이 지나치거나 과장되었는지는 다음 기회에 짚어 보기로 하자. 어떤 경우건, 이러한 발언에 대한 보수진영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주목 할 부분은 야당 내의 반발이다. 이러한 반발은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비판의 트라이앵글



첫째는, 당내에서 강경한 발언과 행동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발목을 잡던 행태의 연장선상에 있다. 도덕적 결백증에 사로잡힌 듯한 바로 그러한 태도로, 표면적으로는 ‘정치인의 품위’나 ‘당의 화합’을 이야기 하지만, 새누리당의 ‘야만적인’ 언행들에는 무기력하게 대응했고, 당내 인사들을 향해서는 사납게 ‘총질’해 왔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문재인 역시 지금까지는 바로 그런 분위기의 희생자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전통적인 문재인 지지자들의 반발이다. 이들 대부분은 바로 지금까지 새정연의 무기력을 비판하던 당사자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청래의 발언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그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정청래의 발언의 강도나 비유의 타당성이 문제가 아니다. 그의 비판이 바로 문재인을 향하고 있다는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전통적인 문재인 지지자들의 대부분이 안철수의 박정희 묘소 참배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셋째는, 진보언론의 비판이다. 이번 경우에 가장 단적인 예는 한겨레신문의 사설이었다 :<야당을 멍들게 하는 ‘튀는 발언’>(2015.2.11) 여기서 비판의 논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한편으로 당내 비판과 마찬가지로 ‘튀는 발언’이 최고위원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최고위원으로서 당대표의 결정에 공개적으로 딴죽을 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설이야말로 정말 가치 없는 논평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부분에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다.



불편한 진보 언론



먼저, 사설이 정 최고위원의 발언을 제대로 비판하고자 했다면, 그의 ‘히틀러, 야스쿠니’ 발언의 의도와 내용에 대한 부당함을 논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설에서는 단지 그의 발언이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점과 결국 그것이 야당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란 점을 비난의 근거로 삼고 있다.

한 가지만 생각해보자. 영화관에서 영화상영이 시작되기 전에 일제히 국기에 대한 의례를 하고, 국기하양식 때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에, <한겨레>는 그런 관행을 전제주의적인 것이라 주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사회에서 전제적인 잔재 하나를 일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때의 <한겨레>의 문제 제기는 국민적 공감을 바탕으로 하였던 것인가? 그때 돌아온 ‘빨갱이신문’이란 부메랑을 두려워하였던가?



다음으로, 이 사설은 최고위원의 역할에 대한 완전한 무식을 드러내고 있다. 당헌에 의하면 최고위원은 당대표 다음으로 막중한 권한을 가진 직책이고, 당내 서열로는 원내대표보다 높은 위치다. 당대표에 협조하고 그의 결정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지만, 필요하다면 당내 그 누구보다 준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이 최고위원이다.

한 나라의 최고의 진보 신문이라는 곳의 사설이 제1야당의 최고위원을 당대표의 거수기 정도로 생각하는 발상을 어찌 드러내놓을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더욱이 이런 최고위원의 행위를 “딴죽을 건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정통 진보언론의 사설로서 부끄러운 언어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무식함과 천박함 아래로, 정청래라는 정치인에 대해 ‘평소’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논설자의 주관이 읽힌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한 수 가르치겠다’는 듯 훈계하는 투는 사설(社說)을 사설(私說)스럽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사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야당에서 나오는 튀는 발언의 반사이익은 결국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에 돌아가게 돼 있다.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여권은 이번에도 정 최고위원 발언에 반색하고 있다. 야당은 제발 자중자애하기 바란다”.

이 것은 다음의 말로 완벽하게 대치될 수 있다.
“진보언론의 내부 총질의 반사이익은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에게 돌아가가고 있다. 궁지에 몰렸던 여권은 진보언론들의 내부 비판에 힘을 얻어 정청래의 윤리위 해부를 주장하며 상황반전을 노리고 있다. 진보언론은 제발 자중자애하기 바란다”.

마무리

정치인에 있어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무엇보다 든든한 자산이며 힘이다. 그런데 정도가 지나쳐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언행을 선악의 기준으로 삼는 지지자들이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의 지지행위는 그 자체가 오히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적을 만들거나, 심지어는 정치인의 가치 절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이들은 정치인에 대한 비난들에 대해 당사자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당사자의 생각을 앞서 나가서 자의적인 평가를 내림으로서, 오히려 지지하는 정치인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정청래 최고위원의 내부 비판에 대해, 문재인 대표는 각을 세우기 보다는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 지도부가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선포한 상황에서, 취임 직후부터 내부 대립이 부각되는 일은 피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세계일보). 그런데 이들은 언론들이 부추기는 문재인-정청래 갈등설에 더 귀를 기울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청래에 대한 비난에 가세함으로써, 문재인의 사려를 폄하해 버리고 만 것이다.

야권의 지지자들로서는, 정청래 뿐 아니라 그 어떤 정치인이라도, 잘 못이 있다면 냉정하게 비판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지지자로서의 권리이고 역할이다. 그러나, 건전한 야권의 지지자들이라면, 단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한 번 비판적인 의견을 내었다고 해서, 정청래 같은 사람을 하루 아침에 '적'으로 간주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그동안 무력한 새정연 내에서, 그나마 줄기차게 야성을 지켜왔던 사람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당당히 최고위원에 선출된 것이다. 그리고 정권과 여당을 향한 대포를 쏘아 부친다. 그것은 그가 야권의 지지자들에게 한 약속이었다. 지금껏 야당의 무능력을 방조해 온 사람들로서는 그런 그의 '강성' 행보와, 특히 이번 최고위원 선출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낄만도 하다.

그를 마치 진보진영의 천덕꾸리기처럼 몰아부치는 태도들에는, 이러한 야권의 고질적인 퇴행적 관성과 편협한 질시들이 엿보인다. 야권의 지지자들로서는 이러한 태도들을 수구언론들의 간계와 이간질보다 더 경계해 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과 자본으로 무장한 수구진영에 비해, 진보진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산은 지지자들의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출처 : 파리이장의 한국보기 http://regardsurcoree.blogspot.fr/
프랑스에서 바라보는 한국, 프랑스 언론에 나타난 한국의 모습 등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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