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Click map below !!)

Turkey Branch Office : Europe & Middle East (Click map below !!)

Mobile Phone Cases (Click photo here !)

Mobile Phone Cases (Click photo here !)
Mobile Phone Cases

Monday, December 14, 2015

세월호를 뒤돌아보니 온 몸둥이가쓰리고 아프다.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공개 청문회가 14일 서울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시작됐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청문위원들이 증인으로 출석한 이춘재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과 유연식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 등에 대해 증인심문을 하고 있다. @에너지 경제신문

우리가 어떻게 을미년을 그대로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살릴 수 있는데 방치했다면 그것은 살인이다. 살인죄를 비는 마음으로 세월호 침몰을 메모한 그때 그때의 상황을 정리했다.

하늘이시여 우리의 어린천사들을 보듬어 주소서.

차갑고 검은 바닷물이 몰고 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 내 걱정 말고 어서  너부터 나가.” 제가 입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입혀주며 의연히 죽음을 택한 정차웅군 (17세).

“언니도 어서 나가야 지요.” “너희들 다 구하고 나중에 나갈게 물이 차오른다. 빨리 나가. 선원의 차례는 마지막이야.” 역시 구명조끼를 벗어서 학생에게 입혀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나가게 하고 배를 버리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선장과 선원들의 몫까지 수행 승객들을 바다로 뛰어 내리게 하여 살려낸 나이 어린 박지연(22세) 승무원.

본능적인 SOS의 감각으로 배의 침몰을 해당 기관에 신속하게(맨 처음)알려 172명을 살려놓고 저승으로 떠나며 뒤돌아보고 또 돌아다보았을 다원고 2학년 최덕하군.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큰 아들 학비 내라. 난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해. 길게 통화 못해 끊어. 침묵으로 이어진 멀고 어둡고  냉냉한 초행길을 어린 제자들 만 보내기가 불안하여 학생들과 동행한 김민규 교감, 박육규, 이해봉. 남윤철, 최혜정, 이지혜, 김초원 선생님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가슴이 쓰리고 아파 미칠 것만 같다.

승객 구조에 전력을 다한 양태홍 세월호 사무장. 달콤한 선박여행에 올랐다가 어린 학생들을 이승으로 올려놓고 영원한 수중관광을 떠난 한쌍의 연인 정현선, 김기웅, 가장 험난한 수중 작업에서 희생된 잠수부들 이 모든 분들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시라 하니라...”마태복음 제 일장 22절의 말씀을 받히겠습니다.

세월호 침몰은 예상된 재앙이다. 처음부터 오늘 까지 수습경위를 지켜보면서 ‘탈출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왜 학생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2014년4월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일반 승객을 태우고 운항하던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접하고 크게 가슴을 쓰러 내렸으나 2시간도 채 안 되서 오보라는 정정 보도가 나왔다. 청천벽력의 비보에 하늘은 노랗게 변했고 세상은 벌집 쑤셔놓은 양상이었고 온 국민은 분노에 주먹을  움켜줬다. 인력으로 대처할 수없는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고현장을 생방송한 TV.화면에는 배 갑판에서 누군가와 긴 통화를 하는 선원?의 여유로운 모습이 보였다. 제복이 아닌 허벅지를 들어낸 반바지 차림의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하는 모습은 온종일이다 싶게 방영 돠었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선박과 운명을 함께  해야할 선장과 선원들이 해경 구명정에 올라탄 첫 번째 구조 자들이었다. 배의 이상 징후가 감지되자 이들은 조타실에 모여 탈출을 의논 구명정을 기다렸다. 선실도 지나다니고 제 방으로 가 맥주도 마시고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이들이 “여러분 갑판으로 올라가 대기 하십시오. 구명정이 오고 있습니다.” 승객들에게  이 한마디만 방송을 했다면(그 시각에는 방송이 가능)승객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시사IN348호(2014.5.17.)에서  단원고 2학년? 임현진군의 부모님과의 대화와 저승으로 떠나기 직전 상황을  몇 대목 발췌했다.

[-전략-현진이는 8시52분 친구와 찍은 사진을 다시 보냈다. ..배가 이미 기울고 있었다...출근하는 아빠가 걱정할까봐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아침 8시50분쯤에 현진이와 통화를 했다...배가 기운다고 했다. 놀라서 구명조끼를...입고 지시를 따르라고 했는데 현진이는...이미 구명조끼를 입었다면서 사고 상황을...이야기하다가 전화가 끊겼다...오전9시4분 아내한테 소식을 들은 아빠가 현진에게 전화를 했다...“구명조끼를 챙겨 입어라.”...입었다고 답했다. 아들과 통화하는 사이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수화기를 통해 들렸다...

9시15분 구명조끼를 입은 사진(기울어진 배의 바닥에 등을 붙이고 벽에 발을 대고 선 모습)을 보내왔다...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지시에 따라 현진이는 친구들과 질서정연하게 추가 지시를 가다리고 있다.)

아들이 보내온 마지막 사진은 일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후지TV등에 소개되었다. 현진이는 임희민 씨의 장남이고 외아들이다. 임현진군의 시신이 저승으로 떠나든 발인날이 현진군의 열여덟 번 째 생일이었단다. 

5월1일 자 한겨레 목포 안관옥 기자는 헬기소리 들렸다고 학생들이 “살았다” 고 안도했건만...제목의 기사에서 사고현장에 맨 먼저 도착한 구조대는 해경의B-511 팬서 헬기였음과 단원고 2학년 박예슬 양이 헬기소리를 듣고 서로 다독이는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은 동영상(9시38분)등을 언급했고 선체가 뒤집혀 침몰한 시각인 오전10시31분 까지 64분의 여유가 있었음을 환기 시키고 있다.

5월 16일 현재 구조 172명 사망 밑 실종자 304명임이 발표 되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어선을 발동 현장에 당도한 한 어부는 구조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갑판이 아비규환이려니 했는데 쥐죽은 듯 고요한 갑판에는 누구 하나 그림자도 없었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노무현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아 일반 국민의 안녕을 도모하는 위기관리 부서를 청와대에 두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재변은 없었을 것이다. 구조작업에 동원된 도구가 다 미국산이라고 들었다.

한미동맹은 합동군사훈련으로 북한을 겁주는 역할만이 미 연합사의 사명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 민족의 미래인 어린 학생들의 생명을 존중했다면 국방부에 통보를 하고 직접 미군 연합사에 전화를 하여 우리의 학생들을 구해달라고 간청을 했을 것이다.

소설가 김제영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