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자유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폭넓은 ‘명예훼손 혐의 형사처벌’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데 대해 심지어 허위 사실일 지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면 안 된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정부 비판에 더욱 관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0일 ‘다시 민주주의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토론회에서 UN자유권위원회의 권고는 명예훼손에 의한 형사처벌은 정부 비판을 막기 위해 사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으로 내용이 허위더라도 형사처벌을 해선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표현의 자유특별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지난 10월 말 UN자유권위원회의 한국 정부 심사 내용과 표현의 자유 관련한 권고 사항을 자세히 살펴봤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경신 교수는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권력자가 자신의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데 검찰을 동원하는 손쉬운 통로가 되기 때문”이라며 UN자유권위원회가 형사법을 통한 명예훼손 처벌을 폐지하라고 한 이유를 설명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표현의 자유 특별위원회가 30일 국회에서 '다시 민주주의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토론회를 열고 있다.
 
박경신 교수는 이와 함께 UN자유권위원회는 명예훼손의 형사처벌에 대해 ‘진실’은 물론 ‘허위’에 대해서도 비형사화할 것은 권고한 부분에 대해 진일보한 부분으로 평가했다. 

박경신 교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나온 이틀 후인 지난 9월18일 대검찰청이 내놓은 ‘사이버명예훼손 전담팀’의 1순위 목표는 ‘국론분열 및 정부불신조장 방지’였다고 지적하며 “결국 국가정책이나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막겠다는 취지였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 저항이 거세지자 검찰은 10월15일 ‘선제적 대응’을 위한 카카오톡 압수수색 방안을 철회했다. 박경신 교수는 “이 같은 퇴행적인 ‘선제적 대응’ 정책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어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교수는 ‘국가가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시를 우회하기 위해 정부는 고위공직자 개인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며 실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이런 ‘국민 입막음 소송’이 대폭 증가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국민입막음소송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10월 현재 이명박 정부 기간 입막음 소송은 30건으로 형사소송이 24건을 차지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9건이었으며 박래군 활동가의 대통령 명예훼손 형사 사건까지 합쳐 형사사건은 총 6건이다.

박경신 교수는 “국민 입막음소송의 공통점은 대부분 무죄 또는 원고패소로 결론난다”며 “즉 정당한 명예 보호보다는 정권유지 차원이고 패소하면서도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위축효과’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대한 제작진 수사 이후 정부에 비판적인 탐사보도가 사라진 것을 박경신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제네바에서 열린 UN자유권위원회에 국내 시민사회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83개 인권시민사회단체 중 한 곳으로 참석한 참여연대 박가윤 국제연대위원회 간사는 한국 정부 심사에 참여한 유발 샤니(Yuval Shany) 위원이 “명예 훼손 관련 사안을 민법으로 관리할 수 있음에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왜 형사 처벌이 이뤄지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며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이와 관련한 정보를 유포한 사람을 형사 처벌했다는 보고가 있는데 왜 정부를 비판하는 언사가 허위라는 이유로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느냐, 제310조 상의 ‘오로지 공익을 위해’라는 요건은 너무 협소하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자유권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형법 상 명예훼손을 적용해 정부나 기업을 비판하는 사람을 기소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으며 공익을 위해 진실을 적시한 언사마저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점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명예훼손의 경우 민법에 의한 제재가 가능하기 때문에 비범죄화 해야한다”며 “민주주의가 기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비판에 대한 관용의 문화를 장려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와 함께 자유권위원회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7조(이적단체 찬양·고무)를 폐지할 것을 권고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 즉각 석방 및 사면, 성소수자 차별 금지 등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권고를 내놨다.

백가윤 간사는 “자유권 권고위원회의 권고가 2006년 권고에 비해 양적·질적으로 진일보한 권고”라며 “명예훼손 형사처벌 폐지 부분은 구체적으로 진실적시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권고가 내려진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백가윤 간사는 이어 “자유권 최종 견해 이행을 위해서는 자유권 위원회에서 내린 권고를 살펴보는 것을 넘어 유엔의 다른 조약 권고를 종합해 국제 인권기준의 국내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