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갔습니다.
자신의 임기 중 국정원이 대규모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아무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틀간의 기다림 끝에 결국 만나는데 성공했습니다.
![옳다구나!](https://m1.daumcdn.net/img-media/media4/pack_kakao/2202002/emot_049_x1.png)
“민간인 댓글부대 운영을 다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다소 황당한 답변을 해 어이가 없기도 했고 취재과정에 몇 가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STEP1. “카메라 치워주세요”
수소문 끝에 찾아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
반대편 건물에 마침 빈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영상취재피디 한 명이 그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정문을 내려다봤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드나드는 모습을 촬영하기 가장 좋은 위치였지만 곧 내려와야 했습니다.
건물 관리인이 오더니 “청와대 경호실에서 민원이 계속 들어온다”며 카메라를 치우고 내려갈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새삼 여전히 철통같은 경호를 받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의 파워(?)가 실감났습니다.
![](https://t1.daumcdn.net/liveboard/emoticon/kakaofriends/v3/ryan/013.gif)
‘전직 대통령 예우와 관한 법률’에 따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퇴임 후 10년간 이어집니다.
2023년까지 계속된다는 건데 이렇게 세금이 계속 쓰이고 있으니 이 전 대통령은 공적인 인물이 분명합니다.
국민들의 물음에 답할 의무도 있는 거죠.
STEP2. “오늘 안 들어오십니다”
출입구 바로 앞에서 기다라고 있는 취재진이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매일 사무실로 출근한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하루를 날린 뒤 다음날 다시 찾아갔습니다.
아침부터 기다렸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아 오전 11시쯤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비서를 만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터뷰를 요청하고 오늘 사무실에 오는지 물었습니다.
“오늘 안 들어오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https://t1.daumcdn.net/liveboard/emoticon/kakaofriends/v3/mujiandconspecial/emot_012_x3.gif)
STEP3. 모습을 드러낸 MB
점심식사 후 인근 카페에서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비서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카메라도 치운 채 '밑져야본전'이라는 기분으로 기다렸습니다.
이때 두 눈을 의심할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https://t1.daumcdn.net/liveboard/emoticon/kakaofriends/v3/ryan/015.gif)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차에서 내린 이 전 대통령은 경호원과 함께 순식간에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카페에 있던 터라 미처 질문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제 문 앞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몇 시간이 걸리든 만날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STEP4. CCTV가 나를 보네
정문 앞에서 계속 기다리는 취재진이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갑자기 CCTV를 수리하는 분들이 오더니 멀쩡한 CCTV의 각도를 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정확히 취재진을 향해서!
![](https://t1.daumcdn.net/liveboard/emoticon/kakaofriends/v2/10009/emot_023.gif)
감시당하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오기가 더 생겼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 뒤 저녁 6시 무렵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호원의 제지가 있어 아주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리에서 이 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STEP5. 동문서답, 발끈한 MB
곧장 차에 타고 갈 것 같아 제 자신에 대한 소개도 생략한 채 바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간인 댓글부대 운용 다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 전 대통령은 저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학생인 거 같은데?
세상에, 평소 노안 소리를 주로 듣던 저에게 이런 칭찬을?
사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저에게 학생인 것 같다고 말한 건 저를 무시하기 위한 것일 겁니다.
자신의 마음에 안드는 질문을 던지자 저를 모욕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라는 놈이 그 따위 질문을 해?’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https://t1.daumcdn.net/liveboard/emoticon/kakaofriends/v2/10001/emot_021.gif)
바꿔 말하면 ‘민간인 댓글부대’는 그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민감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냥 차에 타도 그만인 것을 굳이 발끈해 저를 공격하는 발언을 한 거니까요.
그럼 어떻습니까?
듣는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질문을 잘했다는 칭찬 같아서요.
이후 제 이름을 밝힌 뒤 두 가지 질문을 더 던졌습니다.
18대 대선 댓글조작 다 알고 계셨습니까?
국정원장 독대 때 보고 받지 않으셨습니까?
아쉽게도 더 이상의 답변은 듣지 못한 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탄 차는 떠났습니다.
과연 몰랐을까?
결국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의혹에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이 전 대통령.
그는 언제까지 침묵할까요?
아니 침묵할 수 있을까요?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 사건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이제 그 진실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외면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부디 전직 대통령답게 떳떳하게 입장을 밝히길 바랍니다.
지시를 한 건지, 승인을 한 건지, 보고만 받은 건지, 아님 정말 몰랐는지.
자신의 임기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제 솔직히 답해야할 시간입니다.
그게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작성 : 곽승규 기자
사진 : 양혁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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