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쇼크] ① '빈집의 역설'
빈집. 우리 사회가 마주한 골칫거리다. 주택 공급과잉, 재산권을 둘러싼 공공과 개인의 갈등이 얽히고 설키며 초래한 문제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인구사회학적 문제도 빈집 양산을 부추긴다. 지난해 전국 빈집은 126만호를 넘어섰다. 내집 마련의 꿈은 멀기만 한데 남아도는 집이 널린 사회. 이른바 '빈집 쇼크'가 한국사회를 병들게 한다. <머니S>가 빈집 현상을 진단하고 현장을 찾아 빈집 활용 방안 등을 알아봤다.<편집자주>
[빈집 쇼크] ① ‘빈집의 역설’
#. 집 앞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가구인지 쓰레기인지 모를 물건들과 부서진 자전거가 흉물스럽게 방치됐다. 계단 턱에는 이파리가 말라비틀어진 화분과 녹슨 빨랫대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널브러졌다. 한쪽 담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공가다.
전국 빈집 수가 126만호를 넘어섰다. 대출규제 강화, 치솟는 집값 등으로 내집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빈집이 계속 늘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 전국 빈집 126만호… 2050년엔 302만호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아예 살지 않는 빈집은 126만5000호(지난해 11월1일 기준)로 전년 대비 12.9%(14만5000호)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빈집이 120만호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파트 빈집이 67만호로 가장 많았다. 단독주택은 31만호에 사람이 살지 않았고 다세대주택도 20만5000호가 비었다. 전체 빈집 가운데 30년 이상된 노후주택은 38만호로 전남 50.8%(5만6000가구), 경북 44.3%(5만6000가구), 전북 44.2%(3만4000가구) 순으로 오래된 빈집이 많았다.
빈집이 지방에서만 많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도권에 더 많다. 경기도 용인의 한 대형아파트 단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건설됐지만 165㎡ 이상의 아파트가 아직도 완판되지 않았다. 분당·광교의 아파트 단지와 가까워 분당 생활권이라는 강점이 있는데도 매수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경기도에는 이런 미분양 아파트 외에도 빌라, 단독주택 등을 포함해 19만5000호가 빈집으로 남았고 경북 12만600호, 경남이 12만1000호 순으로 빈집이 많았다. 서울에도 9만3000호나 된다. 2050년엔 서울의 빈집이 31만호로 늘어나 전체의 5.6%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의 '대한민국 2050 미래 항해'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빈집 확산 현상이 가속화돼 2035년엔 148만호로 늘어나고 2050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주택의 10%인 302만호가 빈집이 된다. 특히 수도권에서만 100만호가 빈집이 될 것으로 봤다.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우리나라는 경제·인구구조 면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어 ‘빈집 문제’도 같은 길을 갈 것이란 분석이다.
◆ 빈집에도 ‘부익부 빈익빈’
나는 살 곳이 없는데 계속 늘어나는 빈집. 그렇다면 빈집은 왜 생겨날까. 빈집의 발생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주택이 위치한 지역이나 주택의 형태·규모에 따라 전혀 다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폐가나 오피스텔의 장기 미임대, 읍·면·동 지역의 5가구 이하 빈집은 사유재산 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어렵다.
전문가들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빈집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빈집으로 골머리를 앓는 일본과 유사한 데다 빈집 공포 확산의 핵심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일대의 빈집 발생 원인은 정비사업 쏠림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계획된 전국 재건축·재개발 일반물량은 107개 단지, 5만6373가구. 이 중 서울 물량은 29곳 1만3312가구로 절반 이상이 서초·청량리·마포 등 도심권에 집중됐다.
이와 같이 주거 밀집지를 대상으로 정비를 진행하는 탓에 요건이 미달되는 빈집은 재개발사업 등에서 제외된다. 이들 빈집은 수익보다 유지비용이 더 많이 들어 집주인들이 그대로 방치해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현재 빈집 소유주 대부분은 재건축과 재개발과 같은 대규모 정비사업에 참여할 재정적 여유가 없는 데다 주택정비를 통해 임대인을 찾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도 건물이 있는 부지가 나대지보다 재산세 부담이 적으니 관리가 힘들다고 철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나 외지인이 서울의 집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도 빈집 발생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 다주택자 등은 일정 금액 이상의 임대료를 정하고 조건에 맞는 임차인이 나타날 때까지 빈집을 방치한다. 서울시민 대다수가 무주택자인데도 빈집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집값이 비싸다는 뜻이다.
공인중개사 윤유경씨는 “집을 그냥 놀려도 되는 다주택자나 외지인들이 집을 샀기 때문에 집값이 안 떨어지고 빈집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관리 나선 서울시… 빈집의 미래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울시는 전담부서를 만들어 늘어나는 빈집을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시는 최근 산하기관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빈집 관리부서를 신설하고 정책 마련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집이 각종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빈집이 몇 가구 늘어나면 주변의 집들도 모두 빈집화되면서 상권이 위축되고 각종 사회문제가 대두된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이 슬럼화되면서 안전사고와 범죄 발생률을 동시에 높인다.
그런 의미에서 빈집은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지역 쇠퇴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고 지역을 재생할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급증하는 빈집의 위협에 맞서 어떻게 이를 줄이고 잘 활용할지, 미래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6호(2018년 9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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