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선고 앞둔 천안함 재판
▶ 인터넷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을 검색하면 주로 보수 성향 언론사 기사가 나옵니다. 반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검색하면 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아직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두고 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해온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의 국가 명예훼손 재판판결이 다음주 있습니다. 국내외의 이목이 쏠릴 것 같습니다. 지난 5년여의 재판 과정을 짚어봤습니다.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자리한 이강훈(47) 변호사의 사무실(법무법인 덕수)은 허리 높이만큼 쌓인 서류 더미들로 북적였다. 온갖 서류는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책장 한켠에 놓여 있는 두꺼운 서류 더미 두 뭉치를 꺼낸 이 변호사가 말했다. “5년 넘게 이 소송을 맡았죠. 금전 손실이 상당했어요.”(웃음)
그가 꺼낸 서류는 검찰이 ‘신상철 전 천안함 사건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서프라이즈 대표)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국가기관 및 구성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2010년 8월 기소한 사건과 관련한 것이었다. 법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 이흥권 부장판사)은 오는 25일 선고할 예정이다. 검찰은 지난달 7일 신 전 위원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법원이 과연 천안함 사건 보고서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하네요. 만약 법원이 (조사 결과에 결함이 많다는 변호인 쪽) 문제 제기를 받아들인다면 논란에 휩싸일 테니까요.” 이 변호사가 다소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2010년 당시 이진한 부장)가 신 전 위원을 기소하기까지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과 김성찬 당시 해군참모총장 등이 잇따라 신 전 위원을 고소·고발했다. 신 전 위원은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사고(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숨지고 함정 침몰) 이후 정부와 군 당국이 천안함 사고 원인을 은폐·조작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과 천안함 좌초설 등을 인터넷 커뮤니티 서프라이즈 게시판에 남겼다. 신 전 위원의 기소가 정부 뜻에 반하는 여론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의도라는 비판과 신 전 위원의 과도한 주장으로 ‘천안함 음모론’이 퍼진다는 여론이 맞섰다.
25일로 예정된 신상철 전 천안함사건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 조사위원에 대한 국가 명예훼손 재판 선고 결과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보장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 전 위원은 합조단의 발표와 달리 천안함 좌초설 등을 주장해왔다. 김태형 기자
25일로 예정된 신상철 전 천안함사건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 조사위원에 대한 국가 명예훼손 재판 선고 결과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보장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 전 위원은 합조단의 발표와 달리 천안함 좌초설 등을 주장해왔다. 김태형 기자
‘신상철 재판’은 기본적으로 신 전 위원 개인의 유무죄를 다투는 재판이지만 천안함 사건 관련 여러 의혹을 확인해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다. 신 전 위원이 허위 사실을 적시해 국가기관을 비방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2010년 5월20일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발표한 천안함 사건 보고서를 검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여간 군 관계자와 학자 등이 재판정에 나와 증인신문을 받았다. 이 변호사는 지난 재판에서 무엇을 느끼고 경험했을까. 인터뷰는 한 시간여 진행됐다.
정부와 군 당국이 천안함 사고원인
은폐·조작한다는 신상철씨에 관해
검찰이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한 사건
5년을 끌다가 1심 선고가 코앞이다
과연 과도한 비판과 의혹제기였나
변호인단이 검증한 천안함보고서
“폭침으로 인한 배 절단 증명하려
시뮬레이션 했지만 기술구현 안돼
흡착물질로 알려진 AlxOy도
알고 보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변호인이 증인 부르기도 어려웠던 재판
-신상철 전 위원은 사고 원인을 정부가 일부러 감추려 한다는 등의 글을 썼다.
“언론인이 쓰는 칼럼처럼 정제되어 있지 않았다고 보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형사처벌로 연결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호받을 수 있을까. 국가업무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의혹 제기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
-합조단은 ‘어뢰 공격’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합조단이 발표한 천안함 보고서를 재판 과정에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중요한 물증과 기존의 심증을 얼기설기 엮은 느낌이 들었다.”
-과학자가 아닌 변호인인데 어떻게 확신하나?
“천안함 보고서를 만드는 데 관여한 전문가들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본인들도 확신해서 만든 게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보고서 제출 마감 시한이 촉박했고 2010년 5월15일 어뢰 추진체가 발견되자 ‘답은 이거네’ 하고 결론을 내고 조사를 서둘러 종결한 느낌이다. 기억해보라. 2010년 5월20일 합조단은 분명 중간발표라고 했었다. 그런데 합조단이 해산해버리고 그게 최종발표가 돼버렸다.”
-재판 과정에서 천안함 보고서의 어떤 점이 허술하다고 지적된 건가?
“천안함은 두동강 났다. 그걸 입증하려고 합조단이 (어뢰 폭발) 시뮬레이션을 했다.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도 배가 둘로 쪼개진 걸로 알았는데 가만히 보고서를 살펴보니 다 안 끊어졌더라. 그래서 왜 안 끊어졌냐고 신문하니 ‘시뮬레이션 기술에 한계가 있어서 구현은 제대로 안 됐는데 끊어졌다는 결론은 맞다’고 대답하더라. (어뢰 폭발로 발생했다는) 흡착물질이라고 제시된 ‘AlxOy’라는 화학공식도 알고 보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었다. 관계자가 ‘정량분석을 못 해서 그랬다’고 설명하던데 결국은 흡착물질이 정확히 뭔지 모른다는 사실을 밝힌 거나 다름없다. 합조단 미국 쪽 대표 토머스 에클스 준장이 2010년 7월13일 보낸 이메일에서 ‘백색 흡착물질의 분석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조사 보고서에서 삭제하거나 부록으로 옮기라고 요구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해 10월26일 용산 국방부 조사본부에 가서 어뢰 추진체 현장검증을 했다. 공개된 어뢰 설계도의 수치와 일치하는지 어뢰를 직접 자로 재봤더니 틀리더라. 황당했다. 보고서에는 ‘설계도면과 증거물의 길이가 정확히 일치한다’고 돼 있었다. 윤덕용 합조단장은 ‘발표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에 발견된 어뢰 추진체가 천안함을 공격한 물건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 수는 없지 않나?
“수치가 서로 다르다면 다르다고 보고서에 쓰고 과학자나 시민사회가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논란을 피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썼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천안함 어뢰 공격 발표가 틀렸다는 건가?
“합조단 발표가 맞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가장 유력한 과학적 가설과 증거를 갖고 있는 설명이다. 내 주장은, 폭침설이 비판당할 수 있는 그런 부분에 대해선 충분한 설명이 없고 시간에 쫓겨 보고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여러 의혹 제기는 합조단 스스로 자초한 거다. 민간 항공기도 사고 나면 2년씩 조사해서 발표하는데.”
-합조단 조사기간은?
“92일 걸렸다.”
-재판 과정에서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
“증인을 부르는 과정이 어려웠다. 검찰 쪽 증인들은 대부분 재판에 나오는데 우리 쪽은 힘들어. 천안함 인양할 때 관여했던 업체 사장을 부르려 해도 피하고, 이사급 되는 사람이 대신 나와 잘 모른다고 말해버리고 해 아쉬웠다. 계속 정부와 이런저런 사업을 해야 하는 분들은 법정 진술이 어렵다. 씁쓸했다.”
-천안함 유족들은 천안함 폭침설 의혹 제기를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전사자로서 명예롭게 처우받기 원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천안함 사고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가의 발표를 어떤 성역처럼 두고 얘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신 전 위원 변호를 맡은 이강훈 변호사. 허재현 기자
신 전 위원 변호를 맡은 이강훈 변호사. 허재현 기자
1번 어뢰 폭약량 아무도 몰랐다
<한겨레>는 검찰 공소장과 공판 신문조서 등을 입수해 이 변호사의 주장을 좀더 내밀하게 살펴봤다. 합조단 조사 결과는 과학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근거가 치밀하지 못해 공격당할 구석들이 일부 보였다.
신상철 변호인단이 발견한 어뢰 설계도와 어뢰 발견물 간의 수치 오류에 대해 윤덕용 전 합조단장은 지난해 11월13일 법정에 출석해 “발표 이후 오류를 알았다. (중략) 실수라고 생각했다. (중략) 이 문제를 가지고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과가 있었기 때문에 (중략) 근데 저희가 대체로 보기에도 일치한 것 같아서 그냥 거기에 동의했다”고 답변했다. 합조단의 발표 이전에 충분히 오류를 수정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부족했음을 엿볼 수 있는 답변이다.
또 합조단의 어느 누구도 ‘1번 어뢰’의 폭약량이 얼마인지 몰랐다. 2014년 9월29일 공판에서 황을하 합조단 폭발유형분과 위원은 1번 어뢰의 고성능 폭약의 양이 얼마인지 모른다고 증언했다. 그는 “정보분과에 요청했는데도 알 길이 없었다”고 밝혔다. 1번 어뢰의 폭약량이 티엔티(TNT)로 환산할 때 250㎏인지, 350㎏인지, 심지어 400㎏ 이상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1번 어뢰를 폭발체로 지목한 것이다.
천안함 사고 해역 인근에서 발견된 어뢰추진체 ‘1번’ 글씨가 세월이 흐르면서 부식돼 이제는 희미하게 보인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천안함 사고 해역 인근에서 발견된 어뢰추진체 ‘1번’ 글씨가 세월이 흐르면서 부식돼 이제는 희미하게 보인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천안함 사건의 생존자 중 물기둥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선체 아래에서 거대한 폭발이 있었음에도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신체에 큰 충격을 경험하지 못한 듯한 증언이 재판 과정에서 나왔다. 합조단의 시뮬레이션 결과와 달리 이는 천안함의 침몰이 어뢰 공격이 아니라 다른 충격으로 시작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정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고 때 천안함 왼쪽에서 육안관측 임무인 ‘견시’를 섰던 황아무개 일병은 2012년 8월27일 법정에 출석해 “물기둥은 보지 못했는데, 물이 튀었다고 진술했고 얼굴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천안함이 수중폭발로 버블제트에 의한 역브이(V)자 운동을 했다면 음파탐지실 근무자가 폭발 운동에 가장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때 음파탐지실 근무자였던 김아무개 하사는 2013년 12월9일 법정에 출석해 “넘어지지는 않고 옆으로 튕겼다”고 증언했다. 재판장이 “의자에 앉은 채로 엉덩이가 계속 붙어 있었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김 하사는 “예”라고 답했다. 사고 때 천안함 오른쪽에서 견시를 섰던 공아무개 하사는 2012년 7월9일 법정에서 “사고 당시 주변이 밝아지는 것(섬광)도 보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계속 어두운 상태였다”고 답했다.
합조단의 시뮬레이션 검증 과정에서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는 형태로 두동강 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것도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합조단 선체 구조 및 관리분과 위원으로 활동한 정아무개 박사(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는 2014년 4월28일 법정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는 완벽하게 절단이 되는 것은 모사하지 못했고 그것이 현재 시뮬레이션 기술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을하 위원은 2014년 9월29일 공판에서 “저희들이 당시 시간은 없고, 결과는 빨리 도출하라는 얘기가 있어 국소 부위 시뮬레이션을 했고 (중략) 암산을 해서 이 정도 범위니까 한번 정밀분석을 해보라고 넘겨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시간에 쫓겨 연구가 치밀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하는 증언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 아니라 미완의 사건”
합조단 조사 결과에 일부 오류들이 발견되고 급하게 만들어진 측면이 많지만, 법정 진술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합조단의 조사위원들이 어뢰 폭발설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기뢰 폭발설이나 좌초설을 제기하는 것을 국방부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이라며 국가가 처벌에 나서는 것이 옳은지에 관해서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황교안 총리는 지난해 11월 국정 역사교과서 고시 확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천안함 사건을 ‘폭침’으로 규정하고 역사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대부분의 언론은 천안함 사건을 ‘천안함 폭침’이라고 단정해 보도한다. 역시, 이래도 되는 것일까. 러시아 조사단은 기뢰 폭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보고서를 발행했다.
1964년 베트남 근해 통킹만에서 미국 제7함대 소속 구축함 매덕스호 등이 북베트남군의 어뢰정으로부터 공격당했다고 알려졌다. 미국은 즉각 보복 폭격을 가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전쟁(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1971년 <뉴욕 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등의 보도로 이 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미국 정부가 성급하게 통킹만 폭침 사건이라고 역사교과서에 실었다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신상철 전 조사위원은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미완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신 전 위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부가 이의 처벌에 나서고 과학의 영역을 법정으로 떠넘긴 한국 사회를 세계는 어떻게 평가할까.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의 판결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