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만 명의 소득과 노후가 걸린 국민연금 개혁의 시간이 왔다. 개혁의 배경에는 2055년 적립 기금이 완전히 소진된다는 예측이 깔렸다. 연금 개혁안 보고서의 근거가 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보면 올해 950조원인 국민연금 적립 기금은 2040년 1754조원으로 최고점에 달한 뒤 2055년 바닥난다. 1990년대생이 수급 대상이 되는 해다.
개혁의 가닥은 잡혔다. 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 수령은 ‘더 늦게’ 한다. 목표는 2093년까지 적립 기금을 유지한다는 것 하나다. 연금은 일하는 사람이 은퇴자를 먹여 살리는 구조의 사회보험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속도가가 국민연금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개혁은 논의 단계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국민연금 적립금 안정화가 최우선이라는 ‘재정 안정론’과 국민의 노후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금 수령액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소득 보장론’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료 15% 더 내고 68세에 받는다?
1998년 ‘저부담·고급여’ 방식으로 태생부터 지속하기 쉽지 않은 구조로 출발한 국민연금은 대상이 확대되면서 재정 안정화를 위한 제도 개정이 필요해졌다. 국민연금공단이 밝힌 6월 말 현재 기금 적립금은 983조원이다. 1000조원 가까이 불며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향후 30년은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3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연금 개혁’ 논의가 정권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 이유다.
국민연금 모수 개혁은 연금 제도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얼마를 납부하고(보험료율), 몇 살에 받고(수급 개시 연령), (나중에 얼마를 수령하는지(소득 대체율) 등의 수치를 조절한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9월 1일 국민연금 개편안을 발표했다. 다양한 개편 방안을 제시했지만 연기금이 향후 70년 동안 고갈되지 않도록 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방점이 찍혔다. 보험료를 ‘더 내고’, 늦게 받고, 기금 수익률을 높이자는 것이다. 보험료율은 현재 9%에서 12%, 15%, 18%로 각각 올리는 방안이 담겼다. 수급 개시 연령은 ‘현재 63세, 2033년부터 65세’에서 66세와 67세, 68세로 더 늦추는 방안이 포함됐다. 기금 운용 수익률을 0.5~1%포인트 올리는 방안도 검토되는데 이 변수들을 조합하면 18개의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이 중 보험료율을 15%로 높이고 개시 연령 68세, 기금 운용 수익률 1%포인트를 제고하는 안이 가장 유력하다.
빠진 내용도 있다. 나중에 얼마를 수령할지에 대한 ‘소득 대체율 인상안’이다. 소득 대체율은 은퇴 뒤 받는 연금액이 은퇴 전 소득에 비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소득 대체율을 현행 40%로 유지하는 경우만 반영됐다. 재정 안정론자와 소득 보장론자로 갈린 위원회 내부의 이견과 갈등으로 소득 대체율 인상안은 나오지 않았다.
OECD 중 가장 낮은 국가 재정 투입 목소리도
현재 보험료율은 9%다. 지역 가입자는 매월 소득 중 9%를 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 사업장 가입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회사에서 절반을 내줘 실질적으로는 4.5%를 낸다. 예컨대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면 9만원을 연금 보험료로 납부해야 하는데 그중 4만5000원은 본인이, 4만5000원은 사용자가 내는 것이다. 한국의 보험료율은 25년째 9%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보험료율을 높이는 데는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세계 최저의 공적연금 보험료 수준에도 1998년 개혁 이후 지난 25년간 보험료율를 단 1% 올리지 못했다”며 “보험료율을 빠르게 올리지 않으면 적자분이 쌓여 미래의 빚이 돼 미래 세대에게 2~3배의 부담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 투입도 변수로 남아 있다.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국민연금의 재정 적자를 막을 수 없다. 기한을 연장할 뿐이다. 한국 정부의 공적연금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8%로, OECD 회원국 평균인 7.7%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이에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인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는 국가 재정을 투입하고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여야 된다는 개혁안을 제안했다. 이른바 ‘3-1-1.5’ 개혁안이다. 보험료를 3%포인트 올리고 매년 GDP의 1%에 해당하는 정부 재정을 투입하고 기금 운용 수익률을 1.5%포인트 올리면 기금을 GDP 대비 120% 수준으로 100년 이상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GDP 상승률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1년에 올릴 수 있는 보험료의 상향선은 0.6%다. 보험료율을 15%로 올리려고 한다면 현재 9%에서 추가로 6%를 끌어올려야 하니 개혁까지 12년이 걸린다. 그 와중에 소위 미적립 부채는 더 쌓인다. 개혁의 속도가 늦어지는 것이다. 개혁이 1년 늦어지면 그때 요구되는 보험료는 1년에 0.5%씩 더 올라가게 된다. 개혁의 속도가 연금의 속도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김 교수가 재정 투입을 주장한 이유다. 보험료율이 상승하면 근로 소득자 개인뿐만 아니라 임직원의 연금 보험료를 분담하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부담도 커진다. 이는 결국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인플레이션과 한계 기업 도산 등 다른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
김 교수는 “재정 1%가 투입되면 보험료율이 3.5% 인상되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난다”며 “월급쟁이나 기업에만 국민연금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국내 자산 치중된 연금 포트폴리오도 바꿔야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반드시 동반돼야 하는 것은 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최근 10년(2013~2022년) 전 세계 주요 공적연금의 수익률을 보면 한국은 4.7%인데 반해 캐나다는 10%, 미국은 7.03%, 노르웨이는 6.69%, 일본은 5.78%다.
국민연금의 현재 목표 수익률은 4.5%다. 이를 6%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기금 운용 포트폴리오를 재배치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주식과 국내 채권에 쏠려 있는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0년간 한국이 급격하게 성장했지만 한국이 이미 1%대 저성장 기조에 돌입한 상황에서 전체 운용 자산의 50%가 국내 자산에 묶여 있는 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1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의 자산 포트폴리오에 따르면 국내 주식 비율은 14.7%, 해외 주식은 27.9%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국내 채권 33.6%, 해외 채권 7.2%, 대체 투자 16.0%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 주식과 국내 채권만 48.3%에 달한다.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여전하다. 특히 당장 주머니가 털릴 2030 청년층의 시선은 서늘하다. 정년과 연금을 수급하는 연령 간의 괴리감도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주요 일자리의 평균 퇴직 연령이 49세 정도에 불과해 법적 정년 60세에 비해 10년 이상 빨리 퇴직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퇴직 사유도 10명 중 1명 정도 만이 정년 퇴직했고 10명 중 4명 정도는 권고 사직과 정리 해고 등 비자발적 조기 퇴직했다. 49세에 퇴직해 68세까지의 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국민연금의 셈법은 복잡하다. 우리 사회의 노동 시장 구조, 청년 세대 일자리, 저출산과 고령화, 한국의 미래 경제 성장까지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10월 발표할 연금 개혁안에 연금 구조 개혁 방안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개의 투명성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한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는 올해 1825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계 결과가 나왔다. 미적립부채는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중 부족한 액수를 말한다. 연금 가입자 1인당 8200만 원가량의 빚을 졌다는 의미다.
윤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개혁은 시급한 문제인데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니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정부가 현재 미적립 부채(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대비 부족한 액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현재 쌓인 기금 1000조원을 고려해도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최소 1500조~17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개혁이 늦은 만큼 모든 세대가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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