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것은
1985년 고졸 연구보조원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 입사해 2014년 여성 임원(상무)이 된 양향자 의원(무소속)은 “여성이 (외국에) 나가면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겠나, 이런 인식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1995년 미국에서 열린 반도체 콘퍼런스에 참석하고 싶어 보고서와 함께 “프로그램을 듣고 와서 전 사원에게 공유하고 기술 이전에 힘쓰겠다”는 e메일을 사장에게 보냈다. 짧은 답이 왔다. “다녀오시오.” 사장이 보고서에 감동했다는 후일담이다. 그는 “나를 임원으로 발탁한 건 삼성이 당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녀(禁女)의 직무’도 사라진다. 1980년대까지 연구원 중 여성은 없었다. 양 의원이 첫 수석연구원이다. 현재는 여성 엔지니어가 상당수 활약 중이다. 1994년 삼성종합건설(현 삼성물산)에 입사한 박유정(조경 부문 기술 명장) 수석은 여성으로는 드문 조경 총괄이다. 그는 경기도 수원시의 광교호수공원 조성으로 2018년 세계조경가협회상을 받았다.
입사 당시 건설 부문 여성 신입은 박 수석 등 두 명뿐이었다. 동기는 첫째를 임신하자 퇴사했다. 육아로 힘들던 그도 퇴사를 고민했다. 그는 “사표를 내려고 면담했는데, 당시 상사가 ‘네가 그만두면 그냥 박유정 대리가 그만두는 게 아니고, ‘여성’ 박유정 대리가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이번 허들을 못 넘으면 여성 후배들도 계속 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사직서 제출을 접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장이 될 때 ‘여직원이 중간관리자 하는 게 가능하냐’는 말이 나왔지만, 그 후로는 여성이라고 불이익을 당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유리천장 깨기’는 진행 중이다. 지난해 입사한 황유진(24) 삼성엔지니어링 프로도 “금녀의 벽을 무너뜨리겠다”며 현장 업무에 지원했다.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폐수 현장의 토목공사 관리를 담당한다. 현장에 여성은 그뿐이다. 그는 “협력업체에서 가끔 사무 보조직으로 착각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며 “모범사례가 돼 여성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모바일·반도체 부문 등에서는 여성 인력 증가세가 가파르다. 현재 개발부서는 5명 중 1명, 영업마케팅부서는 3명 중 1명이 여성이다. 가전사업부는 여성이 더 많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기존에 거의 없던 대형 가전(세탁기·에어컨 등) 출장 수리 여성 기사를 늘리고 있다. 아직 여성이 일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다. 삼성중공업은 몇 년 전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해 여성 직원이 늘었다. 하지만 장기 불황으로 신규 충원이 줄자 여성 직원도 줄었다. 지난해 기준 이 회사 여성 인력은 3.6%다.
여성 관리자와 임원 증가에 따른 조직 변화를 따라잡기 위한 준비에도 나섰다. 2001년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최초로 여성 간부만을 위한 리더십 교육 과정을 운영했다. 그해 삼성전자 여성 과장은 국내 임직원 4만 명 중 200여 명이었다. 여성 부장은 단 11명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이 2000년대 중반 사라졌다. 역설적으로 이즈음 여성 중간관리자가 많이 늘어서다. 삼성 관계자는 “그때쯤 여성 별도 교육이 역차별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이 나왔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임원 후보군인 CL4(부장급) 직급 여성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만 운영한다. 삼성전자의 여성 임원 비율은 6.5%(2021년)로 10년 전의 1.5%(2011년)보다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절대 수치는 여전히 낮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여성 직원 비율은 26.2%다.
최은경·고석현·이희권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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