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 박세리 박세리희망재단(이하 재단) 이사장과 부친 박준철 씨 부녀 사이가 회복하기 힘든 지경으로 치달았다.
재단은 지난해 9월 부친 박 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최근 해당 사건에 대해 최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박 이사장은 18일 서울 강남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단이 박 씨를 (새만금 해양레저관광복합단지 개발사업 우선협상자를 선정 관련)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소한 배경과 사건 이전부터 이어져 온 부녀 사이 갈등 등에 대해 설명했다.
△박세리 18일 기자회견 "내가 먼저 고소 제안"
씁쓸함을 더한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부친 박 씨와의 편치 않았던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부친 박 씨는 26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딸에게 골프를 시킨 이유를 '돈이 될 것 같아서'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박 이사장은 오랜 기간 해외에서 골프여제로 군림하면서 상금과 후원 등으로 500억 원 이상을 벌었다.
박 이사장은 은퇴 후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2013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은퇴 전까지 미국에서 열린 대회 상금만 해도 126억 원 정도"라면서 "상금 외의 비용까지 합치면 수입은 500억 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상금의 대부분을 아버지의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며 "골프에 매진했을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빚을 내면서도 뒷바라지를 해주신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을 골프에 입문시킨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내보이며, 외로운 해외 생활에서 번 돈의 상당액을 아버지를 위해 아낌없이 써 왔던 것이다. 그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버텨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물리적 임계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18일 기자회견에서도 박 이사장은 이 같은 과정을 숨기지 않고 토로했다. 박 이사장이 먼저 부친 박 씨 고소를 이사회에 제안했다고 밝힌 대목에서는 '오죽했으면'이라는 심경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한 변호사는 TV방송에서 "이번 사건도 결국에는 어떤 사업상의 이득 때문에 딸에게 사전 협의하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인 것 아니냐는 의혹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골프관광 사업에 '박세리' 이름 내세워 가짜 의향서 제출
사건의 전말은 정부가 2022년 6월 새만금 해양레저관광복합단지 개발사업 우선협상자를 선정하면서 드러났다.
이 사업은 골프 관광을 테마로 한 3000억 원대 개발사업이다. 박 씨가 민간업체로부터 국제골프학교 설립 등 공동참여 제안을 받고, 재단의 법인 도장을 위조해 재단이 사업에 참여한다는 가짜 의향서를 제출한 것이다. 골프관광이 테마인 만큼, '박세리'란 이름값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상당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업을 추진해 온 새만금개발청은 재단 등을 상대로 확인 과정을 거쳐, 2년 후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했다.
재단은 "박세리희망재단은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정관상 내·외국인학교 설립 및 운영을 할 수 없다"며 "국제골프학교 설립 관련 사업을 진행한 사실이 전무하고, 향후에도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아빠 채무 관계 다 변제… 감당할 수 있는 수위 넘었다"
이번 사건은 재단과 부친 박 씨 간의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딸 박세리와 부친 박준철의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박 이사장이 18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아빠와) 현재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논란 이후) 전혀 소통하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전혀 대화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심상치 않은 부녀 사이임을 털어놓는 착잡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부녀 사이 갈등은 부친 박 씨의 금전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박 이사장은 이날 "가족이기 때문에 아빠와 관련된 채무 관계를 다 변제해 드렸지만, 더 이상 변제할 수 없는 부분까지 오게 됐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위가 선이 넘었다. 무엇이 한번 정리되면 기다린 것처럼 또 무언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매번 그렇게 흘러왔다. 가족이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이제는 그렇게 했다가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힘들 것 같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더 이상 나한테 채무관계를 가져오셔도 내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박 씨의 채무 변제에 쏟아부으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골프여제의 길을 열어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표현해 왔지만, 되풀이돼 온 금전 문제와 감당하기 힘든 아버지의 일탈이 갈등 폭발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은퇴 이후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부터 열심히 살아서 벌어야 한다"고 밝힌 대목에서는, 박 이사장에게 그동안 가족이나 아버지라는 이름이 굴레였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실제 부친 박 씨는 26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딸에게 골프를 시킨 이유에 대해 "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세리가 다행히 잘 따라와 줬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딸을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여긴 것 아니냐는 눈총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사건도 사업상의 이득을 목적으로 재단 이사장인 딸과 사전 상의나 협의, 동의 없이 벌인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국민적 영웅 박세리, 후배 양성 및 국가 이미지 제고 기여
박세리 이사장은 세계적인 골프여제이자, 한국 골프의 전설이다. 19965년 프로 데뷔 후 5개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미국 LPGA투어에서 25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세계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특히 국제금융위기 상황이었던 1998년 US여자오픈 챔피언십 대회에서 맨발 투혼을 선보이며 우승컵을 들어 올려,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2016년 은퇴 이후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도쿄 올림픽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세리희망재단을 세워 골프스포츠 산업 전반에 걸친 마케팅과 다양한 후원사업은 물론 LPGA, 주니어 대회, 아시아 아마추어 대회 등 많은 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후배 선수들 양성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부친 박준철 씨는 딸 박세리를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생활고를 떠안으면서까지 힘든 뒷바라지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의 노력이 퇴색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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