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의 뉴욕직설] 한국과 미국의 의회 운영 방식 비교와 시사점
[강명구 기자]
▲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제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국회부의장 선출을 놓고 여야 합의 없이 표결 처리한다"며 규탄하고 있다. |
ⓒ 유성호 |
집권 여당이 국회 개원을 보이콧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상임위원장이 여야 합의에 의해 배분되지 않았다는 게 명분이다. 여당과 합의되지 않은 모든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수백 건의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도 공언하고 있다. 국회를 완전히 무력화하겠다는 발상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총선 결과에 대해 사실상 불복하는 행태를 합리화하면서 미국 사례를 거론한다. 그렇다면 미국 의회는 과연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여야 간 원 구성 협상이 활발할까?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회를 보이콧하기도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입법독재' 혹은 '의회독재'가 미국 의회에서는 제도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다.
미국과 한국의 의회 원 구성 차이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1988년 제13대 국회부터 개원(원 구성 포함)이 법 절차대로 제때 이루어진 적이 없다. 미국은 정반대다. 1789년 이후 118번의 의회 첫 회기가 법률이 정한 시한을 넘긴 적이 없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2월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임기 두 번째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
ⓒ UPI/연합뉴스 |
한국의 경우도 사실 법으로 개원 시기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 제5조 3항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임시회는 의원의 임기 개시 후 7일에 집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제15조는 그 첫 집회일에 의장과 부의장을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도록, 제41조는 "첫 집회일부터 3일 이내"에 본회의에서 비밀투표로 상임위원장을 뽑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국회의원 임기 시작 10일 이내에 국회 원 구성을 마쳐야 한다. 그동안 국회가 법을 어겨 온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이 문제 삼는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해서도 미국 의회에서는 여야 간 협상 없이 다수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상임위원장직을 독점한다. 이러한 제도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은 1910년의 '캐논 반란'이었다.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조셉 캐논은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임명하고 위원회 배분을 통제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은 의원들의 반발로 의장의 이런 권한이 폐지되었다. 대신 다수당 의원총회에서 위원장과 위원을 선출하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고, 다수당 독점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원칙은 1946년 '입법재조직법'을 통해 더욱 공고화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 하원에서는 다수당 지도부가 상임위원장 후보를 지명하면 해당 위원회에서 공식 선출하고, 상원에서는 본회의 표결을 거치지만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하원과 마찬가지로 다수당의 운영위원회에서 상임위원장을 지명하면 그대로 통과된다.
실제로 2022년 11월 미국 의회 선거 결과, 하원은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9석 앞서며 다수당이 되고, 상원은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2석 앞서며 다수당이 되어 각각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차지했다. 이처럼 미국 의회는 다수당 지배 구조가 확고한 체제라 할 수 있다. 제22대 한국 국회로 치면 더불어민주당이 당연직으로 18개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독점한다는 얘기다.
사실 한국 국회법에도 상임위원장 선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존재한다. 국회법 제48조 1항은 교섭단체 대표의원이 "첫 임시회의 집회일부터 2일 이내에 의장에게 상임위원 선임을 요청"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임위원 명단이 국회의장에게 제출되면 바로 다음 날까지 본회의에서 비밀투표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 선출 방식은 다수결 원칙이다.
그러나 '의회독재'라는 비판을 받는 제22대 국회에서조차 이런 국회법에 명시된 원 구성 절차가 준수되지 않고 있다. 의원 임기가 시작된 지 10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7개 상임위원장직이 여전히 공석인 상태다. 여야 모두 이러한 불법을 묵인하고 방조하며 자신들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현 집권 여당이 법치주의와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 2023년 11월 13일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국회의사당의 모습. |
ⓒ AFP=연합뉴스 |
미국 의회가 이렇듯 승자독식 구조를 제도화해 온 이유는 책임정치 구현에 있다. 미국은 1787년 헌법에서부터 2년 주기로 하원 전체 의석과 상원 3분의 1 의석에 대한 선거를 실시하도록 명시했다. 이 2년 주기 의회 선거는 4년 중임제 대통령 선거와 연동되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역할을 한다.
이렇듯 2년 주기로 유권자의 심판이 가능하기에 미국 의회에서는 회기 초 주요 입법이 쏟아진다. 속전속결로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입법에 적극 반영해야만 2년도 채 남지 않은 차기 선거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거제도 역시 하원, 상원, 대통령 선거에 걸쳐 단순 다수 득표제가 일관되게 적용되는 승자독식 방식이다. 하원의원은 인구비례 선거구에서, 상원의원은 각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대통령 선출도 유사한데, 유권자가 선출한 선거인단 투표에서 해당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그 주의 모든 선거인단 표를 싹쓸이한다. 따라서 미국은 선거에서 의회 운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정치과정에 동일한 다수결 원칙을 관철시킴으로써 유권자에 의한, 유권자를 위한 책임정치가 구현될 수 있도록 제도화해 온 것이다.
물론 단순 다수 득표제는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일치로 인해 민의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보다 전체 득표수에서 290만 표 이상 뒤졌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승리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일부 경합주에서의 선거 결과가 대통령 당락을 좌우할 수 있기에, 투표의 비례성 문제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선거 제도와 의회 운영 전반에 걸쳐 다수결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참고할 만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충남 천안 동남구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 만찬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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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총선은 윤석열 정부 2년에 대한 중간평가로, 국민의힘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22번의 총선 중 집권여당으로선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1988년 이후 여소야대 정국이 몇 차례 있었지만, 집권여당이 의석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한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국회 개원을 보이콧하는 것은 민심을 무시하는 오만함이자 선거 결과 불복이나 다름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다수결 원리에 기반한 선거제도와 합의제 중심의 국회 운영 간 괴리에 있다. 상충된 원칙들로 인해 다수 민의가 입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소수당에 의한 국회 운영 발목잡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선거제도와 국회 운영 전반에 걸쳐 다수결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여, 유권자의 의사가 정책에 반영되고, 책임정치가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임위원장 배분에서도 다수결 원리를 더욱 명시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야 역대급 참패 후에도 개원을 거부하는 여당의 오만한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정치 제도 개혁 차원에서 국회의원 임기 단축도 적극 고려해 볼 만하다. 현행 4년의 임기는 유권자들의 의사를 적기에 반영하기에는 다소 길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무시해도 되는 상황이 자꾸 반복되는 것이다. 미국 처럼 2년 주기 선거로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와 심판이 자주 이뤄진다면, 민의를 더욱 적극 반영한 입법이 가능하고 개원 거부도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향후 4년 중임제 개헌이 추진된다면,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해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나아가 지방선거까지를 연동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단축 개헌 요구가 본격화될 경우, 국회의원 임기 단축 문제도 함께 논의되길 바란다. 어느 일방의 양보나 굴복이 아니라, 정치권과 대통령이 대승적 차원에서 상생의 개헌에 합의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발전적 제도 개선을 도모해 볼 만하다.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 안정성과 국민 의사 반영이라는 두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는 한국형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선거제도와 국회 운영 및 임기 등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로 정치가 국가 발전을 촉진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정치가 4류' 라는 자조와 냉소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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