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아이들에게 써야 할 교재비와 강사비를 빼돌리고도 처벌받지 않았던 어린이집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국고지원금으로 명품백을 구입해도 처벌할 수 없다던 법원의 시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6일 사기와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어린이집 원장 문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취지로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부풀린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한 뒤, (부풀린) 금액을 되돌려 받은 행위는 횡령”이라면서 “무죄판단을 내린 원심은 법리오해”라고 판결했다.
문씨는 모 사회복지법인이 설립한 어린이집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아내와 동생을 직원으로 등재해 급여를 받아 챙기고, 교재공급업자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기 위해 부풀려진 특별활동비를 학부모들로부터 받아온 혐의를 받았다.
재판과정에서 문씨는 “리베이트는 어린이집의 소유가 아니라 교재공급업자의 소유”이기 때문에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가 아니어서 횡령죄가 안된다는 주장을 폈다. 도덕적 지탄을 받을 지 몰라도 처벌대상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지금껏 비리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유치원·어린이집 원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변명인 셈인데, 이 황당한 변명은 법정에서 매번 받아 들여졌고, 그때마다 무죄선고를 받고 비리 유치원장들은 풀려났다.
실제로 지난 해 부산에서는 수십억원대 급식비를 빼돌린 어린이집 원장과 급식업자들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횡령액이 1억원을 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일단 학부모에게서 받아낸 돈은 이미 유치원의 소유이고, 유치원은 원장들 소유이기 때문에 어떻게 돈을 쓰던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문씨 역시 항소심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벌금형(300만원)이었지만 기소된 혐의에 비하면 무죄판결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이 문씨에게 유죄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앞으로는 상황이 바뀔 수 밖에 없어졌다. 유치원 설립형태에 따라 유죄판결이 내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어린이집 운영자들 사이에서는 긴장감까지 감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 각급법원에는 문씨와 비슷한 류의 사건이 상당수 계류 중이다.
의정부지법에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200억원대 특활비 리베이트를 뿌린 유치원·어린이집 교재업체 대표를 비롯해 50여명의 유치원·어린이집 원장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문씨처럼 사회복지법인이나 종교단체, 법인형 시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부산지법에는 5~6개 유치원을 운영하며 100억원대 특활비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기업형’ 유치원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다만, 문씨의 경우 사회복지법인이 설립한 어린이집이었기 때문에 개인이 설립한 유치원·어린이집과는 사정이 다를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개인이 설립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경우 여전히 무죄판결 가능성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치원들의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관련법령의 개정과 유치원·어린이집의 법인화 등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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