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전직 스카우트가 있다. 외국인 선수를 찾는 게 업무였다. 현지에서 직접 테스트 하는 경우도 많다. 투수의 경우는 던지는 걸 직접봐야 했다. 그런데 고민이 있었다. 공 받아줄 사람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그럴 때면 알바를 구했다. 지역 마이너리그나 대학 포수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물론 적지 않은 일당을 지불해야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구라다>는 핀잔을 준다. “아니, 야구를 30년이나 한 분이 그것도 못 받아요?” 투수 출신인 그는 펄쩍 뛴다. “허허, 모리는(모르는) 소리마이소. 그걸 우예 받십니꺼. 몬 합니다, 몬 해.”
물론 핀잔은 농담이다. 150㎞에 육박하는 공을 앉아서, 가끔은 변화구까지….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 가끔 1군 경기에서도 급해지지 않는가. 포수가 빠지면 대신할 사람 찾느라고 말이다. 그럴 때면 모두가 꼬리를 내린다. 혹시라도 지목받으면 “아이고, 전 안해봤어요.” 감독, 코치와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슬슬 피하기 일쑤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두산) 김태형 감독의 말은 오버다. 지난 8일 잠실 경기를 준비할 때였다. 오전에 있었던 다저스의 완봉 소식이 화제였다. 눈을 반짝이는 취재진들에게 감칠맛 멘트 하나를 토스했다.
“어휴, 죽는 줄 알았어.” 무려 11년전 에피소드였다. 베이징 올림픽 코치 때 얘기다. 불펜 포수가 없어서 그가 공을 받아줘야 했다. 특히나 21살짜리 에이스는 두려운 존재였다. “현진이는 그 때도 공이 워낙 좋았어. (불펜에서) 급하게 마스크 쓰고 미트 꼈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물론 MSG가 듬뿍 뿌려진 대사다. 아무리 손 놓은 지 몇 년이 지났대도 그렇다. 평생 포수 출신이 그렇게까지 엄살 떨 일은 아니다. 그건 순전히 김 감독의 탁월한 개그감이다. 어떤 리액션이 분량 확보를 보장하는 지 너무나 잘 아는 거다.
역사적인 완봉, 인상적인 베이스 커버 장면
역사적인 완봉 경기였다. 그 중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4-0이던 5회 초였다. 1사 후 닉 마케이키스의 배트가 번쩍였다. 강한 타구는 1루수(데이빗 프리즈)를 통과했다. 두번째 저지선은 2루수였다. 맥스 먼시가 몸을 날렸다. 간신히 글러브에 담을 수 있었다.
문제는 텅 빈 1루였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날렵한 몸매가 나타났다. 나비처럼 날아서, 사뿐하게 즈려밟았다. 1차 판정은 아웃이었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판별이 어려웠다. 원정 팀 덕아웃이 분주해졌다. 트집이라도 잡아보려 인터폰에 매달렸다.
중계 화면은 타임머신을 작동시켰다. 전광판에 리플레이가 반복됐다. 스타디움의 홈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무리 찾아도 시비 거리는 없었다. 몇 센티미터 차이였지만 명백한 나이스 콜이었다.
타자/주자의 달리기는 녹록치 않다. 1루까지 도달 시간이 평균 4.38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ML 376명 중 106위의 속도다. (전체 1위는 코디 벨린저 3.88초)
반면 커버맨은 느림보다. 미국 오자마자 ‘어슬렁거림’으로 잔소리 한 바가지를 들어야했다. 무엇보다 까다로운 타이밍이었다. 스텝이 꼬일 수도 있고, 충돌이나 부상의 위험도 걱정됐다. 무엇보다 내전근을 지켜야했다.
모두의 근심어린 시선이 쏠렸다. 그런데 웬걸. 너무나 완벽했다. 거칠고 우악스러움은 전혀 없었다. 깔끔하고 부드러웠다. ‘어떻게 저 몸에서 저런 날램과 유연함이 나올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웃시킨 게 전부가 아니다. 플레이 자체의 완성도와 예술성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아마도 이날 밤 가장 열심히 친 박수였을 것이다.
사방이 용비어천가
찬사가 쏟아진다. 사방이 칭송하는 소리다. 하필이면 로테이션 다음날이 클레이튼 커쇼다. 4실점으로 진땀을 뺀 뒤 이런 멘트를 남겼다. “누군가 잘 하면 따라하고 싶어진다. (앞서 던진) 뷸러는 대단했고, Ryu는 믿을 수 없었다. 둘이 쌓은 모멘텀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어디 커쇼뿐이겠나. 감독과 동료 선수들, 현지 미디어들까지 한 목소리다. 용비어천가가 사방에 울려퍼진다.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그런데 묘한 게 있다. 찬양의 내용이다. 그것들은 일정한 패턴을 지녔다. 논리 전개가 비슷하다는 말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빗맞은 타구를 많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마운드에서 해내는 투수다.” (맥스 먼시)
“아닌 것 같지만 타자와 싸우는 멘탈이 대단한 선수다. 본인의 공을 정말 잘 활용할 줄 안다. 놀라운 투수다.” (코디 벨린저)
“투구에 대한 이해도가 천재적이다. 지금 이 타이밍에 타자와 어떤 승부를 해야 효율적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매우 정확하게 그걸 실천해낸다.” (오렐 허샤이저)
“다양한 무기를 가졌다. 게다가 공에 대한 감각도 탁월하다. 타자들의 약점도 잘 파고든다. 자신의 플랜대로 게임을 풀어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무엇보다 92마일로도 필요한 구속을 낼 줄 안다. 그 외에 4가지 구종을 구석구석에 꽂아넣는다. 그의 투구를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데이브 로버츠)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주장하는 바는 비슷하다. 각각의 코멘트 앞에 이런 전제를 달아보시라.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당신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또는 “그냥 볼 때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는요~.” 이런 메시지가 깔려있다.
그러니까 쉬운 언어로 풀면 이런 말들이다. “그냥 볼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죠. 그런데 안 그래요. 우리 같은 ‘선수’ 입장에서 보면 완전 달라요. 정말 대단한 투수예요.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면 손도 못대요. 그런 걸 던진다니까요.”
투구, 수비, 견제 어느 부분도 빈틈을 찾기 어렵다
상당수 팬들이 그런 의문을 느낀다. ‘잘 던지기는 하는 것 같다. 왜냐고? 남들이 다 그러니까. 그리고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까.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도대체 저 공이 그렇게 대단한 공인가? 경쟁력 있는 팀을 완봉시킬 정도인가? 왜들 저렇게 못 치지?’
기껏 해봐야 91~92마일이다. 폭발적인 느낌은 별로다. 정확성 때문인가?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100%는 아니다. 몰리는 것들도 꽤 있다. 변화구? 그것도 그렇다. 화면상으로는 대단치 않다. 커브는 느릿하고, 체인지업이나 커터의 꺾임도 느낌이 대단치 않다.
그런데 왜 못 칠까. 왜 급급하고, 거둥거릴까. 뻔한 패턴이고, 눈에 보이는 스피드다. 하지만 그런인 데 대응이 안될까. 맥없이 헛스윙할 공들은 아닌 데 말이다. 1실점, 무실점으로 끌려갈 상대는 아닌 데 말이다.
사실 설명으로는 100%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직접 타석에 서보고, 함께 게임하지 않으면 절대 모를 얘기다. 우리야 그냥 미뤄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선수’끼리는 안다. 막상 맞닥뜨리면 느껴지는 게 있다. 그게 바로 내공이다.
느릿하고, 어슬렁거리는 것 같다. 전력질주가 가능할까? 그런데 달릴 때는 달린다. 어쨌든 1루에서 아웃 타이밍은 만들어낸다. 그것도 세련되고, 깔끔한 동작으로 연결시킨다. 난이도 있는 타구도 별 일 아닌듯 처리한다. 견제구도 설렁설렁이다. 하지만 주자는 꼼짝하기 어렵다.
이상하다. 서두르는 법도 없고, 용을 쓰지도 않는다. 이를 악무는 것 같지도 않고, 한결같은 뚱한 표정이다. 그가 하면 어려워 보이는 게 없다. 세상 쉬운 게 야구 같다. “땀도 별로 안 흘리던데?” 로버츠 감독은 키득거린다.
조그만 틈이라도 용납이 안된다. 그걸 비집고 들어가서 허물어트리는 게 ML이라는 정글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빈틈이 없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데, 막상 붙으면 마땅한 공략 포인트가 없다.
분명 만만해 보인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그게 상대를 엄청 어렵게 만든다.
저스틴 터너가 완봉승에 이런 멘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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