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커뮤니티서 정부 방침 조롱 글 속속
교사 “아이들에게 뭐라 설명할지 모르겠다”
공무원들이 국가 애도 기간 세부 지침에 반발하는 글들이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1일 공무원들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에는 “조의 리본, 이건 왜 차라고 하는 거냐?”는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는 “사무실에서 (리본을) 차고 있다”며 “웃겨서 웃음도 안 나온다”고 적었다.
해당 글에는 “사무실에서 (리본을) 참?ㅋㅋㅋ” “우린 다 안 하는데 돈 아깝다. 세금 버리는 방법도 가지가지”라고 비웃는 댓글이 달렸다.
해당 커뮤니티는 본인 회사 메일로 인증을 해야 하고, 인증하면 소속 회사가 공개된다. 게재된 글과 댓글을 쓴 이들의 소속은 ‘대한민국 정부’로 소개돼 있어 현직 공무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근조 리본은 XX”이라는 제목의 다른 글에는 “돌아가신 분들은 안타까운데 ‘뇌절’도 적당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뇌절’이란 똑같은 언행을 반복해 상대를 질리게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신조어다. 상대방으로 인해 ‘뇌의 회로가 끊어지듯 사고가 정지된다’는 의미다. 대화나 논쟁에서 상대방의 논리가 빈약하거나 오류가 있을 때 조롱하는 뜻으로도 확대돼 사용된다.
이 글엔 “리본도 셀프로 만들어야 한다” “(리본을) 받자마자 책상 서랍에 처박았다”는 댓글들이 작성됐다.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검은 리본을 달고 수업하라고 한다”면서 “아이들이 왜 리본 달고 있냐고 물으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그는 “왜 군인이 훈련받다 죽었을 때는 리본 안 다나. 그것도 슬픈 일인데”라며 “국가 애도 기간은 한 명이나 열 명이 죽으면 안 되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죽어야만 하는 건가.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때 사람들 많이 죽었는데 왜 국가 애도 기간 지정 안 됐나”라고 반문했다.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는 2014년 10월 경기 성남 판교 야외공연장의 환풍구가 붕괴해 환풍구 덮개 위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사람들이 약 20m 아래로 추락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이 사고로 16명이 숨졌다.
이 글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국가 애도 기간인 5일까지 교직원은 검은 리본을 착용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A씨는 “이태원 압사 참사가 슬픈 일은 맞는데 기준이 없다”면서 “아이들이 이게 공정과 상식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며 글을 맺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30일 각 시도는 물론 중앙부처 등에도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으로 착용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무원들은 근조 글씨가 없는 리본을 찾기 어려워지자 뒤집어 다는 등 혼란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명백한 참사를 사고로 표현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현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면서 “근조 글자가 없는 검은 리본을 쓰라는 지침까지 내려 행정력을 소모할 때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태원 참사로 중상자였던 이들이 잇달아 숨지면서 사망자는 156명으로 늘어났다.
이태원 사고 사망자 가운데 여성은 101명, 남성은 55명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는 총 151명(중상 29명, 경상 122명)이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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