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Click map below !!)

Turkey Branch Office : Europe & Middle East (Click map below !!)

Mobile Phone Cases (Click photo here !)

Mobile Phone Cases (Click photo here !)
Mobile Phone Cases

Saturday, February 18, 2023

무임승차 폐지 땐 벌이 절반이 사라진다···지하철 택배 노인의 하루

 지난 16일 오전 8시30분, 서울 중구 을지로4가역 인근 한 빨간벽돌 건물 3층 사무실. 말린 생선이 내걸린 중부건어물시장 초입, 건물 외벽에 ‘실버퀵택배’ 현수막이 붙은 이 곳에 지하철 실버택배원 최영식씨(73)가 들어섰다. 이른 아침인데도 6~7명의 지하철 택배원들이 일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65세 이상으로, 지하철을 탈 때 요금을 내지 않는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겨 최씨 순서가 왔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인근 사무실에서 서류를 받아 경기 군포시 회사로 가져다주는 일이다. 스마트폰 지도 앱에서 목적지를 찾은 최씨는 “혼자 길 찾으려다가 헤맨다.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대로만 가면 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들이 배달하는 물건은 서류·꽃·근조기부터 깜박 놓고 온 자동차키, 계약에 필요한 도장 등 다양하다. 기본운임은 1만1000원이지만 같은 자치구 안에서는 8000~9000원으로 단가가 낮아진다. 경기 수원이나 일산·인천처럼 회사로 돌아오는 데 한나절 정도 걸리는 곳은 2만원 정도다. 운임의 30%는 회사에 수수료로 내야 한다.

지하철택배원 최영식씨(73)가 경기 군포시 군포역 개찰구에 자신의 카드를 찍고 있다. 김세훈 기자

아차.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이동하던 최씨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5호선 광화문 방면으로 타야 하는데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방면으로 잘못 탔다. 급히 스마트폰을 꺼낸 최씨가 경로를 다시 찾았다. 도착 시각이 예정보다 5분 늦춰졌다. 최씨는 “고객이 시간을 독촉하는 때도 있는데, 이번 건은 그렇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삑. 6호선 효창공원앞역에 도착한 최씨가 우대권 교통카드를 개찰구에 찍을 때, 기자가 찍은 일반 교통카드에는 1250원이 찍혔다. 사무실은 역에서 도보로 10분쯤 거리에 있었다. 최씨는 웬만해선 버스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지하철과 달리 승차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1만원짜리 배달 건의 경우 3000원을 수수료로 떼고 왕복 버스비 2400원을 제하면 남는 게 4600원이다. 간혹 배달을 맡긴 곳에서 버스비를 챙겨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최씨는 걷는다.

효창공원앞역-용산역을 거쳐 1호선 군포역에 도착했다. 기자의 교통카드에 1650원이 찍혔다. 익숙한 길인듯 도착지를 찾은 최씨는 서류를 전하고 1만6000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밖으로 나온 최씨는 회사에 “배달 완료”라고 보고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최씨는 바로 회사로 향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최씨는 직접 챙겨온 생고구마 2조각과 견과류 한 봉지로 점심을 해결했다. 1호선 군포역에서 2호선 을지로4가역에 내리니, 기자의 교통카드에 1750원이 찍혔다.

최씨가 오전에 번 1만6000원 중 수수료 30%를 제하고 남는 돈은 1만1200원. 기자가 최씨와 동행하며 지출한 교통비는 총 4650원이었다. 최씨는 무임승차로 이 금액을 아꼈고, 1만1200원 수익을 지킬 수 있었다.

지하철택배원 최영식씨(73)가 출발하기 전 스마트폰을 통해 경로를 검색하고 있는 모습.(왼쪽) 경기 군포시의 회사에 서류를 전달한 후 회사에 보고하는 모습(오른쪽) 김세훈 기자
“체력이 되는 데까지 일하고 싶다”

오후 1시38분, 회사에서 대기하던 허성일씨(가명·76)가 길을 나섰다. 오전에 일찌감치 강남 신사역까지 한 건을 배달하고 계속 기다리던 참이었다. 허씨가 받은 일은 서울 광진구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근조기를 받아 노원구 을지병원에 설치하는 것으로, 운임은 1만5000원이었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근조화환, 근조기가 모여든다. 허씨는 터미널 안내데스크에 몇 번 물은 끝에 근조기를 찾아냈다. 허씨의 만보기에는 어느새 1만 걸음이 찍혔다. 일과를 마치면 2만보 정도 걷는다고 허씨는 말했다.

병원에다 근조기를 설치하고 나오자 오후 3시30분이었다. ‘집에 갈까’ 망설이던 허씨가 을지로4가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운이 좋으면 한 건 더 할 수 있을 애매한 시간대였다. 허씨는 “일감이 줄어 오후 6시 이후로는 주문이 별로 없다. 하루 2~3건이 지하철 택배원 평균 배달 건수”라며 “한 달 꼬박 일해 6~70만원 정도 번다”고 했다.

이날 허씨는 2호선 을지로4가역에서 강변역, 강변역에서 7호선 하계역, 하계역에서 2호선 을지로4가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지하철 요금은 들지 않았다. 기자의 교통카드에는 1350원이 3차례, 총 4050원이 찍혔다. 근조기를 배달하고 받은 1만5000원에서 수수료를 제하고 남은 돈은 1만500원. 고령층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사라진다면, 허씨가 번 돈은 6450원으로 줄어든다.

지하철택배원 백남기씨(85)가 서울 송파구 잠실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이동하려고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이날 취재기자가 세번째로 만난 이는 지하철 택배원 ‘최고참’인 베테랑 백남기씨(85)였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13년4개월을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지금도 주 7일을 일한다. 그는 “여태껏 일하면서 쉬는 날은 20일 정도”라며 “체력이 되는 데까지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백씨가 받은 일은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 근조기를 설치하는 것으로, 운임은 1만3000원이었다. 근조기가 미리 회사에 와 있었던 덕분에 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아도 됐다. 백씨는 “예전에는 근조기 4개씩 한꺼번에 거뜬히 들었는데, 요즘은 팔에 힘이 빠져서 못한다”며 웃었다. 근조기 하나의 무게는 5kg 정도다.

백씨가 근조기를 들고 중앙보훈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근조기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어 회사에 보내는 것으로 백씨의 하루 일과가 끝났다. 백씨는 사무실에 돌아가는 대신 5호선 화곡역으로 향했다. 백씨가 번 돈은 1만3000원에서 수수료 30%를 제한 9100원. 지하철 무임승차가 있었기에 3200원을 아낄 수 있었다.

이날 본지 기자가 만난 세 명의 노인은 각각 1만1200원, 1만500원, 9100원을 벌었다. 한 명의 노인 택배원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세 건의 택배 운임 단가를 합치만 4만4000원. 이 중 수수료 30%를 제하면 3만800원이 남았다. 기자가 동행하며 지출한 지하철 요금 총액은 1만1900원. 하루 벌이의 약 40%에 달하는 이만큼이 고령층 무임승차 제도로 떠받치는 임금이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