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1998년 25년간 25도 유지하던 소주
자꾸 묽어지더니 마지노선이라는 17도까지 떨어져
'캬~' 소리가 사라졌다
자꾸 묽어지더니 마지노선이라는 17도까지 떨어져
'캬~' 소리가 사라졌다
소주가 또 묽어졌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는 지난달 가장 대중적인 소주 제품의 알코올 농도를 나란히 낮췄다. '참이슬 후레쉬'는 17.8도에서 17.2도로, '처음처럼'은 17.5도에서 17도로 떨어졌다. 4년 만의 추가 하락이다.
0.5~0.6도가 뭐 대수냐 싶지만 애주가들은 뿔이 났다. 소주 도수(度數)가 너무 낮아져 마셔도 '캬~'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야생성을 이렇게 잃어도 되느냐"는 탄식도 들린다.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 주인에게 '손님들이 소주 도수 내려간 걸 아느냐' 물으니 "인지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그냥 드시는 것 같다"고 했다. 20.1도인 '빨간 소주(참이슬 클래식)'를 마시는 이들은 50~60대 이상이고 늘 그것만 시키는 편이다. 열 명 중 예닐곱 명은 상품을 특정하지 않고 "아무 소주나 달라"고 한단다.
비취색 병에는 '희석식 소주'라고 적혀 있다. "녹말이나 당분이 포함된 재료를 발효시켜 만든 강력한 에틸알코올(대개 95%)에 물을 들이부은 뒤 다시 감미료를 넣어 만든 술"(이지형 '소주 이야기')이다. 쉽게 말해 알코올을 다량의 물에 탔다는 뜻이다. 참이슬 후레쉬와 처음처럼이 출시된 2006년 이후 소주 도수는 3~4년마다 줄기차게 내리막을 타고 있다. '순하고 부드럽게' 바람을 타고 지방 소주 회사들은 이미 16.8도나 16.9도 소주도 판매하고 있다. 위스키는 35도짜리도 출시됐다.
롯데주류 양문영 부장은 "회식 문화가 가벼운 쪽으로 바뀌고 혼술도 늘어나면서 저도주(低度酒)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시장 반응을 읽으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최용운 차장은 "소비자들이 예전만큼 독주를 마시진 않고, 젊은 층 술자리에서 주류 선택권은 여성이 쥐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이번 도수 조정은 선호도 조사를 한 결과인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음주 문화가 민주화되는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소비자는 종종 광고와 마케팅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기업의 수요를 자신의 수요로 착각하며 사는 시대 아닌가.
일제강점기에 35도였던 소주는 1973~ 1998년 25년간 25도를 유지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까. 양 부장은 "과일맛 소주와 청하가 13~14도 수준"이라며 "장담할 순 없지만 현재로선 17도를 마지노선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차장도 "16.9도로 부산·경남에서 대박 난 '좋은데이'와 경쟁하기 위해 2년여 전에 '참이슬 16.9'를 출시했지만 서울·수도권에서는 시장 확보에 실패했다"며 "소주는 목 넘김과 끝 맛이 중요한데 도수가 더 내려갈 수 없는 저항선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재료에 해당하는 알코올을 주정(酒精)이라 부른다. 도수가 내려가면 주정이 덜 드는데 왜 소주 가격은 안 내려갈까. 업계 관계자들은 "소매가에는 인건비, 물류비, 유통비 등이 포함돼 있고 원가에서 주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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