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법정에서 결국 '이 말'이 나왔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의 구속영장심사가 그제(19일) 열렸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혐의는 분식회계와 횡령, 증거인멸 등이었습니다.
심사는 치열했습니다. 9시간을 넘겼습니다.
"분식회계도 횡령도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한 줄 알았다"는 게 김태한 대표의 입장, "분식회계도 증거인멸도 횡령도 김 대표의 지시를 받았다"는 게 김동중 삼바 전무의 입장이었습니다. 서로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런 날선 내부 다툼과 법적 공방 끝에 삼성 측은 호소에 나섰다고 합니다. 어쩌면 '일격'에 가까운 호소,
"일본 문제도 있고, 나라 경제가 이런데…."
영장심사 결과는 김 대표도 김 전무도 모두 기각.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경제가 거기서 왜 나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거치며 이재용 부회장은 우리 경제를 떠받드는 떳떳한 삼성의 총수라기보단, 좀 더 조롱 섞인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웃음을 못 참는 청문회 증인, 법정에서도 3000원 짜리 립밤을 손에서 놓지 않는 황태자, 그리고 적법하지 않은 승계자…. 그런데 드디어 반전의 기회가 왔습니다. 여태 '이재용 본인의 위기'였다면 이번엔 '삼성의 위기'가 온 겁니다.
일본 경제 보복으로 수출 규제 사태가 덮치자, 이 부회장은 일본으로 날아갔습니다. 온 언론이 공항에서 귀국하는 이 부회장을 기다렸습니다. 이 부회장은 옅게 웃었습니다.
삼성의 해결사가 아닌, 나라의 해결사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한일관계나 우리 경제를 위해서는 'JY(이재용)는 놔줘야 한다'는 말이 어렵지 않게 들립니다. 2016년에는 경제계 일부에서만 소극적으로 나오던 주장입니다.
김태한 삼바 대표 영장심사에서 문득 '나라 경제'가 나온 이유도, 이 맥락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 대표가 구속되면 '얄짤없이' 이재용 부회장이 '윗선 책임자'로 검찰에 소환될 겁니다. 김 대표 구속을 막으면, 이 부회장 소환도 그만큼 미뤄집니다. '경제론'에는 JY로 가는 길목을 막으려는 내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가 이렇습니다, 왜냐면…
경제 때문에 총수를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게도 적용됐습니다.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유죄를 확정받은 이 회장을 사면하라고 경제단체들은 정부에 탄원했습니다. 체육계도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라는 점을 들어 사면 복권을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2009년 12월, 이건희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특별 단독 사면'을 받아 삼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건희 회장을 사면해준 덕에 나라 살림이 좋아졌는지, 객관적 지표와 관계성은 전문가들이 알아낼 몫이겠지요.
다만 사면 5년 뒤 승계 대상인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 비선 실세의 딸 정유라에게 말(馬)을 사준 것은 온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 특별사면을 해주고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라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도 국민은 당분간 잊지 않을 겁니다.
법보다 나라 위신을 앞세운 딱 10년 뒤 현실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 분식회계를 했는지,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위한 불법이었는지, 그렇다면 어디까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 판단은 검찰 수사가 끝나고도 대법원 판결까지 2, 3년은 걸릴 전망입니다.
그러니 섣불리 'JY를 무조건 소환하라, 처벌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경제가 이런데….' 라는 변론이 지금도 법정에서 나온다면, 10년 뒤 우리는 10년 전과 무엇이 다를 수 있을지요.
그때는 건전하고 적법한 기업이 나라를 떳떳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삼성이 그런 기업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법적인 시시비비가 지금 불편해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누리 기자 (h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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