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가담 의혹’은 검찰이 4년 넘게 쥐고 있는 사건이다. 김 여사 모녀에게까지 법적 책임의 갈고리를 던지기엔 풀어야 할 실타래가 적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주가조작 실행·가담 혐의자들은 2021년 10~12월 일찍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중 9명에 대한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1심 판결문에는 피고인 명단에 없었던 김건희 여사가 37차례, 모친 최은순씨가 27차례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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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심 인정한 ‘1·2단계 전주’
1심 판결은 ‘작전’이 벌어진 2009년 12월~2012년 12월을 1~5단계로 나누고 “1단계에 이어 2단계에도 연속적으로 위탁된 계좌는 최은순·김건희 명의 계좌 정도”라고 적시했다. 1단계와 2단계는 주가조작 ‘선수’가 이모씨에서 김모씨로 바뀌면서 동원된 계좌들과 주가변동 패턴이 “판이하게 상이”해지는 구간이다.
김 여사 모녀는 작전 시행 1년 전인 2008년 12월부터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보유한 ‘기존 투자자’였다. 당시는 도이치모터스의 코스닥 우회상장 절차가 마무리돼가던 때다. 권 전 회장과 김 여사는 서로 오래 전부터 알던 지인 사이임을 각각 밝힌 적 있다. 앞서 뉴스타파는 최씨가 자신의 지인과 통화에서 ‘도이치모터스는 딸이 아닌 내가 다 한 것’이란 취지로 말하는 녹취를 공개하기도 했다.
재판 당시 증거·증언들과 판결문에는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을 통해 1·2차 선수를 각각 소개받은 정황이 나온다. 김 여사가 2010년 1월 서울 강남의 도이치모터스 매장에서 1차 선수 이씨를 만나 이후 약 보름 간 10억원이 든 신한투자증권 계좌를 맡긴 일(1심 판결문)이나, 선수가 김씨로 교체된 뒤 김 여사가 권 전 회장과 함께 김씨가 지점장으로 있는 토러스투자증권 강남점을 찾아 계좌를 개설한 건(2022년 4월 1일 공판) 등이다.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보유했던 김 여사 명의 계좌는 6개다. 신한투자증권·DS투자증권(전 토러스투자증권)·DB금융투자증권·한화투자증권·대신증권·미래에셋증권(전 대우증권) 계좌다. 1심에서 일부는 시세조종에 활용된 점이 인정됐고, 한화투자증권 등 일부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중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2차 작전 시기 주가조작에 쓰인 계좌는 대신·DS·미래에셋 3개다. 1차 작전 시기(1단계 및 2단계 초입)는 공소시효가 끝났다. 실제 1차 선수 이씨 등은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유·무죄 판단 없이 재판을 종결하는 ‘면소’ 처분을 받았다.
최씨의 계좌는 미래에셋증권·신한투자증권 2개가 연루됐다. 미래에셋 계좌는 “권 전 회장이 직접 운용한 차명계좌”였다. 다만 “시세조종성 주문은 거의 없다(4회)”는 판단을 받았다. 신한 계좌는 “최씨가 권 전 회장으로부터 도이치모터스 관련 정보를 듣긴 하나 매매 여부는 본인이 결정”했다. 재판부는 “시세조종에 쓰인 계좌가 아니다”고 봤다.
③ 2차 세력이 관리했던 ‘김건희.xls’
김 여사의 흔적은 2차 작전에서도 남아있다. 선수 김씨와 함께 2차 작전을 핵심적으로 주도한 미등록 투자자문사 블랙펄인베스트(블랙펄) 직원 PC에서는 ‘김건희’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이 나왔다. 김 여사 명의 DS·미래에셋 계좌의 주식 잔고 및 인출 내역 등이 정리된 파일이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두 계좌를 “블랙펄 대표(이모씨)나 이사(민모씨)가 직접 운용해 시세조종에 이용한 계좌”로 인정했다. 다만 이 파일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 이사 민씨는 2022년 공판 당시 “처음 보는 파일”이라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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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세력 지시받았나…‘7초 매도’ 진실은
판결문에는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가 주가조작에 활용된 구체적인 정황도 들어있다. 2010년 10월 28일과 11월 1일의 통정매매(주식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격·시간 등을 서로 짜고 매매)가 대표적이다.
10월 28일 오후 1시 2분. 민씨가 선수 김씨에게 “잠만 계세요. 지금 처리하시고 전화 주실 듯” 문자를 보낸다. 3분 뒤 김 여사 계좌에서 주당 3100원에 10만주가 매도된다. 이를 곧장 세력이 사들여 매매가 체결된다.
11월 1일 오전 11시 22분. 이번엔 선수 김씨가 민씨에게 “3300에 8만개 때려달라 해주셈” 문자를 보낸다. 민씨가 “준비시킬게요” 답한다. 22분 뒤인 11시 44분 32초, 김씨의 “매도하라 하셈” 문자에 7초 뒤 김 여사 계좌에서 8만주가 3300원에 나온다.
이 거래들에 대해 검찰은 공판 당시 “김 여사가 영업점 단말로 직접 직원에게 전화해 주문한 것”이라는 의심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직접 주문을 낸 것이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다”고 봤다. 판결 이후 대신증권 직원들과 김 여사가 각 거래 직후 매매 확인 차 통화한 기록들이 알려졌다.
재판부는 2차 작전 때의 통정·가장매매 102건을 유죄로 인정했다. 48건은 김 여사 계좌였다. 무죄 38건에는 김 여사 2건, 최씨 8건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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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측 “文정부가 2년 털었지만 기소 못해”
그렇다면 검찰은 김 여사에 ‘주가조작 공범’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공소시효가 남은 2차 작전에서 김 여사가 대가 지급 등을 전제로 작전 세력과 의사 연락을 주고받았거나, 독자적인 투자 판단 없이 세력의 지시에 순응한 사실 등을 입증해야 한다.
김 여사 수사는 2020년 4월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대표의 고발로 시작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학 후배이자 현 민주당 의원인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2020~2021년 수사를 지휘했지만, 검찰 기소 명단에 김 여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주가조작 사건에서 전주를 처벌하기란 극히 까다롭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 역시 “당시 시장거래 관행 등을 고려했을 때 주가조작 가담 정황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2020년 10월 ‘가족 관련 수사’ 등을 이유로 이 사건에 대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중단시켰다. 이는 김오수·이원석 총장을 거쳐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이관섭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월 윤 대통령의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었지만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성윤 등 민주당 의원 18인은 22대 국회 개원 직후인 지난달 31일 김건희 특검법을 재발의한 상태다.
지난 10일부터 윤 대통령과 중앙아시아 3국 순방을 떠난 김 여사는 이날 귀국한다. 검찰은 내달 2일로 예정된 도이치모터스 마지막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8월쯤 선고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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