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최근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주의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 몇몇 나라에서 극우주의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했다. 마치 1930년대 파시즘의 시대가 부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현상의 중심에 청년이 있다. 지난해 11월 유럽 각지에서 극우주의자들이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몰려들어 집회를 연 일이 있었다. 최근의 극우주의 집회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는데, 그 행사를 주도한 것은 바로 폴란드의 청년 극우주의자들이었다.
반면 2016~2017년 한국의 거대한 ‘촛불의 물결’은 청년의 두드러진 활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때 촛불을 든 청년들은 극우적 권위주의 체제의 부활을 도모했던 박근혜 정권에 항거한 것만이 아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더 철저하지 못해’ 권위주의의 공모자가 되어버린 것, 나아가 민주주의를 구축한 세대임을 자임했던 이른바 ‘586’, 곧 ‘촛불 청년’ 자신들의 부모세대가 사적 영역에선 권위주의적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에 대한 통렬한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마치 나치 청산을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까지 철저하게 구현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던 독일의 ‘68운동’과 같은 현상이 2016~2017년 한국의 ‘촛불 청년’들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이런 촛불의 열정을 받들고자 문재인 정권은 역대 어느 개혁정부보다 강도 높게 권위주의 청산의 정치적 드라이브를 계속하고 있다. 때로는 힘에 부쳐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의지가 의심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촛불 정신’은 아직 이 정권의 정치에서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 한국의 청년은 유럽의 청년과는 매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격차화가 심각하고 그로 인해 절망의 늪에 빠져 허덕이기는 유럽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장기 미취업 상태의 세대임을 자괴적으로 표현한 ‘장미족’, 31세까지 취업을 못하면 영영 취업길이 단절된 세대라는 뜻의 ‘31절’, 그리고 끝없이 포기하면서 존재한다는 ‘N포세대’ 등의 신조어들은 한국 청년의 절망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사한다. 깊은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살아 있지만 시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부모세대가 요구하는, 성공주의에 대한 욕구는 내면화되어 마치 본능처럼 타자를 먹잇감으로 삼으려 든다. 청년들은 그런 자신을 스스로 ‘좀비’라고 일컫는다.
1980년대 청년들은 악마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존재로 스스로를 기억했다. 1990년대 청년들은 이미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취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취해버릴 수만은 없어 동요했다. 한데 2000년대의 청년들은 악마와의 전쟁에서 죽어버린 자, 단지 욕구로만 살아남아 움직이는 좀비가 되어버렸다.
진취성의 상징이던 청년은 2000년대 이후엔 더 이상 그렇게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6~2017년의 촛불 현상은, 그리고 그를 이끈 한국 청년들 다수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탈권위주의를 추동하는 주역이었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개신교 극우주의 청년들을 ‘미디어 전사’로 길러낸 에스더운동본부라는 선교단체가 가짜뉴스의 중심에 있다. 물론 이 단체가 양성하는 미디어 전사는 청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잖은 노년들도 전사 교육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 활동력은 청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이 단체 외에도 많은 극우성향의 개신교 관련 단체들이 있지만 가장 활동적인 멤버는 청년들이다.
그들은 극우주의 운동의 조직가들이다. 현재 한국의 극우주의자들은 노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극우주의적 운동을 조직하는 이들은 주로 청년들이라는 뜻이다. 바로 그런 청년 극우주의 조직가들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벌이는 장이 미디어 공간이며, 특히 가짜뉴스의 유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양성하는 데 있어 개신교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교회는 이런 극우주의적 조직가 양성기관에 가장 적극적으로 인적·물적 지원을 하고 있다. 또 대다수 교회들이 공유하는 근본주의 신앙은 극우주의와 결합하기에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담론 양식이다.
그런데 근본주의적 교회, 극우적 개신교계 단체, 그리고 활동적 극우주의 청년들이 결합되어, 특히 미디어공간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이고 있음에도, 한국의 대다수 청년들은 그들의 메시지에 잘 동화되지 않는다. 여전히 절대다수는 권위주의가 구축한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체제에 대한 청산에 더 열렬히 반응한다. 성적 소수자나 인종적 소수자를 적대하는 온라인 텍스트들이 미디어 공간을 활개치고 다녀도,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소수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우리의 미래여야 한다고 믿는다. 나아가 그들은 ‘영적 전쟁’을 들먹이며 차별을 조장하는 종교를 매우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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