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자주 타세요? 전 다른 사람들한테 9호선 타지 말라고 말해요.”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의 10년차 기관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침에 보시면 기관사 얼굴 보는 게 힘들어요. 고개 숙이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졸고 운전하고 있는 거예요.”
밀폐된 기관실, 깜깜하고 좁은 공간 속에서 점점 산소는 줄어들고, 5시간 넘는 장시간 운행으로 눈이 점차 감겨온다. 기관사는 홀로 어두운 터널 속에 선로에 이상이 없는지 늘 앞을 바라봐야 한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이 와서, 서 있는 채로 고꾸라지는 순간도 있어요. 이걸 차마 저의 입으로 말하기가 치욕스러운 거거든요. 기관사로서 해야 할 사명이 있고, 의무가 있는 데 그걸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기관사는 “인원충원이 돼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 죽어요. 운전하는 사람도 죽고, 차를 타는 승객도 죽습니다”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인력부족, 밤낮 뒤바뀐 운행으로 시차 적응의 고통 겪어”
“새벽 3시 30분에 급하게 나오느라 머리도 못감아서... 사진에 잘 나와야 하는데, 피곤해 보이나요?” 28일 오후 1시 9호선 일반 열차의 종착역인 개화역에서 퇴근하는 윤민순(39) 기관사를 만났다.
그는 이날 새벽 4시 20분에 출근해서, 개화역에서 종합운동장으로 29개 역을 지나는 일반 열차를 2회, 3시간 30분간 기관실 안에서 핸들을 잡았다. 또 김포공항에서 종합운동장까지 11개역을 거치는 급행열차를 2회 운행했다. 이날만 총 5시간 넘게 운행했다. 야간 당직 날에는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일한다.
기관사들은 업무 시간이 끝나고 다음날 새벽 근무가 있는 날이면 지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는 4시간 정도 자지만, 단 한번도 숙면은 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다녀온 것처럼, 낮과 밤이 뒤바뀐 업무를 한다. 그러나 9호선 기관사들은 ‘시차적응’을 할 새도 없이, 승객들이 자고 있는 새벽부터 일터에 몸을 이끌고 나온다.
“제 입사 동기들이 처음에는 45명 정도 됐는데, 지금은 20명도 남지 않았어요.” ‘기관사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9호선의 살인적인 업무강도에 지친 기관사들은 회사를 떠나갔다. 노조가 설립되기 직전인 지난해에는 승무원 다섯명 중 한명 꼴로 일을 그만뒀다. 40대 이상의 기관사들은 9호선의 업무강도를 버텨낼 수 없다고 한다. 9호선의 기관사들의 평균 나이는 30대다.
“9호선이 움직이고 있는 건 기관사들의 젊은 피를 수혈받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재차 말했다. 젊은 기관사들조차 강도높은 업무를 버텨내지 못하고, 9호선과 함께 병들어가고 있다. “여성기관사는 약 9명인데, 그 중 한 명이 얼마 전에 운행을 다하고 참고 참다가 개화역에서 쓰러졌어요. 기관사들은 ‘죽든 살든 열차 다 타고 죽어라’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아프다고 대신 좀 타달라는 말을 못하거든요.”
“시한폭탄 돌아다니고 있어, 이대로는 안 된다”
9호선은 지난해 2월 출근시간대 혼잡도 1~5위를 싹쓸이 했다. 2005년 당시만 해도 하루 평균 24만명 정도가 9호선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승객수는 2015년에만 50만명을, 올해는 60만명을 넘고 있다.
늘어난 승객은, 기관사의 업무의 증가로 이어진다. 문제의 원인은 인력부족이다. 기관사 145명, 타 기관에 비하면 6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3개의 팀을 꾸려 2교대로 운영하고 있다. 부족한 인력탓에 1~8호선의 기관사들보다 평균 3~4일을 더 운전한다. 그 결과 9호선의 기관사들은 ‘졸음운전’으로 아찔한 순간에 맞닥트린다.
그는 열차를 타는 승객도,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도 모두 위험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타면 무게가 높아지고,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서 열차를 세우는 거리도 길어집니다. 시스템적으로 적정수준이라고 예상해서 멈추지만, 이미 사람은 한계를 넘어섰고, 급 정차를 했을 때 행여나 잘 서더라도, 그 안에서의 충격은 엄청날 거예요.”
“지금 자동화된 시스템이 받쳐주고 있는데, 개통한 지 10년이 됐잖아요. 기계도 10년이 되면 슬슬 고장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인력부족으로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술공들도 쉬는 날인데 불려 나와요. 그것도 밤에. 그 전날 밤에 새벽을 샌 사람들을 또 불러내요. 그렇게서 인원을 메꾸고 있는데. 유지, 보수도 형식적으로 되는 거죠.”
윤씨는 열차 안뿐만 아니라, 역 안에도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노들역, 국회의사당 그렇게 넓은 데 역 직원 1명이 있어요. 1명이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느냐 이거죠. '불 나면 이렇게 하세요'같은 안전 영상은 잘 만들어요. (웃음) 거기에 봐도 직원 4명이 보이거든요. 실상은 1명 있습니다. 누가 대피를 유도할 것이고... 기관사는 졸고 있지, 역에는 꼴랑 한 명있지. 시한폭탄이 계속 돌아다니는 거예요.”
“지옥철에 면목이 없다”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승강장에 서 있는 가족들 때문”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승강장에 서 있는 가족들 때문”
닭장같은 ‘지옥철’로 악명 높은 지하철 9호선에 대해 그는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9호선 지옥철 아니냐고 말하는 것에 기관사들도 공감하고 죄스러움까지 느끼는 정도에요. 몸을 한껏 움츠리고 타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 안쓰럽고. 수천명을 태우고 다니는 열차가 혹시나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지연으로 다른 승객들이 지각하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해요.”
8년간 쌓여왔던 문제들이 봇물 터지듯이 나왔고, 올해 1월 25일 서울9호선운영(주) 노조가 창립됐다. 노조는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오는 30일부터 부분파업에 돌입한다. 2009년 7월에 개통된 이후 약 8년 만의 일이다.
그는 파업을 앞두고 시민들을 향해 호소했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는 말을 안했으면 좋겠어요. 저희에 대한 마음을 닫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 다 겁쟁이들이에요. 3년 전에, 이러다 다 죽는다고. 노조 만들어서 바꿔야 된다고 말했을 때 무서워서 벌벌 떨던 사람들이에요. 저희가 얼마큼 힘들었기에 8~9년간 꾹꾹 참다가 발 벗고 싸우겠다고 이렇게 나타났을까요? 이제 신체에 한계가 오는 거예요. 이러면 다 죽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싸우는 거예요”
“저희가 하는 싸움이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싸움이고, 그분들이 내는 세금이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한 싸움이에요. 저희 근무 환경을 개선해 안전한 9호선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니까 시민들이 저희 외롭지 않게 힘 좀 많이 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수학강사로 일했던 그는 9호선 기관사가 됐다. 마지막 질문으로 ‘왜 기관사라는 직업을 택했냐’는 물음에 그는 울먹이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처음에 제 목적은 경제생활을 하더라도 내 가족이랑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자 였어요. 그런데 기관사 생활을 하다보니까 내 가족들이 승강장에 계속 서 있는 거죠. 그 느낌 아시나요? 저 승객이 내 딸 같고, 내 아내 같고. 막 뛰어오시는 분들의 얼굴에 다급함이 보이고, 제가 다시 문을 열어서 그분을 태우면 그 분이 고맙다고 벽에 두들기거든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그 소소함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 가족같은 분들을 좀 더 안전하게 태우고 싶어요.” 빨갛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눈물이 자꾸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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