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앞으로 다가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어느 청년의 눈으로 살펴본 봉하마을
[오마이뉴스 김경준 기자]
지난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이 위치한 김해 봉하마을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아 그의 마지막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위해서였다. 동이 틀 무렵,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무려 5시간을 달린 끝에 해가 중천에 이른 때 도착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를 앞두고 봉하마을은 추모객들의 발길로 분주한 상황이었다.
처음 방문한 '대통령의 집', 허탈함이 밀려왔다
봉하마을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대통령의 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 머물렀던 집이다.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집"이라는 유지에 따라 지난 5월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됐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대통령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허탈함이었다.
과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일컬어 '아방궁'이라는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은 바 있었다. 그래서 내심 '얼마나 대단한가 한번 보자'는 심산으로 집을 꼼꼼히 둘러봤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본 대통령의 집은 아방궁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방궁은커녕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집 한 채만 자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이 집엔 '철학'이 있다는 것이 여느 집과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이 집은 흙, 나무 등 자연 재료를 이용해 설계됐다. 또 주변 산세와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붕 낮은 집'으로도 불린다.
"마을 공동체의 모델이 될 베이스캠프. 이것이 대통령이 첫 번째 만남에서 내게 주문한 내용이었다. 내가 설계한 불편한 흙집은 마을의 삶을 함께 보듬고 함께 고민하고 일하자는 대통령의 생각이 스며있는 것이다." - 대통령의 집을 설계한 고 정기용 건축가
해설사는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계속 밖으로 나오게끔 설계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유인즉슨, 퇴임한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안에만 꽁꽁 틀어박혀 있지 말고 억지로라도 계속 밖에 나와서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걸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라는 건축가의 의도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900여 권의 책이 꽂혀있던 대통령의 서재
노 전 대통령이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채와 대통령 내외가 휴식을 취하던 안채를 지나 내 눈길이 멈춘 곳은 '서재'였다.
서재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참모들과 함께 마을 생태계 복원과 민주주의 연구에 몰두했다. 서가에는 수많은 책이 꽂혀 있었는데 총 919권이라고 한다. 책상 위에는 그가 서거 직전까지 읽던 책들도 올려져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하루에 책을 5~6권씩 번갈아 가며 읽는 독서법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만큼 지적 욕구가 왕성했다는 뜻이리라. 퇴임 후 그가 남긴 육필 원고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가 가진 지식의 원천이 모두 이 책들에서 비롯된 셈이다.
생전의 그는 말과 글의 힘을 매우 강조했다. 말을 못하는 지도자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통치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말과 글이 필요 없었다. 오로지 무력과 위엄만 갖추면 됐다. 그러나 민주정부의 지도자라면 말과 글로 국민들과 소통하고 설득해야만 한다. 그의 유창한 말하기와 글쓰기는 결국 다독에서 비롯된 것일까.
책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만났을 때 국민이 행복할 가능성은 더 클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면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불행해진다.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바 있다. 앞으로도 책 읽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서재를 나섰다.
봉화산에서 그를 추억하며
대통령의 집을 나서면 바로 대통령의 묘역이 등장한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던 유서 내용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역대 전직 대통령들 묘역 중에서도 매우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 새겨진 작은 너럭바위 하나만이 이곳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잠든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아래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연신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참배객들이 눈에 띄었다.
내게도 9년 전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2009년 5월 23일, 당시 고3이었던 나는 토요일이었음에도 모의고사를 보기 위해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뇌졸중', '노무현 전 대통령 음독' 등 확실치 않은 오보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가 하굣길에 노 전 대통령의 투신과 서거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영결식이 있던 29일은 학교 전체가 울음 바다였다. 어느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영결식 생중계를 틀면서 학생들과 함께 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이게 나라냐"면서 교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묘역 참배 후 조용히 봉화산을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봉화산에 오르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굽어봤던 장소, 세상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부엉이바위는 펜스와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몇몇 관람객들은 아쉬운 마음을 이기지 못했던지 펜스를 넘어 부엉이바위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비록 펜스로 막혀 있었지만 부엉이바위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가파른 낭떠러지 끝에 서서 바라본 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애달픈 마음이 들어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내일이면 벌써 그의 서거 9주기를 맞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하는 헛된 상상을 해보곤 한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무너진 민주주의를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촛불)으로 바로 세우는 모습을 보고 못내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그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실천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 좋다"고 외치지는 않았을까. 부질 없는 상상과 함께 봉하마을 순례를 마치고 귀경길에 올랐다.
덧붙이는 글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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