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군의 정치 개입 공작으로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구속된 다음날 출국하기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공공장소에 나타나면 당연히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은 “김 전 장관에게 군의 정치 개입을 지시했냐? 댓글 공작을 지시했냐?”일 겁니다. 이런 상식적 질문을 한 기자들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상식에 벗어난 질문” 이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같이 출국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한 걸음 더 나간 발언을 했습니다.
“국정원 심리전단장 이태하 씨의 공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문제가 된 댓글은 전체의 0.9%라는 것이 검찰이 제기한 자료에 나오는 일이고 그 중에 절반만 법원이 받아들여서 0.45%의 진실입니다.” <이동관 전 홍보수석, 11월 12일 공항 발언>
‘0.45%의 진실’, 이 전 수석이 만들고 싶어한 프레임일 것입니다. 자신들 지지층이 이걸 퍼날라 주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말한 “정치 보복” 주장을 확산시키려는 뜻이죠. 군이 헌법을 유린했던 정치 개입 공작의 ‘최종 지시자’를 묻는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프레임을 의도한 대로 돌리고 싶다면 적어도 사실관계는 맞는 주장을 했어야 합니다.
이 전 수석의 발언은 몇 가지 기본 사실관계조차 틀립니다. 우선 ‘국정원 심리전단장’ 이태하 씨라고 했는데, 이태하 씨는 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장입니다. 집권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과 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을 한 몸처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실수’인지 의도된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문제가 된 댓글은 0.9%라는 게 검찰 자료에 나온다"는 발언도 사실과 다릅니다. 이건 김관진 국방장관 시절 군에서 경찰쯤 된다고 할 수 있는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확보한 당시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의 전체 댓글 가운데 7,100건, 즉 0.9%가 문제였다고 발표했던 겁니다.
하지만 김관진 장관 시절 국방부 조사본부의 1차 조사는 축소 은폐 조사였던 걸로 현재 확인됐습니다. 당시 조사의 결론은 “개인적 일탈로 군 수뇌부 개입은 없었고, 국정원 예산도 지원 안 됐다"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말 SBS와 KBS 파업뉴스를 통해 양심 선언한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 고위간부 김기현 씨는 국정원이 매달 25만 원을 사이버사 심리전단 요원들에게 댓글 활동 대가로 지급했다고 했습니다. 지난 10월 국방부 재조사 TF 중간수사결과에서도 국정원의 예산 지원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매일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와 청와대에 댓글 공작 결과가 보고된 증거 문서도 드러났고, 김관진 당시 장관이 대선 직전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부대의 이례적인 증원을 지시한 증거 문서도 공개됐습니다. 댓글 부대의 이례적인 증원이 “VIP 지시였다”는 군 내부 문건도 확인됐습니다. 김관진 국방장관 시절 국방부 조사가 축소 은폐였던 다른 증거는 사이버사령부의 증거인멸을 사실상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심리전단장 이태하 씨가 증언한 녹취록을 보면 조사 주체인 국방부가 심리전단장 이태하 씨한테 압수수색하러 간다는 사실을 이틀 전에 알려주면서 알아서 하라고 전한 걸로 돼 있습니다. 실제 이태하 씨는 압수수색 전에 부대원들한테 노트북을 초기화하라고 지시했고 이건 2심 재판에서 증거인멸죄로 인정됐습니다. 이씨 판결문을 보면 이 씨가 댓글 부대원에게 증거 인멸을 지시하면서 "이거 밖으로 나가면 우리 다 죽는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증거인멸이 ‘0.45%’와 관련된 건 증거인멸 탓에 군 댓글 부대가 네이버에 올린 일부 댓글과 합성물만 수사 기관에서 증거로 수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리전단 요원 증언에 따르면 군 댓글 부대가 주로 공작 활동을 했던 무대는 포털 다음입니다. 여기에 올린 글은 다 삭제해 버려서 증거로 수집되지 못했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SBS의 단독 취재로 드러났지만, 군 사이버사령부는 전체 요원에게 민간인 명의 수집을 지시했고, 최소 300개의 민간인 아이디를 도용해 공작을 폈습니다. 이건 어떤 내용을 남겼는지 조사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문제 댓글은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네이버에서 확보한 정치 개입 댓글의 증거 숫자 자체도 이 전 수석 발언과 차이가 큽니다. 이동관 전 홍보수석이 법원에서 인정된 문제 댓글이 0.45%, 즉 3,500건 가량이라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태하 씨 1심 재판에서는 12,323건, 2심에선 9,067건이 불법 댓글 등으로 인정됐습니다.
무엇보다 군 심리전단의 불법 댓글이 몇 퍼센트냐, 이런 비율을 따지는 게 사건의 본질도 아닙니다.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해 프레임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태하 씨 판결문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직후 “우리 편이 선거에 승리했다”면서 상황실에서 군 심리전단 부대원들이 모여 박수를 치도록 했다는 겁니다.
군은 상명하복 조직이고 지시가 없으면 작은 일도 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군의 정치적 중립을 노골적으로 훼손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왜곡한 사이버사의 불법 정치 공작 최종 지시를 누가 했느냐는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당시 국방장관 김관진 씨의 정치 관여 혐의가 인정돼 구속까지 됐습니다.
그러면 김 전 장관의 상관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관여했느냐 했다면 어떻게 얼마나 관여했느냐는 사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고, 언론이 이 질문을 이 전 대통령에게 묻는 건 민주사회에서 너무나 상식적인 행위입니다. 여기에 어떤 답을 하느냐는 이 전 대통령의 자유지만 질문하는 걸 판단해서 가로 막을 권한은 이 전 대통령에게 없습니다.
정명원 기자cooldud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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