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양승태 등 윗선 지시 수사 중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던 김시철(사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015년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검사·변호인에 대한 ‘문답 시나리오’를 준비한 사실이 13일 드러났다. 검찰은 ‘박근혜 청와대’와 교감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수사 중이다.
김 부장판사가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무죄를 선고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 준비를 한 정황은 지난 11일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민일보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공소장을 보면 김 부장판사는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사전에 결론 내린 뒤 이를 위해 검사·변호인을 상대로 한 문답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검찰은 이 시나리오가 심리에 활용됐다고 보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사전에 무죄 판결문 초안을 작성해두고 무죄 선고를 시도했으나 같은 재판부에서 주심을 맡은 최모 판사의 반대로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이 초안은 국정원 심리전단팀과 원 전 원장 사이의 공모 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무죄로 본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장판사는 이후 2017년 2월 정기 인사로 교체됐다. 검찰은 김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의 지시를 받고 무죄 선고를 강행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한다. 다만 김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됐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김 부장판사는 전병헌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재판 청탁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전 전 의원은 2014년 11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자신의 친인척인 임모 보좌관을 재판에서 선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임 전 차장은 2015년 4월 임씨에 대한 파기환송심 분석 문건을 작성해 전달했다. 문건에는 “예상 선고 형량은 8개월이고 가벼운 형을 받기 위해서는 보석이 필요하다”는 소송 전략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김 부장판사는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다. 그는 임 전 차장 측이 세운 전략과 동일하게 2015년 5월 임씨를 보석으로 석방한 뒤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선고 직후 판결 관련 정보를 이메일로 임 전 차장에게 전달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임씨 사건 재판도 행정처와 ‘교감’하에 진행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검찰은 관련 조사를 위해 수차례 소환 통보를 했으나 김 부장판사는 응하지 않고 있다.
한편 검찰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 배당 조작 의혹에 대해 보강 수사 중이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법원 수뇌부는 2015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이 행정처 방침과 달리 통진당 소송에 대해 소 각하 판결을 내리자 결과를 뒤집기 위해 항소심 배당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처 고위 관계자가 2015년 12월 초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에게 “통진당 관련 사건은 행정처 관심 사안”이라며 “통진당 관련 사건이 접수되면 행정6부 김광태 재판장에게 배당되기를 원한다”고 말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심 전 원장은 배당 담당 직원을 통해 미리 사건번호를 알아내게 하는 등의 조치로 사건을 행정6부에 배당토록 했다고 한다. 검찰은 배당 조작에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행정처장이 직접 개입한 단서가 확보되면 이들을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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