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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10, 2013

South Korea's Park Geun-hye finds a middle way

英 텔레그래프, 朴, 公約은 空約, 정책은 불투명
-박근혜 소개 기사에서 朴, 악명 높았던 박정희의 딸
-창조경제 의미 불투명, 대북 신뢰정치 헛된 희망으로 보여
영국의 텔레그래프가 박근혜의 영국방문을 앞두고 박근혜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박근혜가 악명 높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과 박근혜의 대선 당시의 공약 취소, 창조경제의 정체불투명 등을 언급하며 대북 정책으로 내세운 신뢰정치 아이디어도 헛된 희망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11월 4일 기사에서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1961년부터, 휘하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만찬석 상에서 목숨을 잃은 1979년까지 철권으로 한국을 통치'했던 박정희의 딸로서 서울과 젊은 층들의 지지는 받지 못했으나 노년층들의 지지로 박근혜가 당선되었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가기관인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부정선거에 대한 논쟁이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음을 역시 보도했다. 이어서 이 기사는 박근혜가 대통령 선거 당시 재벌을 비판하고 복지지출 공약을 내거는 등 좌편향적 정책을 내세워 효과를 보았지만, 당선된 뒤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모든 사람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탓에 내각 구성에 몇 주가 걸리기도 했으며, 선거공약이었던 기초노령연금을 단번에 철회하는 등의 결점을 집권초기에 이미 드러내 왔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 기사는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진두지휘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지만 창조경제가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지적한 뒤, 박근혜가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햇볕 정책 (1998-2007)의 무조건적 관대함과 이명박 대통령의 뒤이은 강경노선의 중간지점을 의미하는 '신뢰의 정치'를 주장하지만 ‘평양이 국제적인 규칙을 따르도록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려는 박근혜의 아이디어는 헛된 희망으로 보인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bit.ly/1cA91ZP

South Korea's Park Geun-hye finds a middle way
한국의 박근혜 중간 노선을 택하다

Photo: Thibault Camus/AP

By Aidan Foster-Carter
5:19PM GMT 04 Nov 2013

(...) For she also benefits from Confucianism: as the daughter of a famous – or infamous – father. Park Chung-hee ruled South Korea with an iron rod from 1961, when he seized power in a coup, to 1979 when his intelligence chief shot him over dinner. In 1974 his wife was killed by an assassin’s bullet meant for her husband. Aged 22, Park Geun-hye became first lady for five years. 

왜냐하면 그녀는 유명했던, 아니 악명이 높았던 그 아버지의 딸로서 유교로부터도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1961년부터, 휘하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만찬석 상에서 목숨을 잃은 1979년까지 철권으로 한국을 통치했다. 1974년 영부인은 대통령을 겨냥한 암살자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22살의 나이에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오 년간 수행했다.
(...) Park thought 2007 was her moment, but she narrowly lost the nomination to a businessman turned mayor of Seoul, Lee Myung-bak. They never reconciled. As Lee’s bossy manner and corrupt cronies alienated voters, Park kept her distance; until her party, afraid of losing power last year – South Korean presidents serve only a single five year term – again came begging.
박근혜는 2007년이 자신을 위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으나, 당시 사업가였다가 서울시장이 되었던 이명박에게 근소한 차이에 밀려 대선주자 경선에서 패배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 이명박의 보스 기질과 부정한 주변인사들로 인해 유권자들의 반감을 사자 그녀는 그와 거리를 두었으나 지난 해 정권을 잃는 것이 두려워 -한국의 대통령직은 오 년 단임제이다 -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돌아왔다.
This time it was her hour. Rebranding the party as Saenuri (New Frontier), she pushed policy leftwards – no Thatcher she – with critiques of big business and pledges of welfare spending. This worked. In April 2012 Saenuri won parliamentary elections it was expected to lose. And on December 19 Park was elected president, by a narrow but decisive million votes. She lost in Seoul and among younger voters, but in a fast-ageing society grey power carried the day.
이제는 그녀의 때였다. 그녀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재벌을 비판하고 복지지출 공약을 내거는 등 정책을 좌편향으로 몰고 갔다. 이런 노력은 효과가 있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패배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뒀다. 또 그해 12월 1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는 근소하나 확실한 백만표의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녀는 서울과 젊은 층의 표를 얻는데는 실패했지만 빠르게 늘어나는 노년층 지지자에 힘입어 승리했다.
Seven months is early days. In office Park has shown some faults. Reluctant to delegate, she took weeks to assemble a complete Cabinet. In September she withdrew a pledge to give all senior citizens a monthly pension, admitting it was unaffordable – as critics had said all along.
취임 후 칠개월이니 집권초기이긴 하다. 박근혜는 취임 후 결점을 드러냈다. 모든 사람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탓에 내각을 구성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또 지난 9월엔 비판자들이 줄곧 주장해온 재원부족을 이유로 자신의 선거공약이었던 기초노령연금을 철회했다.
Meanwhile in an unfolding scandal, an ex-chief of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 is charged with having agents, posing as ordinary folk, smear her left-leaning opponent in last year’s election, Moon Jae-in, as soft on North Korea in online forums.(...)
한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부정선거 스캔들 속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야당 후보인 문재인 후보가 북한에 대해 유화적이라고 비방하는 글을 국정원 요원들이 평범한 시민인 척 온라인에 게시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Exports of $50 billion last month – ahead of the UK, which managed $40 billion in August – do not suggest a troubled economy. Yet GDP growth of three per cent, not bad for OECD, is poor for the region and far less than Koreans are used to. With China cheaper, exports cannot drive growth forever. Aware of this, Park stresses the need for a ‘creative economy’ – one of her London meetings is thus themed – and has carved out a new Ministry of Science, ICT and Future Planning (MSIP) to spearhead it. What this will mean in practice remains to be seen.(...)
지난 달 한국의 수출액은 500억 달러로서 지난 8월에 400억의 수출을 기록한 영국보다도 앞선 가운데 한국 경제가 나쁘지 않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3%에 그친 GDP성장률은 OECD회원국 중에서는 나쁘지 않은 수치이지만 한국이 그간 이룬 것에 비하면 훨씬 못미치는 수치이다. 가격이 싼 중국과 경쟁하여 수출이 언제까지나 성장할 수는 없다. 박근혜는 이 점을 의식해 '창조경제' (영국에서의 오찬 회의 중 하나가 이를 주제로 행해질 예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를 진두지휘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다. 그런데 창조경제가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Park advocates ‘trustpolitik’, meaning a middle way between the unreciprocated generosity of the ‘sunshine’ decade (1998-2007) begun by Kim Dae-jung and the ensuing hard line of Lee Myung-bak. That will not be easy. The Kaesong zone has reopened, but the benighted North is still resisting such basics as mobile phones and email there. Park’s idea of luring foreign investors, to make Pyongyang adhere to international norms, sounds a forlorn hope.(...)
박근혜는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햇볕 정책 (1998-2007)의 무조건적 관대함과 이명박 대통령의 뒤이은 강경노선의 중간지점을 의미하는 '신뢰의 정치'를 주장한다. 이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개성 공단은 다시 재개되었으나, 페쇄사회인 북한은 여전히 휴대폰이나 이메일 같은 기본적인 용품의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평양이 국제적인 규칙을 따르도록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려는 박근혜의 아이디어는 헛된 희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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