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피고인석에 설까 관심
피의자 조사 차한성·박병대 등
전·현직 대법관 9명 
징용 재판 등 두루 개입

부장판사는 이규진·이민걸 1순위
행정처 심의관들도 재판 문턱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기에 앞서 자신이 근무했던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동안 이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조합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기에 앞서 자신이 근무했던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동안 이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조합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면서, 향후 재판 과정에서 법대가 아닌 피고인석이나 증인석에 서게 될 전·현직 법관들의 규모가 주목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던 법관들, 양심보다 조직 논리에 더 충실했던 이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로부터 피해를 본 현직 법관들이 증인석에 설지도 관심사다.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등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은 대법관부터 심의관(판사)까지 최소 100명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선 수사 대상에 오른 대법관의 수가 적지 않다. 상고법원 설치 등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을 위해 최고법원의 최고법관들마저 직접 움직였기 때문이다. 양 전 대법원장 자신을 포함해 ‘양승태 사법부’에서 대법관을 지낸 이들 중 사법농단 수사팀의 부름을 받은 이는 모두 7명이다. 모두 같은 시기에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대법관이 14명인 것에 비춰보면 상당한 비율이다. 양 전 대법원장 퇴임 뒤 대법관이 된 이동원·노정희 대법관까지 포함하면 조사를 받은 대법관은 9명으로 늘어난다.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핵심은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다. 이들은 모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피고인으로 재판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강제징용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외교부의 연락책 또는 법률자문역을 자처하거나, 전범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변호사를 만나 서류를 검토하는 ‘변호인’으로 전락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에 직접 결재하는 ‘사찰 관리관’ 구실을 하기도 했다.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전·현직 대법관들도 있다. 이 중 일부는 피의자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인복 전 대법관은 통합진보당 가압류 소송 때 원고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법원의 의견을 전달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 전 대법관의 혐의가 중하다고 판단해 기소 여부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덕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 징용 재판 상고심에서 전범 기업에 유리한 선고를 하도록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가 있다.
현직인 권순일·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참고인으로 서면 조사에 응했다. 권 대법관은 징용 재판 지연 과정에 청와대와의 연락망 구실을 하고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도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메모를 전달한 정황이 있다. 권 대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노 대법관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소송에서 법원행정처의 지시대로 재판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수뇌부의 지시를 받고 심의관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고위법관들도 재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솜방망이’라고 비판을 받은 대법원 징계위원회 결과에 따라 정직을 요구받은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방창현 대전지법 부장판사가 맨 앞에 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 개입(이규진), 현역 국회의원의 재판 상황을 대신 챙겨주고 재판 개입과 판사 뒷조사 문건 작성 방조(이민걸),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장을 맡아 재판 결론 사전 전달(방창현) 등 사법농단의 ‘우등’ 조력자들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사항을 수첩에 받아적은 이규진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80번 이름을 올려, 법정에서 강도 높은 책임 추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원 직원을 시켜 특정 재판부에 재판을 배당하도록 한 의혹이 있는 심상철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정원 댓글 사건 주심을 맡아 재판을 1년7개월을 끌었던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재판 개입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여전히 김 부장판사가 수뇌부로부터 재판 연기 지시를 받고 끌어왔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지시를 거부하지 않고 ‘마름’ 노릇을 마다하지 않은 법원행정처 심의관들도 재판에 불려 나갈 것으로 보인다. 감봉이 결정된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김민수 창원지법 부장판사,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와 견책을 받은 문성호 서울남부지법 판사도 재판에 넘겨질 확률이 높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사법연구’ 발령을 받고 재판에서 배제됐던 정다주·박상언·김민수 부장판사는 올해부터 재판 업무에 복귀했다.
징계위에 회부됐지만 징계를 피한 김연학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노재호 서울고법 판사, 심준보·홍승면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봉선 전주지법 부장판사도 재판에 불려갈 가능성이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