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의 최대 치적인 ‘아베노믹스’가 통계 조작에 따른 허구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오는 4월 통일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사태 수습에 진력하고 있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논란은 후생노동성이 매달 근로자 임금과 노동시간을 조사해 발표하는 ‘매월 근로통계’가 2004년부터 규정에 따른 전수조사 대신 일부 표본조사로 집계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규정에 따르면 직원 499명 이하 중소기업은 전국 200만개 중 약 3만개를 추출해 조사하지만 직원 500명 이상인 대기업 6000여개는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실제 조사는 지자체가 후생노동성의 위탁을 받아 실시는데, 대기업이 집중된 도쿄도의 경우 2004년부터 후생노동성으로부터 대상 기업 1400여개 중 3분의 1 정도만 게재된 리스트를 받아 조사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난해 후생노동성이 499명 이하의 중소기업 표본을 교체하면서 집계한 통계수치를 발표한 뒤 불거지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기업을 조사대상에 많이 포함시켰는데도 전년 동기 대비 임금 증가율이 1%를 넘은 달이 지난해 3월과 6월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500명 이상 대기업 대상 통계수치는 1월부터 전년 같은 달 대비 2% 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해 6월에는 무려 3.3%를 기록, 1997년 1월 이후 21년5개월 만에 최대 증가세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임금 증가율 수치를 가지고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자랑했고, 아베 총리는 사학스캔들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0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과 증권계에서 통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후생노동성은 499명 이하 중소기업 가운데 표본을 교체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500명 이상 대기업은 전수조사를 한다고 거짓말을 거듭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아사히신문이 정부가 대기업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특종보도 이후 후생노동성은 최근 통계에 부정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데이터를 바꿔 통계를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 3.3.%였던 임금 상승률은 다시 조사해보니 1.4%에 불과했다. 야당은 이마저 높게 책정된 수치라고 지적한다. 반면 후생노동성은 2004년부터 2017년까지는 임금 상승률이 실제보다 낮게 나오도록 했다. 이에 따라 당시 통계로 산정된 고용보험금이나 산재보험금도 덩달아 적게 지급된 것이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올 들어 적게 지급된 2015만건의 보험금 환급을 위해 약 800억엔(약 8200억원)을 올해 예산안에 부랴부랴 끼워넣었다.
네모토 다쿠미 후생노동상은 통계 부정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조직적인 은폐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점점 조직적 은폐를 의심케 하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매월근로통계의 바탕이 되는 자료가 대거 폐기된 데다 후생노동성 관료들이 이 같은 부정을 알고도 입을 다물었던 게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아베 총리의 사학 스캔들 당시 재무성 문서 조작과 마찬가지로 일본 관료들의 ‘손타쿠’(忖度·윗사람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하는 것) 관행이 다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는 수차례 사과와 함께 통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적 기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2007년 1차 집권 당시 국민연금 납부 기록이 정부 데이터에서 사라져 일대 혼란을 빚은 ‘사라진 연금’ 사태가 올해 재현될까 우려하고 있다. 당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그해 7월 참의원선거에서 121석 중 37석만을 얻는 역사적 참패를 당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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