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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5, 2019

관용차에 숨겨진 검찰 개혁의 민낯

'검사장 관용차 지급을 중단해달라'. 지난달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죠. 10만 명 넘는 시민이 동참했습니다. 검사장은 일반 검사입니다. 차관도, 차관급 공무원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관용차+운전기사'라는 차관급 혜택을 누려왔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말이죠.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저 혜택, 이미 폐지된 줄 알았거든요. 지난해 5월, 법무부는 검사장 관용차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장관이 직접 브리핑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1년 5개월이나 지났으니 당연히 없어졌을 텐데 왜 저런 청원이 올라왔지? 알아봤더니 청원 내용이 맞았습니다. 검사장들은 여전히 관용차를 타고 있던 겁니다.
지난해 5월, 검사장 관용차 중단을 발표하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
※ 관련 기사
[와이파일]'검사장의 특권' 관용차는 사라지지 않았다 (9.23 YTN)
기사 링크 클릭
https://www.ytn.co.kr/_ln/0134_201909230800063939
'우리도 얼른 하고 싶은데 다른 부처에서 협의를 빨리 안 해주고 있다', '검찰이 일부러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빨리 관용차 폐지하고 싶다'라고 2주 전 해명했던 검찰이었습니다. 그랬던 검찰이 이제 진짜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즉각 시행'입니다. 그때와 지금, 말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요. 검찰 개혁을 외친 서초동 집회를 빼놓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난달 28일 많은 사람이 모인 집회가 있었고요. 이틀 뒤 검찰이 스스로 개혁안을 제시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이튿날 검찰이 내놓은 개혁안 중 하나가 검사장 관용차 중단입니다. 이렇게 검찰이 마음먹으면 즉시 할 수 있던 건데 1년 5개월 동안 미뤄졌습니다. '잘하고도 욕먹는' 상황을 자초한 거죠.
지난달 28일 검찰 개혁 촉구 집회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이른바 '검찰 자체 개혁안', 하나씩 뜯어보면 고개가 갸웃합니다. 검찰은 손해 본 게 사실상 하나도 없습니다.
① 관용차부터 볼까요. 검사장들은 관용차 없어지면 다른 수당 받게 됩니다. 명예퇴직수당입니다. (현재 기재부 등과 협의 중으로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검사장들은 명퇴수당 못 받았습니다. 대신 관용차와 집무실 등의 혜택을 받고 있었죠. 관용차 중단은 차관급이 아닌데 차관급 예우를 받는 검사장에 대한 '비정상의 정상화' 조치일 뿐입니다. 검찰 입장에서는 그리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닙니다.
② '특수부' 폐지한다고 '특별수사'로 일컬어지는 '인지수사'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인지수사=고소, 고발이 아닌 검찰이 스스로 인지해서 하는 수사) 이름이 바뀌고 역할이 축소될 뿐, 인지 수사는 계속합니다. 과거를 볼까요. 문무일 전 총장 때 전국 40여 개 지검, 지청의 특수부와 특수전담검사가 폐지됐습니다. 창원지검 특수부는 형사3부로, 울산지검 특수부는 형사4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인지 수사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검찰의 인지 수사 사건은 8천여 건입니다.
'특수부' 같은 '형사부'로 운용할 여지도 있습니다. 형사부에 사건을 배당하는 건 차장검사입니다. 법원처럼 무작위 전자 배당이 아닙니다. 어떤 부서가 어떤 사건을 맡을지는 차장검사 판단에 달린 겁니다. 차장검사가 기존의 형사 1부, 2부에는 고소, 고발 사건 많이 주고, 형사부로 이름이 바뀐 옛 특수부에 인지사건 많이 주면 '형사부'지만 '특수부'처럼 굴러갈 수 있습니다. (지금 저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 저럴 수 있다는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③ '파견 검사 복귀'는 애초에 대통령 공약이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검사 개인 입장에서는 파견을 안 나가면 외부 인맥을 넓힐 기회가 차단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검찰 조직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습니다. 파견 인력들이 다시 검찰로 돌아오면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형사부에 단비가 될 겁니다. 현재 외부기관에 파견된 검사는 37개 기관에 57명입니다.
물론 ①, ②, ③번 조치, 모두 필요합니다. 그동안 비판받아온 검찰의 관행들입니다. 그런데도 검찰을 향한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와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한 검찰의 첫 후속조치라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 실행해도, 전 세계 유례 없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은 작아지지 않으니까요. 그동안 다 나왔던 대책들을 '재탕'했다는 비판은 덤입니다. (①은 대검 검찰개혁위의 8차 권고안, 법무검찰개혁위의 9차 권고안과 동일, ②번은 2기 법무검찰개혁위의 1차 권고안과 동일, ③번은 1기 법무검찰개혁위의 11차 권고안과 동일)
검찰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겁니다. 과거에 여러 개혁위원회에서 권고한 것들도 대부분 받아들였고, 근본 개혁안은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인데 국회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대부분의 일선 검사는 묵묵히 자기 할 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일부 검사와 수뇌부 때문에 전체가 비리 집단으로 매도된다고 말이죠.
검사장 직급이 폐지되기 1년 전인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그러나 불신을 자초한 건 검찰입니다. 과거 검찰 개혁안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숱한 부작용과 폐단으로 기껏 없애놓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실상 다시 생겼습니다.
① 검사장이라는 직급은 검사들이 승진에만 매달려 공정 수사를 안 한다는 비판에 2004년 폐지됐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나중에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검사'라는 대통령령을 만들어 검사장이라는 말과 관용차 혜택을 유지했습니다.
② 대검 중수부(중앙수사부)는 정권 입맛에 맞춘 수사라는 오명에 2013년 폐지됐습니다. 하지만 중수부의 역할은 현재의 중앙지검 특수부가 하고 있습니다. 직제가 대검->중앙지검, 지시라인이 검찰총장->중앙지검장으로 바뀌었을 뿐, 기능은 사실상 그대로입니다. (중앙지검 특수부는 대검 중수부와 달리 임기가 정해지지 않은 중앙지검장 지휘를 받아 상대적으로 정치적 영향을 덜 받는다는 반론도 존재)
지난달 20일 고발인 자격으로 경찰에 출석한 임은정 검사
③ 임은정 검사는 2012년 반공법 위반 재심 재판에서 상부 지시를 어기고 무죄를 구형했다가 정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대법원에서 징계 취소가 확정됐죠. 이후 검찰은 이의제기권에 관한 지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비공개입니다. 기자가 요구해도, 국회의원이 요구해도 안 줍니다. 비공개 사유는 정보공개법 9조 1항 4호입니다. 4호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처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
지침이 공개되면 검찰의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까요?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될 '상당한' 이유가 있을까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이나 수사 내용이 아니고요. 검찰 내부 기준을 물어본 것뿐인데 말입니다. 지침 내용을 알아봤더니 공개를 꺼리는 이유가 '추측'됐습니다. 지침에는 결국 최종 결정은 기관장이 하고 이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10년 동안 외부에 누설하면 안 된다는 독소조항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찰 개혁을 끝까지 감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관심에서 멀어지면 어느새 포장지를 바꾼 폐단이 새로운 이름으로 위세를 떨칠 겁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검사 선서문'을 첨부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검사는 어떤 모습인지 적혀 있습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0000년 00월 00일
한동오 hdo8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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