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안된 정보로 여론재판
지난 11년간 347건 접수불구
재판 넘겨진 檢警관계자 '0명'
3년이하 징역처벌 있으나마나
입증 어렵고 공익사안 면죄부
수사기관 '제식구 감싸기'도
과거사위 권고 실효성은 글쎄
지난 11년간 347건 접수불구
재판 넘겨진 檢警관계자 '0명'
3년이하 징역처벌 있으나마나
입증 어렵고 공익사안 면죄부
수사기관 '제식구 감싸기'도
과거사위 권고 실효성은 글쎄
"언론 보도를 통해 국민들과 판사들은 양승태 사법부가 엄청난 범죄자인 것처럼 인식하게 됐습니다.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 조성에 힘입어 기소에 이르게 됐습니다."(3월 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1회 공판 변론)
"삼성바이오로직스 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무차별적으로 보도되면서 아직 진실 규명의 초기 단계임에도 유죄라는 단정이 확산되고 있습니다."(5월 23일 삼성전자가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 주요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재조명을 받고 있다. 주요 피의자나 피고인이 피의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고소·고발을 감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정에서나 언론에 항변하는 정도다. 처벌 조항(형법 제126조)이 "사문화(死文化)돼 버렸다"는 고정관념 탓에 고소·고발의 실익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6일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11년간(2008~2018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접수된 사건은 347건이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진 수사기관 관계자는 전혀 없다.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은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는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지만, 법조인들조차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소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혐의 입증의 어려움'을 꼽는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검사가 고의적으로 피의사실을 흘렸다는 점을 입증하기 쉽지 않고, 공익 목적이었다고 주장하면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언론이 수사기관으로부터 피의사실을 '통째로' 알게 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러기 힘들다는 점도 수사와 기소를 어렵게 한다. 이 변호사는 "언론이 여러 검사와 경찰을 취재하기 때문에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도 확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피의사실 공표죄가 제정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2년 6월 15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죄의 적용 범위와 개선 방안'에 따르면, 관련 법조항은 피의자 인권 보호와 국가의 범죄수사기능 보호를 위해 제정됐다. 공소가 제기되기 전에 피의사실이 공표될 경우 피의자 또는 제3자가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수사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수사기관 관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최근 수사 보안 문제로 실제 처벌받은 사례는 찾기 어렵다. 위법의 인식이 무뎌졌다는 뜻이다. 피의사실 공표 혐의는 수사기관을 상대로 한 수사라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동부지검장을 지낸 석동현 법무법인 대호 변호사는 "자신의 과오를 기소하는 걸 주저하는 조직보호 심리가 반영돼 기소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이 주요 부패수사에서 적극적인 언론의 지지를 통해 수사의 동력을 얻었던 관행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 전직 검사장은 "과거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등에 대한 대형 부패수사에서 수사 방해의 외압을 극복하는 데 언론의 역할이 중요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윗선에서) 수사를 못하게 하니까 기자들에게 피의사실을 하나씩 풀면서 계속 수사를 했던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초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관계자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요청 경위를 특정 언론에 제보했다고 시인하는 바람에 "피의사실과 다름없는 민감한 조사 내용을 언론에 공개적으로 노출시켰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피의사실 공표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많지만 대안은 마땅치 않다. 우선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 접점을 찾고, 이를 입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범정부기구를 구성해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또 "주요 혐의 사실은 공보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공적 인물인 경우 오보 해명 공보 외에는 절대 허용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부터 수사공보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책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등 개선 방안을 연구·검토하고 있다.
■ <용어 설명>
▷ 피의사실 공표 :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직무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 다수에게 알리는 행위를 말한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채종원·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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