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반려동물 늘면서 동물 공포 호소하는 사람도 덩달아 증가
동물 공포증, 당사자에겐 큰 고통"유난 떨지마라" 핀잔 대신 배려를
서울 구로구에서 2년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정모(22)씨는 최근 종아리 보호대를 살까 고민했다. 반려견을 데리고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손님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씨는 평소 동물만 보면 식은땀이 나는 ‘동물 공포증(zoophobia)’을 앓고 있다. 실제로 계산대 아래로 강아지가 들어와 운 적도 있다고 한다. 그 뒤 정씨는 사장에게 ‘손님에게 동물은 안고 들어오도록 고지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오히려 “손님들이 싫어할지 모르니 무서운 티 내지 말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평소 동물이 무서워 엘리베이터에 동물과 함께 탄 사람이 있으면 먼저 내려 보낼 정도라는 서모(23)씨도 최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한 카페를 갔다가 뒤늦게 동물 동반 카페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서씨는 “이제는 반려동물 동반 카페가 하도 많아서 동물 동반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 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이들처럼 ‘동물 공포증’을 앓는 사람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동물 동반을 허용하는 카페, 술집, 호텔 등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동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동물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정신과 질환이 있는데도 이런 점을 이해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소연한다. “다 큰 어른이 뭐가 무섭냐” “아무것도 모르는 동물에게 왜 과민 반응 하느냐”는 등의 편견에도 시달린다고 한다.
선천적 동물 공포증뿐 아니라, 어렸을 적 동물에게 물리는 등 동물 관련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사람들도 최근 반려동물이 급증한 탓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다. 울산에서 사는 직장인 장모(41)씨는 일곱 살 때쯤 집 앞 골목에서 커다란 개가 쫓아오는 바람에 한참 울면서 도망갔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 뒤로 개만 보면 움찔움찔 놀란다고 한다. 장씨는 “산책하러 집 근처 공원을 자주 가는 편인데, 요즘 동물과 함께 걷는 사람이 정말 많아서 목줄을 하지 않은 개를 보면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무서워서 저만치 피하면 동물 주인이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느냐’는 눈빛과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아 산책도 마음 편하게 못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주말이면 인왕산 등을 자주 오른다는 직장인 박모(47)씨도 “요즘에는 개 반, 사람 반처럼 느껴질 정도로 개를 데리고 등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박씨는 “특히 좁은 등산로를 올라갈 때 사람들이 개를 앞세우고 내려오면 무서워서 한쪽으로 피한 뒤 개가 지나가면 올라간다”고 했다. 반려동물 동반 출근이 가능한 회사도 생기고 있다. 서울 중랑구의 한 건축 회사에서 일하는 최모(29)씨는 사장이 1주일에 3번은 반려견을 데리고 회사에 나오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다른 층에 있는 회사 직원이 개를 무서워한다는 민원이 들어온 적도 있고, 외부 방문자가 개를 무서워해 건물로 들어오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가 과거 개에게 물린 경험이 있어 개가 가까이에 있으면 불편해하는 일이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2007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메르켈 당시 총리와 처음 만났을 때 래브라도 레트리버종인 자기 애견을 풀어놓은 일은 유명하다. 당시 “일부러 겁을 주려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특정 상황이나 사물 등에 대한 공포증은 가장 자주 발생하는 정신 질환으로, 대상이 아무리 작더라도 예상치 못하게 마주쳤을 때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 크다”면서 “반려동물이 부쩍 늘어난 만큼, 이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동물 출입 가능 여부를 사전에 고지하고 공공 장소에서도 갑자기 다가가거나 짖지 않도록 더 각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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