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나라. 조선일보 10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짧지만 강력했다. 그 뒤로 관련기사들이 이어졌다.
<2040세대 84%가 10가지 괴담 중 한가지 이상 믿어>, <30대가 2040대보다 괴담 더 신뢰>, <그나마…“FTA땐 빗물받아쓰게 될 것” 황당괴담 69%가 안 믿어> 등이었다.
조선일보가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20~40대 상당수가 근거없는 괴담을 믿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괴담 기사는 일순간에 한미 FTA 반대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우매한 군중으로 만들어버렸다.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 1면에서도 <“괴담에 휘둘리는 사회… 놀랍고 걱정된다”>라며 괴담론을 키웠다.
정부의 반응도 신속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조선일보 기사를 언급하면서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촉발하고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화답했다. 김 총리는 “(괴담은) FTA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흐리게 할 것”이라며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유언비어나 괴담은 우리 사회의 건강과 발전을 해치는 폐단이므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검찰이 괴담을 수사하겠다고 했다가 여당으로부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역풍을 맞고 물러선게 불과 사흘 전(7일)인데, 조선일보 기사가 다시 정치권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조선일보가 나서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등 다른 보수신문들도 뒤를 이어 괴담이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동조했다.
문제는 정부가 FTA 반대론자를 비난하는 것과 언론이 괴담이라고 몰아붙이는 것과는 본질이 다르다는 데 있다. 정부야 한미 FTA를 관철시켜야 하는 주체지만 언론은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공론장을 제공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언론이 나서서 FTA를 반대하면 반미세력으로 몰고 있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정말 괴담이 판친다면 그것은 언론이 정파적이 되면서 소통기능이 마비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FTA 체결을 반대하는 쪽에서 제기한 논란들을 따져보지 않고 괴담이나 정치적 공세로 폄훼할 경우 상호간에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수 없을 뿐 더러 불신과 갈등만 키우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괴담보다는 오히려 대화자체를 막는 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FTA 경제효과 괴담, 공공부문 협정예외 괴담, ISD(투자자국가소송제)는 다 괜찮다는 괴담 등 언론이 정부발 괴담부터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합리적 의심, 정당한 의구심까지 괴담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언론의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이 괴담이라고 지목한 사실 가운데 상당부분은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의료비 폭등과 관련한 소문이다. FTA가 체결되면 맹장수술비가 900만원이 된다는 내용은 대표적인 괴담으로 꼽혔다. 정부는 FTA가 발효돼도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법정사회보장제도는 한미 FTA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현재 전국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허용돼 있고 FTA가 본격화되면 장기적으로 확대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민의료보험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영리병원의 대표적 사례인 미국에서 살고 있는 네티즌들이 간단한 수술에 직접 수천만원이 나온 청구서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그 폐해를 주장하고 있는 게 ‘맹장수술 900만원’ 괴담의 실체다.
게다가 한국과 달리 민간보험체제가 중심인 미국이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공공복지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계속해서 문제삼을 가능성도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공공서비스 요금 폭등도 그렇다. 정부는 공공서비스분야는 FTA 의무에 관계없이 우리 정부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가스와 전력, 상수도 등 공공분야는 개방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도시가스와 같이 민간에 개방된 분야에 대해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32개 도시가스 소매업체 중 5곳을 보유한 GS칼텍스는 한국GS그룹과 미국 정유회사인 셰브론이 각각 5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합작회사로, 서울시가 조례를 통해 서울시 가스요금 인상을 규제한다면 미 셰브론이 ISD를 통해 제소할 가능성도 있다.
조선일보가 황당한 괴담으로 꼽은 ‘미국과 FTA를 맺은 후 물값이 폭등해 빗물을 받아쓴 볼리비아’ 사례는 어떨까.
일단 볼리비아가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볼리비아가 상수도 사업을 미국기업 벡텔에 넘긴 것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지원조건으로 수도사업 등 공공사업을 민영화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벡텔 컨소시엄은 1주일 만에 물값을 최대 200%까지 올렸고 주민들이 빗물을 받아쓰는 참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FTA 때문은 아니지만 공공부문의 민영화가 얼마나 심각한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FTA가 체결되면 민영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괴담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시사점을 봐야한다는 얘기다.
‘알약 하나에 3만원’ 괴담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3년 유예 등 대책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이후 지적재산권 강화에 따라 카피약 출시가 엄격해지면서 약값의 상승이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견해와 해석의 차이를 괴담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언론 스스로가 건전한 여론형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괴담론은 정부의 전망과 해석을 무조건 따르라는 건데,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무시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40세대 84%가 10가지 괴담 중 한가지 이상 믿어>, <30대가 2040대보다 괴담 더 신뢰>, <그나마…“FTA땐 빗물받아쓰게 될 것” 황당괴담 69%가 안 믿어> 등이었다.
조선일보가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20~40대 상당수가 근거없는 괴담을 믿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괴담 기사는 일순간에 한미 FTA 반대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우매한 군중으로 만들어버렸다. 조선일보는 그 다음날 1면에서도 <“괴담에 휘둘리는 사회… 놀랍고 걱정된다”>라며 괴담론을 키웠다.
정부의 반응도 신속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조선일보 기사를 언급하면서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촉발하고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화답했다. 김 총리는 “(괴담은) FTA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흐리게 할 것”이라며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유언비어나 괴담은 우리 사회의 건강과 발전을 해치는 폐단이므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검찰이 괴담을 수사하겠다고 했다가 여당으로부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역풍을 맞고 물러선게 불과 사흘 전(7일)인데, 조선일보 기사가 다시 정치권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조선일보가 나서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등 다른 보수신문들도 뒤를 이어 괴담이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동조했다.
문제는 정부가 FTA 반대론자를 비난하는 것과 언론이 괴담이라고 몰아붙이는 것과는 본질이 다르다는 데 있다. 정부야 한미 FTA를 관철시켜야 하는 주체지만 언론은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공론장을 제공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언론이 나서서 FTA를 반대하면 반미세력으로 몰고 있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정말 괴담이 판친다면 그것은 언론이 정파적이 되면서 소통기능이 마비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FTA 체결을 반대하는 쪽에서 제기한 논란들을 따져보지 않고 괴담이나 정치적 공세로 폄훼할 경우 상호간에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수 없을 뿐 더러 불신과 갈등만 키우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괴담보다는 오히려 대화자체를 막는 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FTA 경제효과 괴담, 공공부문 협정예외 괴담, ISD(투자자국가소송제)는 다 괜찮다는 괴담 등 언론이 정부발 괴담부터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합리적 의심, 정당한 의구심까지 괴담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언론의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이 괴담이라고 지목한 사실 가운데 상당부분은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의료비 폭등과 관련한 소문이다. FTA가 체결되면 맹장수술비가 900만원이 된다는 내용은 대표적인 괴담으로 꼽혔다. 정부는 FTA가 발효돼도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법정사회보장제도는 한미 FTA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현재 전국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허용돼 있고 FTA가 본격화되면 장기적으로 확대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민의료보험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영리병원의 대표적 사례인 미국에서 살고 있는 네티즌들이 간단한 수술에 직접 수천만원이 나온 청구서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그 폐해를 주장하고 있는 게 ‘맹장수술 900만원’ 괴담의 실체다.
게다가 한국과 달리 민간보험체제가 중심인 미국이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공공복지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계속해서 문제삼을 가능성도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공공서비스 요금 폭등도 그렇다. 정부는 공공서비스분야는 FTA 의무에 관계없이 우리 정부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가스와 전력, 상수도 등 공공분야는 개방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도시가스와 같이 민간에 개방된 분야에 대해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32개 도시가스 소매업체 중 5곳을 보유한 GS칼텍스는 한국GS그룹과 미국 정유회사인 셰브론이 각각 5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합작회사로, 서울시가 조례를 통해 서울시 가스요금 인상을 규제한다면 미 셰브론이 ISD를 통해 제소할 가능성도 있다.
조선일보가 황당한 괴담으로 꼽은 ‘미국과 FTA를 맺은 후 물값이 폭등해 빗물을 받아쓴 볼리비아’ 사례는 어떨까.
일단 볼리비아가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볼리비아가 상수도 사업을 미국기업 벡텔에 넘긴 것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지원조건으로 수도사업 등 공공사업을 민영화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벡텔 컨소시엄은 1주일 만에 물값을 최대 200%까지 올렸고 주민들이 빗물을 받아쓰는 참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FTA 때문은 아니지만 공공부문의 민영화가 얼마나 심각한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FTA가 체결되면 민영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괴담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시사점을 봐야한다는 얘기다.
‘알약 하나에 3만원’ 괴담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3년 유예 등 대책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이후 지적재산권 강화에 따라 카피약 출시가 엄격해지면서 약값의 상승이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견해와 해석의 차이를 괴담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언론 스스로가 건전한 여론형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괴담론은 정부의 전망과 해석을 무조건 따르라는 건데,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무시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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