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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31, 2011

이근안은 어떻게 버젓이 목사가 되었나

김근태 상임고문의 별세소식을 들은 후 슬픔과 낭패감, 분노와 불가해함이 뒤섞인 정체불명의 감정이 몰려왔다. 그 감정은 대략 공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의인(義人)이 이땅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절명한 반면, 악인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점점 힘이 세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연유하고 있었다. 또한 그 감정은 암흑의 시대를 만들었던 주범들과 하수인들에 대한 심판과 청산의 부재, 여전히 그들의 후예들이 사회 각 부면을 주름잡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감, 좋은 세상이 도대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 등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김 고문의 죽음에 원인(遠因 )을 제공한 이근안 목사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전화기도 꺼놨다는 이 목사는 김 고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을까? 김 고문의 영혼에 사죄와 참회의 기도를 하고 있을까?

  
수사대상자들을 불법 감금·고문한 혐의로 수감됐던 이근안씨. 지난 2006년 징역 7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작년 <일요서울>과 한 인터뷰에서 이근안 목사는 자신의 고문행위를 애국행위로, 자신을 "신문(訊問) 기술자"로 지칭하며 "신문은 하나의 예술"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목사에게 개전의 정이 없다는 사실은 이 목사가 목회자가 된 후 밝힌 "간첩죄로 잡아들인 애들이 후일 민주화 인사로 보상받는 걸 보고 울화가 치밀어 감옥에서, 믿을 수 있는 나라, 배신 없는 나라를 찾다 보니 하늘 나라를 찾게 되었다" 는 발언 속에서 명백히 확인된다.

이근안 목사는 고문기술자로 활약하면서 저지른 수다한 고문행위에 대한 인정에도 지극히 인색했다. 그는 김 고문 외 2명에 대한 고문-그조차 이 목사는 강제신문이라고 주장한다-사실만 증인이 등장한 후 마지못해 인정했을 뿐이다. 이쯤되면 인간이라는 종(種)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밀려올 지경이다.

그런 이 목사에게 사실인정이나 사죄나 참회를 기대하는 건 부질없다. 이 목사의 사례는 고문 등의 반인권행위자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단죄가 필요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하겠다. 공소시효가 배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갖가지 미명 하에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파괴하도록 교사하고 이를 실행한 자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처단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일들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추상같은 사법적 처벌이 있은 연후에야 가해자들의 자백과 참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며, 오히려 법의 심판이 가해자들의 집단적 고해성사를 유도할 것이다.

그런데 이근안 목사는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에게 목사안수를 해 준 개신교 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근안 목사는 한국 개신교가 너무나 깊은 병에 빠졌다는 증거다. 설사 이근안이 목사되기를 원했다해도 개신교 내의 모든 교단들은 이를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다. 교회는 이근안에게 이렇게 권면해야 옳았다. "당신의 손에 영혼과 육신이 망가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가능한 한 직접 찾아뵙고 사죄하고, 남은 여생은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라. 그게 진정한 참회고 그래야 당신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이다"라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근안은 버젓이 목사가 됐다. 이근안 목사는 최근까지 자신의 행위를 애국으로 강변하며, 자신이 파괴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가정을 욕보이고 있다. 값싼 용서와 거짓 참회를 남발하는, 결정적으로 정의(正義) 관념과 윤리적 미감, 역사의식이 부재한 한국개신교는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사죄와 참회가 요구되는 건 이근안 뿐이 아니다. 그에게 목사 안수를 준 교단과 그 교단을 품고 있는 개신교계 전체가 돌이켜 회개해야 한다. 정의와 윤리가 없는 개신교의 미래는 암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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