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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16, 2016
청기와 종년은 국민을 훈시듣는 학생으로 아는가 ?...갈수록 ‘독재자 애비’ 전철 밟아가는 듯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90] 광복절 경축사 ‘할 수 있다’ ‘불굴의 정신’ 강조 ‘어떻게’ 없이 헌신만 요구하는 박정희 논리 빼닮아 박 대통령 갈수록 ‘독재자 아버지’ 전철 밟아가는 듯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제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정희 대통령이 딸 박근혜와 함께 1978년 12월27일 장충문화체육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심상치 않겠다는 예감이 든 것은 8월11일 청와대 오찬이었습니다. 이정현 대표를 비롯해 새누리당 새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한 박근혜 대통령은 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낸 박상영 선수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 안팎으로 나라 사정이 어렵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은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71주년 광복절 경축사는 참 특이했습니다. 광복절에 걸맞은 한반도, 남북관계, 한일관계 내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머나먼 이국땅 캄캄한 지하갱도’(독일 광부 파견), ‘밀림의 전쟁터’(월남 전투병 파병),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중동 특수) 등 아버지 시대의 성공 신화를 회고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다시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말을 거듭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는 아무리 들어봐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노력하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내부의 분열과 반목에서 벗어나”
“우리는 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신념과 긍지를 토대로”
“다시 한 번 힘차게 도약의 미래로 나아갑시다!”
“제2의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치관과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저력을 믿고,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포기와 좌절을 몰랐던 불굴의 정신을 다시 일으켜서”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려는 시대착오적인 통일전선 차원의 시도도 멈추기 바랍니다.”
“세계가 말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도전과 위기도 반드시 이겨낼 것이며”
“불가능은 없다는 우리 민족의 불굴의 디엔에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경축사에 나오는 표현 중에서 국민들의 자신감과 단결을 고취시키는 표현을 눈에 띄는 대로 골라낸 것이 이 정도입니다. 연설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강렬합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슴에 품고,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간다면, 지금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먼 훗날 또 한 번의 위대한 여정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위대한 대한국인임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힘을 합쳐 희망찬 미래로 함께 나아갑시다!”
경축사를 듣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초중고 학생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은 애국심을 강요하는 훈시를 했습니다. 유신헌법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헌법이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뙤약볕에서 정신이 몽롱했지만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지겨운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군에 가서도 비슷한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휘관들의 훈시 내용은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 내용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군생활을 박정희 전 대통령 때에 시작해서 전두환 전 대통령 때까지 했습니다. 제 기억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하면 된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영어로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오바마의 선거 구호였던 ‘예스 위 캔’(Yes we can), ‘하면 된다’는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Just do it)과 비슷한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영어로 하면 그럴듯한 표현이 당시에는 무척 무섭고 강압적으로 들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국민들의 에너지를 짜내려는 독재자들의 구호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생각에서 8·15 경축사에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을 꺼내 든 것일까요? 스포츠 선수가 자신감을 고취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나는 할 수 있다”고 주문을 거는 것과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에게 고도의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을 같은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혹시 오래전에 아버지가 자주 했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말을 앞으로 남은 임기 내내 자신도 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큰 일입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을 하면 연설에 나오는 몇 개의 단어로 과거 기사나 자료를 검색해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박정희 대통령 말씀’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설이나 표현을 혹시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할 수 있다’는 단어와 ‘박정희’라는 단어로 옛날 기사와 자료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두 가지 자료가 눈에 띄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2월27일 제8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10월 유신으로 영구집권 토대를 마련하고 총통 수준의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에 취임한 것입니다. 그 취임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지난 10년간의 우리 역사가 비단 고난과 역경만의 연속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시련을 극복하는 용기와 잘 살 수 있다는 자신을 안겨 준 보람찬 긍지의 기록이라고 자부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남들이 수백년 걸려서 이룩한 정신적 자아의 발전을 불과 10년이란 짧은 기간에 이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실증한 것이며, 불굴 용기로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무한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또다시 국민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땀과 더 많은 정열을 우리 조국에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총화전진의 시대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이러한 혁신적인 유신작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정부와 국민이 그 어느 때보다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신뢰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야만 유신의 열매도 더욱 알차게 맺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국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가정에서도 진정한 화목과 우애를 이룰 수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애국심, 이 조국애가 곧 우리들이 정립해나가야 할 국민기강의 근본이라고 강조해 두고자 합니다.”
“우리는 안으로 근면과 검소, 정직과 성실의 기품을 크게 일으키고, 조국을 위한 사랑, 국가에 대한 충성을 굳게 다짐하면서, 국력증강을 위해 더욱 힘차게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시대가 다르기 때문인지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은 차이가 나지만 국민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을 요구하는 논리 구조는 꼭 같습니다. ‘혼연일체’라는 단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도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최근에는 8월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 축사에서 혼연일체라는 말을 했습니다.
두번째 자료는 법제처가 만든 ‘1975년 박정희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내용 해설’입니다. 무척 긴 내용이라 머리말의 일부만 소개하겠습니다.
“1975년 1월14일 상오 10시 박정희 대통령은 장장 2시간40분 동안에 걸친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도전과 세계적 경제불황의 시련을 강조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시정의 방향을 소상히 밝히면서 75년에는 국민 모두가 단결해서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영광의 해가 되도록 의욕과 용기를 가지고 함께 나아가자고 촉구하셨다.”
“박 대통령이 6개 항목에 걸친 기자질문에 대해서 소상히 답변하고 난국타개를 위한 불퇴전의 의지와 국가경영의 경륜을 펴나가는 가운데서 특히 우리 국민의 마음가짐을 촉구한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년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 이를 극복해 나가는 마음의 자세가 굳게 서야 하겠다. 이를 위한 가장 큰 무기는 국민 전체의 단합과 협동, 상부상조의 정신뿐이다.”
“우리는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밀고 나가야 하겠다. 이젠 농어촌뿐 아니라 도시, 학교, 공장, 군대에서도 새마을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금년에는 안보·경제면에서 많은 시련이 가중될 것이지만 모든 국민이 새마을정신으로 총화단결해 나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될 것이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거나, 단합과 협동, 상부상조의 정신을 강조하는 대목이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경축사 내용과 비슷하지요?
제가 세운 가설은 이렇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나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신뢰와 애국, 단결, 고통분담 등을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난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논리와 표현이 비슷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부녀지간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 1979년 숨질 때까지 무려 18년 동안 최고 권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9세부터 27세까지 그런 아버지의 바로 옆자리에서 세상과 정치를 배웠습니다. 두 사람의 가치관이나 인품이 다르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참 아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과 ‘5선 국회의원’이라는 두 개의 얼굴이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에 의해 국회의원을 다섯번이나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된 정치인입니다. 저는 2012년 대선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면 아버지와 달리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국회에 입문한 뒤 국회의원으로서, 정당의 대표로서 상당기간 정치적 훈련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곧 무너졌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대통령 취임 뒤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저는 아직도 그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박정희-박근혜 두 대통령에 대한 비교 연구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못을 박근혜 대통령이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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