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폐기’ 위협 이어 한국 북핵 ‘유화적 태도’ 비난
미 언론 “안보·경제 문제 뒤섞는 트럼프의 혼란” 비판
중국 압박 전 단계·북에 힘 못쓰자 한국 겨냥 해석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3일 워싱턴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워싱턴/UPI 연합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3일 워싱턴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워싱턴/UPI 연합
북한 핵위기가 고조되는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북핵 위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한국은 내가 그들에게 얘기해온 것처럼 북한에 대한 유화적 대화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한가지만 안다”고 썼다. 트럼프는 전날엔 개정 협상에 들어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를 논의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의 행태가 당혹스럽다는 논조의 보도를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북한 핵실험 뒤 트럼프가 왜 한국에 가장 날카로운 비난을 했나?’, <워싱턴포스트>는 ’서울은 트럼프의 비판을 무시하려 한다: 한 관측통은 서울쪽은 그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걱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이 핵 근육을 과시하는데, 미국은 한국과의 싸움을 선택했다’는 제목의 기사들을 내보냈다.
미 언론들은 고조되는 북핵 위기로 한미 양국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 트럼프가 한국을 질타하고 압박하는 것에 의문과 함께 비판을 던지고 있다. 안보와 경제 문제를 뒤섞어 버리는 혼란이라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에게 이 위기는 자신의 경제적 포퓰리즘 선거운동의 기반인 통상문제가 대통령으로서 추구하는 안보문제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는 트럼프 자신이 만든 문제”라며 “안보문제에서는 협력하면서도 통상문제는 압박할 수 있던 전임자들과는 달리, 트럼프는 그 두 문제를 명백하게 연계시켜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기본적 접근법은 무역문제로 중국을 압박해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나서게 만드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취임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압박해주는 대가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 거래를 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또 국내에서는 지지층인 중서부 내륙의 보수적 백인 중하류층들을 달래줄 경제적 이벤트가 절실한 상태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언사는 “국내 청중들을 위한 (한국) 때리기”라는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말을 전했다. 대중 강경론자인 배넌은 “이것은 100% 중국에 대한 것이다”라며 “중국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을 제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3일 북한 핵실험 직후 5차례 관련 트윗을 올리며,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겨냥했다. 트럼프는 “북한은 중국에 큰 위협과 당혹을 주는 불량국가이고, 중국은 도움을 주려했으나 거의 성과가 없었다”,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와의 모든 무역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자, 트럼프는 다시 대중국 경제제재를 위협하면서 그 전 단계로 한국을 시범케이스로 끼워넣은 것이다.
배넌으로 대표되는 백인민족주의 세력은 트럼프 정권의 가장 열렬한 지지층이다. 이들은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의 국내산업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배넌은 경질되기 직전 인터뷰에서 “검증가능한 북핵 동결과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 협정”,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 잊어버려라”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이런 한반도 관련 발언은 중국에 대한 흔들림없는 무역제재를 주장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그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상호확증파괴 논리가 그 자체로 억지력의 근원임을 감안하면, 중국에 대한 강경한 무역제재를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중국에 매달리지 말아야 하며, 북핵이 이미 개발된 이상 서로 핵 억지력이 있기 때문에 도발과 전쟁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중국이 정직한 중재자로서 김정은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로 중국의 무역관행에 대한 불만을 지금 늦춰야 한다는 희망사항의 덫에 빠지지 말고,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전선에서 동시에 정치적 싸움을 벌이는 트럼프 특유의 스타일도 작용했다. 트럼프 외교팀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라는 상표는 힘의 과시에 기반하고 있는데, 그가 북한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자, 서울(남한)이 목표가 됐다”고 <뉴욕타임스>에 전했다. 트럼프로서는 북한에 대해 마땅한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한국과 중국을 상대로 실리를 취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치권 안팎에선 당혹스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프 플레이크 상원 외교위원(공화)은 트럼프의 이런 발언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당하지 않다”며 “한국이 직면한 상황을 감안할 때 특히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아담 스키프 하원 정보위 간사(민주)는 “우리는 한국과 손을 잡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과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