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독일TV 특파원 "김사복 옆 힌츠페터 맞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 김사복씨와, 1980년 광주를 취재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함께 찍은 사진이 5일 확인됐다.
CBS노컷뉴스의 최초 보도(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7. 8. 24 [인터뷰]"내 아버지가 택시운전사 김사복, 증거 있다") 이후 생전에 호텔 택시를 운전했던 김사복씨가 극중 '김사복'과 동일인이라는 정황은 꾸준히 나왔지만, 두 사람이 함께 나온 사진이 공개돼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가 제공한 사진은 여러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는 장면을 담고 있다.
사진 속 김사복씨 곁에는 안경을 쓴 외국인이 자리잡았고, 김승필씨는 그 외국인이 힌츠페터일 것으로 추정했다.
과거 사진에 담긴 힌츠페터의 겉모습과 안경, 셔츠의 무늬까지 비슷했기 때문이다.
CBS 취재진은 다양한 경로로 이를 검증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1980년 힌츠페터와 함께 독일 TV방송인 ARD-NDR에 소속돼 일본 특파원을 지낸 페터 크레입스(Peter Krebs)와 연락이 닿았다.
힌츠페터는 현재의 부인과 지난 2002년 결혼한 까닭에, 크레입스는 힌츠페터의 1980년 당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가장 공신력 있는 인물.
이메일을 통해 사진을 받아본 크레입스는 힌츠페터가 맞다고 확인해줬다.
그는 "안경을 낀 남자는 힌츠페터가 맞고, 머리가 벗겨진 인물은 사운드맨인 헤닝 루머(Henning Ruhmor)"라면서 "누가 이 사진을 찍었느냐"고 궁금해 했다.
김승필씨의 아버지와 영화 속 주인공의 일치 여부를 둘러싼 의구심이 말끔히 해소된 셈이다.
◇ 독일 특파원 "중앙정보부 감시망 피하려 힌츠페터 보내"
힌츠페터가 1980년 광주를 찾게 된 경위도 파악됐다.
크레입스에 따르면 ARD 방송사의 독일 특파원 사무소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71년으로, 그는 처음부터 1982년까지 일본은 물론 한국과 대만 필리핀을 취재하는 특파원 활동을 했다.
그의 주요 취재 대상 중 하나는 김대중과 같은 야권 정치인이었는데,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상황을 접하게 됐다.
곧바로 취재를 결심한 크레입스는 카메라맨이었던 힌츠페터와 사운드맨이었던 루머에게 광주행을 지시했다.
크레입스는 "그때 나는 서울에 잘 알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KCIA(중앙정보부)가 나를 가로막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그래서 힌츠페터와 루머에게 그곳에 가 취재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가 광주에 있던 유일한 외국 기자들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독일 주간지에 소속된 자신의 아내 루이즈 크롬(Luise Crome)도 광주를 취재했다는 것.
현지 취재가 크게 제약받지 않은 것에 대해 그는 "전두환 정부는 김대중이 좌경 학생들을 동원해 쿠데타를 시도하는 것으로 비난하려 했고, 외신 기자들에 의해서도 그러한 사진이나 영상들이 전해지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크레입스는 이어 "다행히 전두환의 기대는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됐다"면서 "전세계는 정부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의 잔혹함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영웅으로 불리느냐?"고 묻고는 "그것은 동화 같은 일(This would be a fairy-tale)"이라고 덧붙였다.
◇ "아버지는 수동적 기사가 아니라, 인권주의자"
김사복씨의 이전 행적도 눈길을 끈다.
외신 기자들의 취재 지원을 빈번히 하면서, 특히 재야의 유력 인사들과도 접촉할 기회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들 김승필씨가 제공한 또다른 사진에서도 김사복씨와 민중운동가 함석헌 선생이 함께 등장한다.
김승필씨는 "아버님이 평소 '사상계' 같은 책을 즐겨 읽으셨다"며 "이런 평소의 신념이 목숨을 걸고 광주로 향한 외신 기자들과 두번이나 함께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힌츠페터가 공저한 책 <The Kwangju Uprising: Eyewitness(광주의 봉기: 목격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고 촬영된 영상을 일본으로 보낸 뒤 또다시 광주를 찾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김사복씨가 한국에 도착한 힌츠페터에게 곧바로 브리핑해주었다는 사실("As we drove, Kim briefed us on the situation")로 미뤄, 김씨가 당시의 비상계엄 국면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 김승필씨는 "아버지는 기자를 태우고 수동적으로 광주에 내려간 기사가 아니라, 인권주의자였다"면서 "아버지의 행적을 제대로 알려내는 일은 아들된 도리"라고 밝혔다.
이어 "영화 '택시운전사'는 실화를 재구성해 김사복이라는 인물과 힌츠페터의 소신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해준 역할을 했다"면서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승필씨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과 협의해 아버지 김사복씨의 행적을 복원·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한편, 힌츠페터가 묻힌 망월동 묘역으로 아버지의 유해를 옮겨 안장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갈 계획이다.
[CBS노컷뉴스 김정훈 기자·강민주PD] repor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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