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의혹'에도 꿈쩍 않던 아버지가.. "요즘 하는 걸 보니 마뜩잖아"
[이희동 기자]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역 앞에서 은평갑 당원협의회 소속 당원들과 함께 국민의힘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 홍보 활동을 마친 뒤 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 국회사진취재단 |
오랜만에 만난 40대와 70대 부자지간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년 대선주자에 대한 품평으로 시작됐다. 아버지는 여전히 '반 문재인' 정서로 도배돼 있는 유튜브 등에 심하게 노출돼 있으신 바, 작금의 상황이 심히 못마땅하신 듯했다.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윤석열 후보는 어떤 것 같으냐?"
"왜요? 생각보다 별로예요?"
"그러게.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지금은 영. 처가 문제까지만 해도 그냥 헛소문이겠거니 했는데 요즘 하는 걸 보니 마뜩치가 않네."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윤석열 후보에 대한 아버지의 호감도는 꽤 단단한 편이었다. 현 정부의 반대편에서 시원시원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법무부장관의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조직을 지키는 그의 모습을 아버지는 흡족해하셨다. '남자답다'라나.
심지어 아버지는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와 관련된 소위 '쥴리' 인터뷰가 터졌을 때에도 꿈쩍하지 않으셨다. 평소에 대통령의 품격이나 인품을 중요시하던 당신이었기에 난 아버지가 당장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아버지는 윤석열 후보와 처가는 다른 문제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셨다. 아내의 'Yuji'(유지) 논문 논란도 어디까지나 김건희씨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윤석열 후보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랬던 아버지조차 윤석열 후보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셨다. 아직 제대로 검증대에 서보지도 않은 윤석열 후보이건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윤석열에 대해 실망하고 계신 걸까?
"왜요 아버지? 윤석열 후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요?"
"처음에 나와서 도리도리 할 때부터 약간 이상하긴 했는데, 요즘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너무 무식한 것 같다. 기자들 과장도 있겠지만 이건 너무하지 싶은데? 평생 칼만 휘두르다 보니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아."
그러면서 아버지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그의 발언들을 하나하나씩 짚기 시작하셨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정식품을 먹여도 된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폭발하지 않았고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 '집은 생활필수품이니 세금을 걷을 필요 없다' 등 아버지는 발언 대개가 기가 막힌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어떻게 검찰총장이나 한 사람이 필부인 당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 세대가 으레 그렇듯 박근혜 대통령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은 최순실의 등장 때문이었다. '우리의 대통령 박근혜'가 나보다 잘난 게 없어 보이는 최순실의 꼭두각시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충격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 세대에게 있어서 대통령은 그가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이어도 최소한 똑똑해야 하는 존재인 듯했다. 제왕적 대통령에 익숙해 있는 그들에게 후보가 무식하다는 평가는 최악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는 윤석열 후보를 다시 보고 있으셨다.
▲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
ⓒ 국회사진취재단 |
1960~70년대 사고방식이 노출된 윤석열 후보. 그렇다면 그 대체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괜찮을까? 안됐지만 아버지에게 있어서 최재형 후보 역시 윤석열 후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 최재형 후보는 어때요?"
"전 감사원장 말이지? 거기도 영. 저번에 기자회견 봤더니 아는 게 없던데? 다 준비해서 말하겠다고 하고. 도대체 왜 대선에 나왔는지 모르겠더라."
윤석열 후보에 대한 평가와 비슷했다. 아버지에게 대선 후보라 하면 최소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야만 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최재형 후보는 윤석열 후보처럼 아버지에게 그런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그냥 기독교 열심히 믿는 판사 출신의 전 감사원장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최근 이슈가 됐던 최재형 후보의 국민의례 사진까지 알고 계셨다. 비록 뉴스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가 접하고 있는 소셜미디어에는 그 내용이 돌아다니고 있는 듯했다.
"요즘 유행하는 그 국민의례 사진도 보셨어요?"
"그럼. 집안에서 식구들끼리 모였는데 애국가 4절이 다 뭐냐.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고. 5시 되면 국기하강식도 하려고 하는 건가? 그리고 그걸 또 왜 굳이 인터넷에 올렸대. 판사까지 한 양반이 참 이상해."
'준비 안 된 대통령 후보'라는 비극
아버지는 전체적으로 답답해하셨다. 어쨌든 문재인 정권은 잘못한 것 같아 정권교체는 필요한 것 같은데 도대체 믿을 사람이 나오지 않으니 안타까운 형국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
"윤석열, 최재형 다 아니라면 아버지는 누가 대통령 되면 좋겠어요? 야당에는 괜찮은 후보가 있어요?"
"글쎄다. 홍준표는 여전히 불안하고. 원희룡은 잘 모르겠고. 그나마 유승민 후보가 낫지 않나? 경제도 많이 알고 똑똑해 보이고. 뭐, 자기 사람들 챙겨주고, 그런 남자다운 맛은 없다고 하더만, 그래도 지금으로 봐서는 유승민이 제일 나은 것 같은데?"
"그럼 더불어민주당은 어때요?"
"뭐, 이재명은 어쨌든 일을 잘 할 것 같고, 이낙연은 성품과 인격으로 봐서는 대통령 감이지. 그래도 어쨌든 이번에는 정권교체를 해야 하니까."
물론 우리 아버지가 그 세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바라시는 아버지를 통해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에서 윤석열과 최재형 두 후보의 지지율이 왜 약간 떨어지거나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지는 짐작해볼 수 있다.
70대 보수 어르신에게조차 그들은 대통령을 하기에 너무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아직도 자신은 1960~70년대를 살아가면서 21세기, 그것도 코로나19 시대 이후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 대한 지지율이 개인이 아니라 진영에 근거한 이상,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디 두 후보는 좀 더 치열하게 공부하시길 바란다. 혹여 정권이 바뀌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21세기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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