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국정농단 다 봐준 ‘사면농단’, 기분대로 꺼내든 ‘확전 불사’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2월28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부 업무보고에서 다누리호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한 영상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우격다짐으로 끼워맞춘 부품이나 장치가 삐거덕삐거덕 억지스럽게 움직인달까. 아귀가 짓뭉개지면서라도 어찌어찌 맞물려 돌아가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갑자기 멈춰서거나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이런 불안이 박근혜 정권 때도 있었다. 국정 농단이라는 배후의 작동원리가 드러나면서 그 실체를 알게 됐다. 김무성 같은 이는 자의 반 타의 반일지언정 몸으로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시 우리는 맥락을 알았고 맥락에 저항하는 여권 인사를 보기도 했다. 지금은 대통령의 ‘내맘’ 외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맥락을 도통 못 짚겠다.
과거 윤석열과 현재 윤석열 ‘자아통합’ 비아냥도 점잖다
이것저것 막 던져보다 뭐 하나 얻어걸리면 다행인 정치랄까. 철학과 의지는 고사하고 딱히 순서도 없다. 그냥 대통령 마음대로 즉흥적이다. 난데없이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며느리도 모른다. 그냥 먼저 걸린 게 귀족노조 딱지 붙여 무릎 꿇린 화물연대였다. 여기서 ‘재미 봤다’고 여기는지 노조 부패를 들먹이며 회계장부를 공개하라 했다. 이어 시민단체를 소환했다. 나랏돈 함부로 썼다고 예산 불투명 오명을 씌웠다. 뜬금없다. ‘내 편(이라고 여길 만한 이)들’이 마뜩잖아하는 세력을 일단 한번 털어보겠다는 식이다. 이렇게라도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심보인가. 더 떨어질 것도 없으니 밑져야 본전인가.
내키는 대로 정치하는 것까지 최고 권력자의 자유라 치자. 경우에 안 맞는 말은 그만 좀 갖다붙였으면 좋겠다. 근면성실하게 뇌물 받아먹고 17년 형기 중 감빵 생활은 들락날락 고작 2년 한 전직 대통령을 풀어주면서 ‘국민 통합’이라고 한다. 댓글 공작, 권력형 비리·부패 사범들도 대방출했다. 자기가 잡아 가둔 사람을 풀어준다면 최소한의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 윤석열과 현재 윤석열의 ‘자아 통합’이라거나 다 끌어모아 당권을 잡기 위한 ‘당원 통합’이라는 비아냥조차 점잖을 정도이다.
권력을 즐기려면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지 않으면 권력에 취한 것뿐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쪽인가.
아무도 직언은커녕 보고도 제대로 못하는 눈치다. 위기 때마다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을 보면 확인된다. 북한의 무인기 침투 다음날 첫 반응은 우리 군을 향한 ‘격노’였다. 그리고 ‘전 정권 탓’과 ‘확전 각오’였다. 이어지는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말은 이치에 안 맞았다. 대통령의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좋을 대로 말하기’를 빼다박았다.
대통령은 우리 군에 드론 부대가 있는 것도 몰랐으면서 전 정권 때 훈련을 안 한 건 어찌 알았을까. 국방부는 북한발 무인기의 항적 경로도 제대로 못 밝히면서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 쪽은 굳이 안 지났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우리 무인기를 북한에 침투시키는 식의 ‘보복성 용단’을 내린 분은 대통령이라고 이 와중에 ‘깨알 칭송’을 내놓았다. 아니 그걸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안 하면 누가 하나.
확전을 불사할 만큼 비례성 원칙에 추상같으신 분이 그 비상한 와중에 만찬 행사는 멀쩡히 치렀다. 불요불급한 송년 저녁 식사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불러다 두고 말이다. 한 친구는 그가 왜 대통령이 됐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고 했다. 진실은 의외로 단순하다며 “제일 상석에 앉아 놀고먹고 마시려고”라는 간명한 답을 냈다. 박근혜 정권 당시 “더럽고 치사해도 박근혜보다 오래 살면 그만”이라는 대인배 풍모를 내보였던 또 다른 친구는 심장이 쪼그라들었다며 “제발 전쟁만 일으키지 말아라”라는 새해 소망을 기도하는 소녀 사진과 함께 보내왔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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