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이 싫어하는 두 가지 부모유형이 있다. 두 번째가, 똑똑한데 돈은 많은 부모. 가장 싫은 부모는 똑똑하면서 돈도 없는 부모.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은 바로 가장 싫은 부모유형으로 분류되는 듯하다.
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똑똑함(더 이상 맞는 표현은 없을 듯하다)을 좋아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이유도 그의 똑똑함 때문이다. 똑똑함이 싫어하는 이유가 되는 이유는 그에게서 아주 짙게 느껴지는 엘리트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엘리트주의는 그의 우월한 프로필 때문만은 아니다. 겨울이면 삼삼오오 화투짝이나 돌렸을 촌로들이 수두룩했던 지방 소도시에서 그의 부친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자녀들 세숫물 데우며 책을 읽었다고 한다. 호롱불에 비쳐 크게 일렁이는, 앉은뱅이책상 앞의 아버지 그림자가 매일 아침 어린 유시민이 보았던 세상의 첫 풍경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똑똑하지도 않고 돈만 많은, 그래서 가장 이상적이라는 부모유형보다 백배, 천배 훌륭하다. 그의 엘리트의식은 유년시절 잠자리에서부터 녹아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엘리트답게 유능하다.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시절, 공무원들이 그의 뒷담화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유장관은 진짜 콕 핵심을 집어내고, 진짜 놓치는 게 없다.” ‘진짜’가 남발되는 이런 뒷담화는 살다 살다 진짜 처음이었다. 부하직원들의 술자리 뒷담화가 이럴 정도면 이야기는 끝났다. 그는 근거 없는 비판, 말장난 같은 비판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보기 드물게 소설조차 사회과학적 잣대를 대고 읽는다는 지식정치인이다. 거친 정치풍랑 속에서도 고전을 읽고 책을 쓰는 인문정치인이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진정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그가 통합민주당에 가지 않고 진보세력과 합친 것에 대해 기득권정당의 기득권을 버리고 진보의 길에 앞장선 것이라는 평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가 군소 진보정당을 끌어 모아 거대 통합민주당과 한판 대선 단일화 ‘쇼부’를 치려는 수라는 비판이 많다. 그리고 이런 비판의 배경에는 그의 엘리트의식에 대한 깊은 반감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샤프한 소프트웨어보다 믿음직한 하드웨어에 더 마음 갈 때가 있다. 그는 샤프한 엘리트이지만, 엘리트주의가 그에 대한 신뢰를 가로막고 있다. 엘리트주의가 지나쳐 ‘뚝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래도 ‘싸가지 없긴 하지만 옳은 소리는 했다’는 평이었지만, 지금은 ‘자기이해에 따라 말을 바꾼다’는 평까지 듣고 있다. 여기저기서 정 맞는 모난 돌이 돼버렸다.
그는 십년 전 ‘백년 갈 정당’이 될 것이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미래형 정당’인 개혁당을 만들었다. 밖에서 아는, 또는 밖에서 알지 못하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그가 창당 1년여 만에 개혁당을 해산했던 것은 그의 정치사에서 가장 큰 오류였다. 지금 우리 모두가 놀랍게 바라보고 있는 SNS정치, 트윗정치의 발판이 될 수 있었던 개혁당을 굳건히 지켜왔다면, 그동안 그에게 지극히 실망스런 결과를 안겨준 여러 선택들도 없었을 것이다. 백년 갈 정당을 뚝심으로 십년이라도 끌고 왔다면, 그는 명실공히 지금 아무도 함부로 입방아 찧을 수 없는 믿음직스런 대권후보로 우뚝 서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보통합당의 길을 그리기 전에 엘리트근성부터 지워야 한다. 소주한잔 나누고 싶은 인간미가 느껴져야 한다. 금속성이 아닌, 사람만 좋던 윤리선생님이 쓰던 뿔테 안경으로 바꾸고, 상대방을 우습게 보는듯한 눈길로 가녀린 목을 앞으로 쑥 내밀며 말하는 버릇부터 없애라고 권하고 싶다. 똑똑한 모난 돌이 계속 정만 맞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아프다. 모난 돌의 뚝심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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