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영광 기자]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한상희 제공 |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를 국회에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열 번째 법안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45건의 거부권 행사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행사는 헌법상 권리긴 하다. 또한 헌법이나 법률상 위배 된다면 몇 번이든 거부권 행사는 가능하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남용에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고자 지난 23일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열 번째 거부권 행사... "대통령 국정운영 방식, 심각한 하자 있어"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를 국회에 요구했어요. 취임 후 열 번째 법안 거부권 행사인데 이건 이승만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많은데 어떻게 보세요?
"87년 헌법 체제가 한계에 부딪힌 것 같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45개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렇게 거부권 남용한 건 국회와의 소통 거부한 이승만 정권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때 나름의 이유도 없지 않았습니다.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구성된 초기 단계에서 통치질서 내지는 정치체제의 기본적인 틀을 잡아가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시행착오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은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헌정 체제도 제대로 확립되어 있고 국회와 대통령 혹은 여야 사이의 소통 또한 별다른 장애 요소가 없습니다. 적어도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은 확보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국회 특히 야당과의 대화를 단절한 채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열 번의 거부권 행사는 그 결과이기도 하고요. 이것은 정치구조의 문제라기보다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당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완전히 뿌리 내리지 못했잖아요.
"맞습니다. 특히 대의제민주주의의 틀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상태에서 초대 국무총리의 지명을 계기로 국회와 이승만 대통령 사이에 깊은 갈등이 자리했습니다. 국회는 국정 운영을 주도하려고 했지만, 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국민을 직접 동원하는 체제를 만들어 나가면서 국회를 우회해 버렸습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이런 구조에서 정부가 국회의 입법에 관여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는 정치구조를 만들어가는 때였던 만큼 거부권 행사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국회와 정부 사이의 소통경로를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위원회 중심주의를 취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법률안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를 국회 본회의에서 하였던 만큼, 관련 장관이 직접 국회 본회의에 출석하여 재의요구의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고 국회의원들과 이를 지켜보는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열린 개원 7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4.5.22 |
ⓒ 연합뉴스 |
- 아까 교수님이 87년 체제의 한계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어떤 의미인가요?
"87년 헌법 체제는 6월 항쟁에 터 잡아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 집중되어 경우에 따라 민주적 정치과정이 변질되거나 왜곡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듭된 거부권 행사는 그 대표적 징후입니다. 헌법수호의 책무까지 부여받은 대통령은 3권을 초월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국회는 국회대로 여야의 축을 따라 양대 정당 체제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국민들이 정치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여야가 대화를 하지 못하고 서로 대립하게 되는 극단적인 상태까지 치닫게 되기 십상입니다.
여당이 원내 다수당을 차지하면 국회는 존재감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야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면 국회와 절대권력을 가진 대통령 사이에 힘의 대립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립을 해소하고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우리 헌법에는 없습니다.
문제는 정치가 이렇게 고착됨에도 국민들이 헌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국민발안이나 국민소환과 같은 제도는 물론이고 시민의회 등 국민 숙의 절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87년 헌법 체제의 한계는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 잘못되면 모든 정치질서가 유린되어 버리는 단적인 사례가 이번 정부의 경우인 상황인 것입니다."
- 왜 그렇게 된 건가요?
"6월항쟁 이전의 헌정 체제는 권위주의적 군사정부가 장악하였습니다. 6월항쟁에 이은 87년 헌법 체제는 이런 잔재들을 제대로 털어내었어야 했었고 그것도 국민들이 헌법개정의 주체가 되어 국민들의 헌법 체제를 만들어내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너무도 성급하게 새 헌법을 마련했습니다. 신군부 세력과 3김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부랴부랴 권력의 이양이 가능한 수준에서 통치 체제 일부분만 바꾸어 개헌에 합의하였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권교체 중심으로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들은 제대로 털어버리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실질적인 모습인 국가권력을 국민들에게 분산시키는 것임에도 여전히 권력은 대통령에게 집중시켰고 국민은 정치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통치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게 하였습니다. 결국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국가 운영 체제가 완전히 달라지는 잘못된 헌정사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 헌법에 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한 조항이 어떻게 되어있나요?
"헌법 용어로는 재의요구권이라 합니다. 우리 헌법은 국회에서의 입법 절차를 규정한 제53조에서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2항에서 대통령이 국회가 가결하여 송부한 법률안에 이의가 있으면 이의서를 붙여서 15일 이내에 국회에 환부하여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제4항에서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가 있을 경우,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하면 그 법률안은 그대로 법률로 확정된다고 합니다. 만약 이 찬성표를 얻지 못하면 그 법률안은 폐기된 것으로 처리됩니다."
- 그럼, 거부권 행사에 대한 요건 또는 기준 같은 건 없나요?
"헌법 제53조 제2항에서 법률안이 정부에 송부된 지 15일 이내에 재의 요구하게 하였고, 제3항에서 법률안의 일부 또는 수정하여 재의 요구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아 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외의 요건이나 조건은 달고 있지 않습니다. 거부권 행사를 전적으로 대통령의 재량에 맡겨 놓은 것입니다."
-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겉으로만 보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런 요건이나 조건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이 위헌이거나 공공의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한다고 판단될 때 재의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요건이 충족되었는가의 판단은 대통령이 하게 됩니다. 물론 그 대통령의 판단이 옳았는가 여부를 따지기 위해 헌법재판소나 법원에 갈 수는 있겠지만, 그 헌법재판소나 법원 또한 대통령의 사람으로 구성되기 십상인 우리 헌법 체제에서 그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도 외형상으로는 헌법위반이 주된 이유로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조건을 붙이는 건 실질적인 처방이 되기 어려울 듯합니다.
다만 이 거부권의 존재로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도 커지게 된다는 점은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입법권에 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거부권 행사입니다. 반면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그 외에도 대통령 또는 대통령이 수반인 정부에게 법률안 제출권에서부터 예산안편성권까지 폭넓게 입법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행령 통치와 같이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을 우회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여지도 폭넓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거부권은 엄청난 힘으로 증폭될 수 있고 반대로 대통령의 이런 권한 앞에 선 국회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하고 미약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만약 헌법을 개정하게 된다면 정부의 예산안편성권이나 법률안 제출권 등을 삭제하거나 혹은 국회가 재의결할 수 있는 정족수를 지금의 2/3 이상의 찬성에서 3/5 이상 수준으로 낮추어 국회의 입법의사가 보다 쉽게 관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 그러나 요건이 없으면 대통령 마음대로 하잖아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재량 권한도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대통령의 권력이 너무 강해서 문제이기는 하지만, 역으로 입법 독재라 지칭되는 국회의 독주도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유주의 헌법의 특징인 권력분립제도의 요체이고요. 권력분립의 원칙은 국가기관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을 요구합니다. 예컨대, 국회는 국무총리의 임명에 대한 동의권을 가집니다. 국회가 행정부의 조직에 관여하여 대통령의 인사 독주를 막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법률안 거부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가 입법권을 남용하지 않도록 대통령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이것이 견제와 균형에 기반한 삼권분립의 틀입니다.
그렇다고 이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거부권의 행사는 국회와 대통령이 입법안을 두고 서로 자신의 판단이 정당한 것임을 국민들에게 판단 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는 물론, 거부권 행사하는 대통령 또한 국회뿐 아니라 국민과도 부단하게 대화하고 또 설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거부권의 행사 그 자체가 대통령의 또 다른 독단행위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박정훈 대령이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에서 열리는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관련 항명 혐의 제4차 공판에 출석하는 가운데, 해병대예비역연대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특검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 권우성 |
- 채상병 특검법 같은 경우 핵심이 채상병 사망 사고 수사에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잖아요. 즉, 대통령실이 수사 대상으로 될 수밖에 없어서 거부권 행사하는 게 맞냐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 그 부분이 이 사태의 요체에 해당합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법률안 거부권이라는 고유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법 이전에 법의 일반원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공직자의 이익충돌 회피 의무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재판관이 되지 못한다는 원칙 말입니다. 자기의 문제를 자기가 판단하거나 또는 자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에 대해 자신이 어떤 처분을 하는 것은 법적 정당성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정확하게 이 지점에 자리합니다. 수사 대상이 종국에는 대통령실로 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사가 윤석열 대통령에까지 이어질 것이냐의 여부는 수사가 진행되어 봐야 알 것입니다. 다만, 대통령실도 엄밀히 본다면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한 부분입니다. 대통령실의 행위는 곧 대통령의 행위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채상병 특검법은 바로 대통령 자신에 관한 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게 됩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익충돌 회피 의무를 위반한 셈입니다. 비록 특검법안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불편함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연관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에 함부로 그 법안의 존재를 부인하는 조치를 취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 야당에서는 채상병 사망사고 수사외압에 대통령실이나 윤 대통령이 연관된 게 드러날 경우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한 게 탄핵 사유로 될 수 있다고 하던데.
"나중에 대통령이 수사 대상으로 되어 위법행위가 드러났을 경우 그 점을 탄핵 사유로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런 경우를 우려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헌법 위반이나 법률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즉 탄핵 사유로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만 다른 이유로 해서 탄핵 심판이 진행될 때 대통령이 이익충돌 회피 의무를 위반하여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채상병 특검이 작동되는 것을 방해했다는 사실은 탄핵 사유로서 중대성 요건의 판단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21일 오후 브리핑을 열고 "25년간 13회 특검법 모두 예외 없이 여야 합의에 따라 처리해 왔다"며 "야당의 일방처리 법안은 여야가 수십 년 지켜온 헌법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해요. 특검법은 합의 처리 하지 않으면 안되나요?
"특권법뿐만 아니라 모든 법률안이 여야의 합의로 처리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하지만 경우에 따라 그럴 상황이 못 되는 경우에 다수결로 처리하는 것이 하냥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대의제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틀이 다수결 원칙이니까요. 더구나 지금까지 세 차례의 특검법안이 원내 다수당의 일방적 의사진행으로 통과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대북 송금 사건 특검법이었습니다. 그때는 민주당이 완전히 퇴장한 상태에서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특검 수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여야 합의로 특검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헌법 관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합의 처리되는 것이 좋다는 정치적 바람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덧붙이는 글 | '전북의 소리'에 중복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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