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이등병 강등 징계 폐지
참모총장 등 8명 장성 이등병 강등
병사 전역 취소해 강등하기도
그러나 현재 법적으로 이등병 강등은 불가능하다. 1994년 해당 징계가 이중처벌이라는 이유로 법령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현재 강등은 최대 1계급만 가능하다. 또 장교에서 준사관으로 강등시키거나 부사관에서 병으로는 강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장교 중 최하 계급인 소위와 준사관인 준위, 부사관 중 최하 계급인 하사는 계급 강등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들의 쿠데타 혐의는 40여 년이 지난후에 무죄로 밝혀졌다. 윤 사령관이 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술자리에서 “각하(박정희)는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형님(이후락)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 것이 청와대로 흘러가 쿠데타로 둔갑됐다는 것이다.
정씨는 훗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재판 받을 때만 해도 내가 이등병으로 강등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박탈당했다는 생각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81년 3월 사면복권된 데 이어 97년 7월 무죄 판결을 받아 복권됐다.
장 소장의 아버지는 TV를 통해 장 소장이 보안사에 끌려가는 모습을 본 뒤 매일 술에 의지하다 80년 작고했다.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 입학한 아들은 82년 낙동강변 야산 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꽁꽁 얼어붙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장 소장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비례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이때 그는 386세대 의원들에게 “12.12 쿠데타를 내가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 여러분이 그간 고생 많았다”라고 말했다. 2010년 사망했다. 2년후엔 장 소장의 부인도 아파트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전 전 대통령이 97년 내란수괴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이등병으로 강등됐다는 게 당시 주장의 근거였다. 전 전 대통령의 이등병 논란은 그러나 국방부가 그런 사실이 없음을 확인해주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참모총장 등 8명 장성 이등병 강등
병사 전역 취소해 강등하기도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을 받는 박찬주 육군 대장에게 최대의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별 넷을 작대기 하나로 바꾸는 이등병 강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3일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서는 박찬주 대장을 이등병으로 강등시키자는 청원이 시작돼 11일 오전까지 755명이 서명했다.
박찬주 대장의 경우 중장으로의 1계급 강등도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군인 징계위원회는 징계를 받는 당사자보다 선임인 3명이 참여하게 돼 있다. 박찬주 대장은 육군 내 서열 3위이기 때문에 징계위 구성이 안 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10일 군 서열 3위 이상인 고위급 군인이더라도 징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군인사법 개정안(일명 ‘박찬주 징계법’)을 발의했다.
━ ◇“각하 노쇠” 한마디에 이등병 강등, 12년 징역형 창군 이래 장성이 이등병으로 강등된 사례는 총 8번 있었다. 하지만 88년 12월에 병역법에 ‘계급 회복 제도’가 신설돼 대부분 복권됐다. 최초는 1973년 3월 군 고위 인사들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권좌에 올리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진 ‘윤필용 사건’의 당사자들이다. 이 사건으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소장)과 손영길(85) 참모장(준장), 김성배 육군본부 진급인사실 보좌관(준장) 등 핵심 주동자로 꼽힌 3명은 모두 옥살이를 하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군복을 벗었다.
2015년 대법원은 윤 사령관이 받은 11가지 혐의 중 수뢰 1개를 빼고는 모두 무죄라고 선고했다. 2010년 작고한 윤 사령관은 사망 이후에야 명예를 되찾았다. 손영길ㆍ김성배 장군도 각각 2015년ㆍ2010년 최종 무죄 판결을 받고 ‘쿠데타 오명’을 벗었다.
━ ◇전두환 정부, 병장 전역 강제 취소 뒤 이등병 강등 박정희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정승화 대장은 79년 12ㆍ12사태 당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에 체포됐다. 그는 신군부에 의해 ‘김재규 내란기도 방조혐의’로 군적을 박탈당하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전역했다. 최고 계급인 대장이 이등병이 된 최초 사례다.
12ㆍ12 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신군부에 맞섰던 장태완 소장은 이등병 강등, 옥살이 뿐 아니라 가족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었다. 그는 쿠데타에 협력할 것을 종용하는 신군부에게 전화를 걸어 “야! 이 반란군 놈의 XX들아. 너희들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가서 네 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고 말했다.
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전두환 정부에서 자행됐던 또 다른 이등병 강등 사례가 공개됐다. 1984년 8월 보충대 입영 장병 대상 대공설문 조사에서 “(해군) 이상석씨가 수상하다”는 내용의 설문이 발단이었다. 보안사는 그해 10월 22일 전역 예정이었던 이씨를 10월 15일 불러 불법 감금해 조사를 벌였다. 조사가 이어지면서 전역일이 돼 자동으로 풀어줘야 했지만, 보안사는 해군본부에 전역명령 취소를 명했다. 이씨는 11월 3일 구속됐고 군법회의에 회부돼 1년 징역과 이등병 강등을 당했다.
노태우 정부에선 이지문 당시 육군 중위가 군 부정선거를 폭로했다가 이등병으로 강등됐다. 1992년 3월 22일 군의 조직적 부정선거 행위를 폭로한 이 전 중위는 당일 체포돼 이등병 강등 뒤 불명예 전역해야 했다. 3년 뒤 재판을 통해 중위로 복권됐다.
━ ◇전두환 본인도 이등병 강등 논란 2012년 6월 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에 방문해 사열을 받으면서 정치권엔 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최고회의에서는 “명예가 생명인 장교 교육기관에서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이등병으로 강등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열을 받았다”며 “국가기강 문란행위”라고 비판했다. 인명진 전 새누리당 윤리위원장도 “전 전 대통령은 이등병이다. 이등병으로 강등됐는데 육사생도들에게 사열을 받았다”며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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