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반발에도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향해 소속 의원들이 갈수록 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안 전 대표를 가리켜 "외계인 같다"거나 "권력 금단현상"을 보인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잊혀질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며 그의 당권 도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 "잊혀질까 두려워 출마하는 것 같다"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은 8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안철수 전 대표와 전날 가진 면담 내용을 설명하며 의원들 사이에서 "명분도 명분이지만 권력의 금단현상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밝혔다. 황 의원은 "뭔가 본인이 제3정당 대표가 되면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 같고, 잊혀지는 불안감에서 출마하려는 게 아닌가 한다"고 했다.
황 의원은 안 전 대표와 의원들의 면담에서 전혀 진전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 전 대표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양보했고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이번에도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면담이 끝난 뒤 한 의원이 "안 전 대표는 외계인 같다"고도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호남에서도 의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 (대선에서) 그 정도밖에 안 나온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황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출마를 결정한 배경에 여당과의 통합설이 오르내리는 데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호남을 중시하는데 (그게) 국민의당 효과"라고 주장했다. 안 전 대표가 출마를 강행하면 탈당해 민주당으로 가는 의원이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대다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안철수, 독배 안마셔도 돼"
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진 천정배 전 대표는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출마했다'는 안철수 전 대표를 향해 "안철수가 독배를 마시지 않아도 제가 있으면 절대 더불어민주당과의 통합은 없다"고 말했다. 천 전 대표는 이날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안 전 대표의) 국민의당이 사라지고 민주당과 합쳐지는 것 아니냐는 건 지나친 상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당이 만들어진 역사와 대의를 생각해보면 (민주당과의 통합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면서 "우리당에서 저는 물론이고 아무도 민주당과의 통합을 얘기하지 않는다. 안 전 대표와 출마선언 전날 만났을 때도 '당신이 민주당에 갈진 몰라도 저는 죽어도 갈 일 없다'고까지 말했다"고 설명했다.
천 전 대표는 "(당 대표 출마는) 안 전 대표에게 도움이 안 되는 최악의 결정"이라며 "당 의원들이 출마하지 말라고 말리는 데도 무시하고 있다. 소통과 협치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안 전 대표의) 출마선언 전에 당내 많은 의원들을 만났는데 우리 40명 중에 (안 전 대표의 출마를) 찬성한 사람은 1명 있었던 걸로 안다"며 "다만 그분이 출마 결심하니까 어쩔 수 없이 도와준다는 분들도 생겼지만 '안철수 측근'이란 분들도 다 만류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 안철수 "정계은퇴 하라는 거냐"
안철수 전 대표는 7일 자신의 지역구였던 서울 노원구의 식당에서 시·구의원, 당원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지금 (당 대표 경선 출마를) 그만두라는 말은 (제게) 정계 은퇴를 하라는 말과 똑같다”면서 당내 불출마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간담회에서 “당이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며 “더 이상 (출마를) 늦추면 안 될 절체절명의 순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점을 거론하며 “다행히 제 출마선언을 기점으로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안 전 후보는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자신의 출마에 반대하는 조배숙 장병완 황주홍 이상돈 의원을 만나 “대선 패배 후 하룻밤도 제대로 못 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승리를 약속했다. 안 전 후보는 국민의당을 ‘불난 집’에 비유하며 “불을 끄는 데 제가 동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으나, 장 의원은 “안 전 후보는 이미 정치권에서 꺼진 불”이라며 불출마를 요구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당 내부에선 제보 조작 사건으로 신뢰를 잃은 당을 추스르기 위해 새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상황이다. 게다가 대선 패배로 내상을 입은 안 전 후보의 리더십엔 여전히 물음표가 달려 있다. 문제는 안 전 후보만큼의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당 관계자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최대 고민은 뉴페이스(새 인물)를 찾는 것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안 전 후보의 재등판까지 고려했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당 내홍은 격화되고 있다. 천정배 정동영 의원 등 후보들이 ‘반(反)안철수 연대’를 결성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상돈 의원은 “당에 전기충격을 줘야 한다는 안 전 후보 말은 속된 말로 ‘불싯(bullshit·헛소리)’”이라고 했다. 반면 안 전 후보와 가까운 의원은 “일부 세력이 ‘안철수 지우기’를 명분으로 당 정체성까지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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