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에 4일 초강경 입장 밝혀... "모두 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
[이정환 기자]
'개입', 당사자로 어떤 문제에 뛰어든다는 뜻이다. 그로 인해 변화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의견 조회', 제3자로 의견을 들어본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변화의 여지가 별로 없는 상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의 의견을 요청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부와 노동계의 해석이 엇갈렸다. ILO가 화물연대 상황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정부에 밝혔다는 것이 민주노총 입장이다. 정부 측은 '의견 조회'에 불과하다고 맞받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대책회의 브리핑에서 "ILO로부터 사무총장 명의로 서한이 온 것은 맞다"면서도 "이는 단순한 의견조회에 불과한 것으로 저희는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ILO 개입 여부와 상관없이 화물연대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답'은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윤석열 대통령, 화물연대 파업 대응 관계장관회의 주재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대응과 관련한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이는 같은날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초강경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통해 '범죄'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현재 진행중인 집단운송 거부" "정상 운행을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행위" "사후적으로 정상 운행 차주에게 보복하는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며 "모두 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는 자신들 이익을 위해 타인 자유를 빼앗고 경제 전체를 볼모로 잡고 있다"며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오는 6일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서도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 민생과 국민 경제를 볼모로 잡는 것은 미래세대와 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라고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지금 이 시점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범죄와의 전쟁'을 연상시키는 이와 같은 발언은 이틀 전과도 대비된다. 지난 2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발언은 "불법과 범죄를 기반으로 한 쟁의 행위에는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범죄를 기반으로 한 쟁위 행위"라는 말이 이틀만에 '운송 거부 = 범죄 행위'로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앞서 11월 29일만 해도 윤 대통령이 특정한 범죄 행위는 "운송 거부에 동참하지 않는 동료에게 쇠구슬을 쏴서 공격하는 것"이었다. 닷새만에 검찰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까지 구체적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 2022년 6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화물연대 관련 윤 대통령 발언은 이랬다.
"정부가 늘 개입해서, 또 여론을 따라가서 너무 노사 문제에 깊이 개입하게 되면 노사간에 원만하게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이 전혀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6월 10일 출근길 문답)
당시는 화물연대 총파업 돌입 나흘째가 되는 날이었다. 정부의 적대적 정책이 화물연대 파업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윤 대통령이 "적대적인 정책이요?"라고 반문하면서 내놓은 답변이었다. 정부의 중립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사실 '쟁점'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다른 장관들 입장과도 그 결을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었다.
당시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화물연대 문제는) 당사자들이 많이 얽혀 있기 때문에 국토교통부도 정책당국으로 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안전운임제나 일몰제 폐지 등 정책적 사항이 주된 쟁점이어서 통상적 노사관계와 다르다"고 발언했다.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이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그렇다면 우리가 각각 기업들과 만나 법을 직접 만들라는 말인지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내놓은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6월 14일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 협상이 타결됐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대화의 문을 열고 협상을 지속하는 한편 불법 집단행동에 대해 엄단 원칙을 지켜나간 원칙의 승리"라면서도 "어려운 민생 경제를 고려해 대화에 임해준 화물연대에 감사하다"는 입장도 함께 전했다. 당시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확대가 합의의 핵심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국회 또한 안전운임제 개정을 최우선으로 다루겠다고 약속했다.
▲ 화물연대 결의대회, 화물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 정부가 파업 중인 화물연대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11월 29일 오후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 승리 화물연대 결의대회’에서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노동기본권 보장과 안전운임제 전면실시 등을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 유성호 |
화물연대의 최근 파업은 정부가 당시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불신에서 비롯됐다. 당정협의를 통해 나온 현 정부의 입장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가 아닌 그 시한을 3년 연장한다는 것이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역시 화물연대의 불신을 더 부채질했다. 안전운송원가 산정에서 인건비 항목을 삭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한 불신은 최근 오히려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국민 경제를 고려해서 이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서 정부에 구체적인 타협안을 찾아가기 위한 논의를 지난 교섭 때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화물연대가 그런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토부에서는 '국토부에는 권한이 전혀 없다' '대통령실에 일단 보고를 해야 된다', 그래서 화물연대가 여기서 얘기하면 '자기들이 가서 보고는 하겠으나 이 자리에서 논의하거나 조율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답변을 하시더라고요.
(중략) 상대측으로 나온 국토부에서 어떤 권한도 없고 여기서 논의할 수 있는 게 전무하다고 말을 하니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황스럽고, 또 이게 정부 측에서 먼저 요청해서 나온 교섭임에도 불구하고 권한이 전혀 없다는 것이 정부에서 정말 대화의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라 당시 다음날 업무개시명령을 앞두고 명분을 찾기 위한 쇼가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예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중략) 저희 입장에서는 화물연대가 사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답은 정해져 있는 자리다라는 판단이 들 수밖에 없는 거죠." (11월 30일, YTN 뉴스라이더, 박귀란 화물연대 전략조직국장)
그리고 이날 화물연대가 마주한 답, '범죄와의 전쟁'인 셈이다. 6개월 전만 해도 '설마' 했던 답으로 보인다. 그때만 해도, 윤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었다.
"노동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은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6월 10일 출근길 문답)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