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이차전지) 3사의 수주잔고가 조만간 10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상반기 달성이 유력하단 관측이 나온다.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생산능력 확장과 중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폐지 등에 힘입어 전보다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된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최근 누계 수주잔고 290조원을 돌파했다. 합작사(JV) 결렬 가능성이 제기된 튀르키예(터키) 물량을 제외한 수치임에도 300조원을 목전에 뒀다.
업계 1위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고는 400조원을 바라본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지난달 27일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작년 말 기준 수주잔고가 385조원을 넘어섰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SDI는 창사 이래 쭉 생산능력·수주잔고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업계 추정 수치는 있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는 지난해 11월 펴낸 보고서를 통해 삼성SDI가 3분기 말까지 120조원의 수주잔고를 달성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SDI가 현재까지 140조원 안팎의 물량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드러난 수치만 보면 820조원 안팎이지만 기존 고객사와 합의를 마친 미계약 추가 주문 물량까지 더하면 1000조원에 육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SNE리서치는 작년 3분기 말 3사의 수주잔고가 700조원을 넘어섰으며, 1000조원 돌파가 가시권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추가 주문 없이도 2030년까지 3사의 전 생산공정을 100% 가동할 수 있는 물량이다.
업계는 지금과 같은 안정적인 물량 확보한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진행되는 설비투자가 내년부터 본격 가동되기 시작해 3사의 생산 물량이 급속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북미에서의 확고한 점유율 유지, 내재화 추진에 한계를 느낀 유럽의 러브콜, 중국의 보조금 폐지 수혜 등에 힘입어 주문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3대 폼팩터(배터리 외형별 분류)별 생산 경쟁력을 두루 갖췄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수요가 급증하는 원통형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가 세계 최정상급 기술력을 보유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하반기 세계 최초로 지름 46㎜, 높이 80㎜ 규격의 4680 배터리 양산에 돌입한다.
파우치·각형도 마찬가지다. 파우치형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이 소화 불가능할 정도의 주문이 쇄도하고 있고,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SK온이 자체 경쟁력을 바탕으로 반사이익을 거두는 상황이 지속된다. 중국계 기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각형 시장에서 삼성SDI는 초격차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배터리 분야의 최강자다.
한 배터리업체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생산능력 대비 주문량이 폭증해 수주잔고가 단시간 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던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내년부터 3사의 생산량이 급증한다고 해서 수주잔고가 급락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높은 수준의 제품 경쟁력과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금과 같은 안정적인 수주잔고가 2030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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