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68)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과거 러시아 브리지(카드 게임) 선수와 불륜을 저질렀다가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엡스타인은 성범죄로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 억만장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게이츠가 지난 2010년 당시 20대였던 러시아 출신 브리지 선수 밀라 안토노바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당시 게이츠는 55세로, 전처 멀린다 게이츠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멀린다와는 지난 2021년 이혼했다.
WSJ는 게이츠와 안토노바가 어떻게, 얼마나 만났는지 등에 대해선 전하지 않았다. 다만 안토노바가 지난 2010년 7월 한 유튜브 동영상에서 게이츠와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 영상에서 안토노바는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브리지 대회에서 게이츠를 만나 한 테이블에서 같이 게임했다”는 일화를 전하면서 “나는 그를 이기지 못했지만, 다리로 그를 차려고 했다”고 말했다.
브리지는 카드 게임의 일종으로 바둑이나 체스와 같은 두뇌 스포츠로 불린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브리지를 배운 게이츠는 브리지를 가장 좋아하는 취미로 꼽아왔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브리지를 하며 친분을 쌓았고, 게이츠와 버핏은 지난 2007년 한 브리지 대회에 짝을 이뤄 출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WSJ에 따르면 안토노바는 지난 2013년 브리지 게임을 대중화하는 온라인 교육사업을 구상했고, 50만 달러(약 6억6000만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게이츠의 측근인 보리스 니콜리치를 통해 엡스타인을 소개받았다. 엡스타인은 안토노바와 여러 차례 만나 그의 제안을 검토했지만 투자하지 않았다.
결국 자금 확보에 실패한 안토노바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가 되기로 결심하고, 코딩 교육 과정 수강에 필요한 돈을 빌려 달라고 엡스타인 등 여러 사람에게 부탁했다. 이때 엡스타인이 아무 조건 없이 돈을 내주겠다고 나섰고, 학교 측에 직접 수강료를 지불했다.
이후 엡스타인은 성범죄 혐의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JP모건과 함께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선기금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게이츠를 주요 기부자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게이츠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엡스타인은 지난 2017년 게이츠에게 e메일을 보내 안토노바에게 자신이 제공했던 코딩 교육 과정 수강료를 상환해달라고 요구했다. e메일을 본 소식통은 엡스타인은 실제로 그 비용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게이츠와 안토노바와의 불륜 관계를 알고 있고 이를 폭로할 수 있다는 협박의 의미로 보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게이츠 대변인은 “안토노바의 수강료를 상환하지 않았다”면서 “엡스타인과 금전적 거래를 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또 “게이츠는 오로지 자선사업 문제로만 엡스타인을 만났다”며 “엡스타인이 게이츠를 끌어들이는 데 계속 실패하자, 게이츠를 위협하기 위해 과거의 관계를 이용하려 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게이츠 대변인은 게이츠와 안토노바의 불륜 관계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안토노바는 게이츠에 대한 언급은 거부했으며, 엡스타인을 만났을 당시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는 “엡스타인이 범죄자이거나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며 “나는 엡스타인과 엡스타인이 한 일이 모두 역겹다”고 비난했다.
미 억만장자이자 금융계 거물인 엡스타인은 1990년대부터 10대 소녀 수천 명을 끌어들여 성 착취를 한 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지난 201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생전 미 억만장자들의 자산 관리를 하며 탈세 등으로 재산을 모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게이츠를 비롯해 고(故)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 빌 클린턴 미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석학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 등 정·재계와 학계의 유명인사들이 엡스타인과 친분을 맺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특히 게이츠는 지난 2011년부터 엡스타인과 여러 차례 만남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9년 엡스타인이 사망한 후 게이츠와 엡스타인의 친분이 알려지자, 게이츠는 대변인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엡스타인을 만난 것을 후회한다”며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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