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놀라울 정도로 발전..희생 헛되지 않아 한없이 행복"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그렇게 많은 미국인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기억해준 한국 대통령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6·25 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투로 꼽히는 1950년 겨울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미국인 레이먼드 밀러(88)씨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은 데 대한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문 대통령은 방미 당시 부모님이 장진호 전투 직후 함경남도 흥남에서 남쪽으로 내려왔다며 미군이 장진호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운 덕에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 해병대는 10배 이상의 중공군과 처절하게 싸웠다. 질서정연하게 퇴각하며 중공군에 치명타를 가함으로써 흥남철수작전 성공의 토대를 마련했다. 흥남철수작전으로 문 대통령의 부모님을 포함한 약 10만명의 피란민이 무사히 남쪽으로 내려왔다.
"혹한 속에서 제가 전투를 했던 장진호 남쪽 길의 피란민 행렬 속에 문 대통령의 부모님도 있었다는 사실은 저를 숙연하게 합니다."
밀러씨는 6·25 전쟁을 중단한 정전협정 체결(1953년 7월 27일) 64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중이다. 27일 정전협정 체결 기념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미 해병 병장으로 6·25 전쟁에 뛰어든 밀러씨는 1950년 12월 초 장진호 남쪽 하갈우리에서 고토리로 철수하던 나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미군은 중공군의 끊임없는 기습 공격을 격퇴해야 했다.
어느 날 밀러씨는 동료 두 명과 함께 야산에 대공 표지판을 설치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얀 눈으로 덮인 산을 오르던 중 왼쪽에 있던 동료가 중공군 저격수의 총탄을 맞아 쓰러졌다. 곧이어 두 번째 총성이 울리더니 오른쪽 동료마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밀러씨는 도망하지 않고 목표 지점까지 올라가 표지판을 설치한 다음, 두 시간 동안 눈 속에 숨어 중공군 저격수의 위치를 살폈다. 이때 그의 발은 심각한 동상에 걸렸고 지금도 완쾌하지 못했다.
"왜 동료 두 명은 죽고 저만 살아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를 회고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답니다."
중공군은 총과 수류탄, 박격포 등을 총동원해 미군을 괴롭혔다. 밤에는 휘파람이나 피리를 불어 불안감을 일으켰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은 중공군뿐 아니라 혹한과도 싸워야 했다.
고토리를 향한 행군 길에서 밀러씨는 한국인 피란민의 대열을 자주 목격했다.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밤이 되면 피란민들은 동사(凍死)하지 않으려고 여럿이 한 데 뭉쳐 체온을 나눴다. 바깥쪽에 있는 사람의 체온이 떨어지면 안쪽 사람과 교대했다.
지옥 같은 행군 끝에 마침내 고토리에 도착한 날 밤, 전투 내내 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은 씻은 듯이 맑게 갰고 별들이 총총히 빛났다. 유명한 '고토리의 별'이었다. 장진호에서 철수한 미군은 고토리의 별을 보고 마음의 평안을 회복했다.
20대의 나이에 이역만리 한반도에서 처참한 전투의 경험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밀러씨의 한국 방문은 2007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목숨을 걸고 젊음을 바쳐 지켜낸 대한민국을 60여년 만에 다시 보는 밀러씨의 감회는 어떤 것일까.
"6·25 전쟁에서 본 한국은 가진 게 없었지만,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 대열에 들었죠.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한없이 행복할 따름입니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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