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증도 없이 제3자 계좌로 건너간 1500만원 무죄
2년6개월 실형 선고한 1심 깨고 집행유예로 풀어줘
같은 시기 720만원 향응은 뇌물로 판단…“납득 어려워”
김형준 부장검사. 연합뉴스
고교동창한테 수천만원의 향응과 금품을 받고 수사 및 수감 관련 편의를 봐준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형준(47) 전 부장검사에 대해 항소심 법원이 “가까운 친구여서 경계심을 늦춘 점이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석방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김 전 부장검사가 지인의 생활비로 받은 1500만원을 ‘빌린 돈’이라고 판단한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일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는 김 전 부장검사(뇌물공여 등 혐의)에게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1500만원, 추징금 990여만원을 선고했다.
1·2심 판단이 갈린 것은 김 전 부장검사가 지난해 2~3월 지인 생활비 명목으로 김씨로부터 받은 1500만원 현금 부분이다. 1심 재판부는 이 돈을 장래 형사사건이나 수감생활 관련 편의제공의 대가라고 본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빌린 돈’이라고 판단했다. 김 전 부장검사와 김씨가 각각 “나중에 개업하면 이자 포함 곧바로 갚을 테니”, “이자는 필요없다. 친구야”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점을 주목해 변제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김씨가 자신과 지인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어서 김 전 부장검사로서는 김씨에게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단 점도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6월 김씨가 “너 연락도 없고 입금된 것도 없다. 변제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내가 알아서 할게”라며 김 전 부장검사에게 반환을 요구한 것을 두고도 재판부는 “뇌물로 준 돈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단순히 ‘내가 준 돈을 달라’거나 ‘가져간 돈을 내놓아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재판부가 뇌물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했단 비판이 나왔다. 통상 뇌물이 ‘빌린 돈’이 되려면 돈을 빌릴 필요성과 변제 의사, 독촉이 있었다는 점 등이 증명돼야 한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차용증을 쓰지도 않았고, 돈이 제3자 계좌를 통해 은밀하게 건너간 점을 주목했다. 김 전 부장검사가 일부 금원에 대해선 반환을 약속하지 않았고, 평소 변호사 개업 의사를 드러낸 적이 없는 이상 “갚겠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재정 곤란을 겪던 김씨가 회삿돈을 유용해 1500만원을 마련했고 김 전 부장검사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 김 전 부장검사의 직업과 소득 등을 볼 때 1500만원은 신용대출을 받거나 가용소득을 모아서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특히 김 전 부장검사가 돈을 돌려준 시점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해 4월 김씨가 횡령 혐의로 고소당한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이 노출될 것이 두려워 나흘 뒤 제3자를 통해 반환을 시도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김 전 부장검사가 (지인과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고, 금전 거래가 뇌물로 의심받을 여지가 많다는 염려를 했을 것”이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가 두 사람이 수년에 걸쳐 향응·금품과 수감·수사 편의를 주고받은 전력을 볼 때, 이 돈을 ‘스폰’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고 본 것과 대조된다.
항소심 재판부가 1500만원을 빌린 돈이라고 하면서도, 비슷한 시기(2015년 6월~2016년 3월) 제공된 720여만원의 향응에 대해선 “통상의 교분에 필요한 비용이라기엔 과도하다”며 뇌물로 본 것도 모순된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부는 김씨가 김 부장검사에게 제공한 술 접대 등 명목의 향응은 (장래 담당할) 직무에 대한 대가라고 봤다. 김 전 부장검사가 향응을 받은 직후인 지난해 4월 자신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검찰청에 김씨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게 하고, 5~6월엔 김씨 사건 담당 검사와 접촉하는 등 수사 및 수감 관련 편의를 제공한 점이 근거였다. 하지만 유독 현금에 대해서는 김씨가 “(나중에) 돌려받을 생각 없이 (그냥) 준 것”이란 취지의 진술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김씨가 일관성 없이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며 김씨 말을 배척하고 ‘빌린 돈’으로 판단한 것이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같은 시기 같은 목적으로 건너간 돈을 두고 향응은 돌려받을 수 없으니 뇌물이고, 금품은 돌려받을 수 있으니 빌린 돈이라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달 정운호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김수천 전 부장판사에 대해 징역 5년으로 감경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판사가 장차 항소심에서 관련 사건을 맡아 정씨에게 유리하게 업무를 처리하여 줄 것을 기대하면서 금품을 공여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뇌물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6602.html?_fr=sr1#csidx40df1e23d6ef6dfb023a1b6da3290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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