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154]
98년부터 대통령 인맥 분석한 ‘~파워엘리트’ 시리즈
가족·측근·참모 등 박근혜 인사 180여명 소개

밀착형·편승형·분리형·저항형 유형 나뉘어
최순실·정윤회 등 이름 쏙 빠져 ‘비선 인증’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3월 대통령 비서실장 및 정무특보단에 임명장과 위촉장을 수여한 후 퇴장하고 있다.2015.3.16.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3월 대통령 비서실장 및 정무특보단에 임명장과 위촉장을 수여한 후 퇴장하고 있다.2015.3.16. 청와대사진기자단
매일경제신문사에서 2013년 1월 16일 펴낸 ‘박근혜 시대 파워엘리트’라는 책이 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물 180명의 프로필을 모은 책입니다. 책 뒷면에 “박근혜 정부의 핵심 브레인을 알면 미래 대한민국이 보인다”, “이들의 도움 없이 대한민국호는 절대 순항할 수 없다. 박근혜 당선인 못지않게 박근혜 시대에 활약할 새로운 파워엘리트 분석이 필요한 이유이다”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사는 1998년부터 대통령 당선자의 인맥을 분석한 책을 내고 있습니다. ‘디제이 시대 파워엘리트’, ‘노무현 시대 파워엘리트’, ‘이명박 시대 파워엘리트’가 있습니다. 최근 ‘문재인 시대 파워엘리트’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박근혜 시대 파워엘리트’를 다시 펼쳐본 것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최근 법원에서 1심 선고를 받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부 장관 때문이었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법정에 출두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징역 3년이 선고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고 합니다. 조윤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저에 대한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1심 선고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무거운 처벌을 피했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화려했던 과거를 되찾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범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급전직하는 어쩌면 수직상승의 대가인지도 모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습니다.
2013년 새해를 박근혜 당선자와 함께 활짝 열어젖혔던 사람들은 아마도 천하를 한손에 거머쥐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불과 4~5년 뒤 자신들의 처지를 알았을까요? 잘 몰랐을 것입니다.
‘박근혜 시대 파워엘리트’라는 책은 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을 가족과 친인척, 측근 그룹, 정책 참모 그룹, 핵심 보좌관 그룹, 외부영입 그룹, 원로 및 기타 그룹, 인수위 그룹 등으로 나누어 소개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파워엘리트는 누구였는지, 그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권력과의 관계 및 이후 정치적 행보에 따라 이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권력 밀착형’입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장관처럼 대통령 권력에 올라탔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몰락한 경우입니다. 권력의 생리가 본래 그런 것인지, 이들이 유난히 아둔한 사람들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둘째, ‘권력 편승형’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만 감옥에 보내고 자신은 무사히 빠져 나와 시치미를 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서청원 최경환 등 친박 국회의원들이 대개 여기에 해당합니다. 권력의 전성기에는 올라타서 영화를 누렸고 퇴조기에는 귀신처럼 빠져 나왔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셋째, ‘권력 분리형’입니다. 대통령 권력과 거리를 두는 바람에 영화를 누리지 못했지만 그 때문에 나중에 별다른 피해도 입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박근혜 정부 전성기에 이들은 무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몰락하자 지혜로운 사람들로 재평가 받고 있습니다.
넷째, ‘권력 저항형’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선·독주에 적극 맞서 싸우는 바람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탄압받고 고난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주위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지만 현실 정치에서 보상을 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인물들은 이 가운데 어느 유형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 가족과 친인척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은 박근령씨와 박지만씨입니다. 부모의 형제가 많기 때문에 친인척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재임기간 동안 이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한 탓에 친인척과 관련한 큰 잡음은 없었습니다.
대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최순실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형제나 친인척보다도 훨씬 더 가깝고 모든 것을 의존했던 사람입니다. 최순실씨의 이름은 ‘박근혜 시대 파워엘리트’라는 책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정윤회라는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 최대 실세였던 최순실씨와 정윤회씨의 이름이 아예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확실히 ‘비선(?線)’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촌으로는 박재홍 전 국회의원,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씨,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의 부인 박설자씨 등이 있습니다. 박영옥씨는 2015년 2월 별세했습니다.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꽤 비판적이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렸을 때 “5천만이 시위해도 절대 안 물러날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한승수 전 장관, 김세연 의원, 윤석민·장덕진 전 의원, 가수 은지원씨 등 수많은 친인척이 있지만 대통령 권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김세연 의원은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적극 찬성했고 지금은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 측근 그룹
2013년 1월 당시만 해도 친박계 핵심으로 꼽힌 사람은 김무성 전 선대위 총괄본부장, 이학재 전 비서실장, 서병수 사무총장, 이정현 전 공보단장, 권영세 전 종합상황실장 등이었습니다.
대선 당시 원외였던 김무성 전 본부장은 2013년 4·24 재보선에서 부산 영도에 출마해 당선됐고, 2014년 7월 14일 전당대회에서 새누리당 대표가 돼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대표 재임기간 내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했고, 2016년 총선 공천에서 이른바 옥새파동을 일으키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갈라섰습니다. 탄핵에 앞장섰고 유승민 의원과 함께 바른정당을 창당했습니다.
이학재 전 실장은 입이 무거운 사람입니다. 평생 박근혜 전 대통령 옆에 있을 것 같았지만 결별했습니다. 지금은 바른정당 소속입니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부산시장이 됐습니다. 일찌감치 중앙정치에서 떠난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정현 전 단장만큼 박근혜 정권과 영욕을 함께 한 사람을 찾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덕분에 3선 국회의원이 됐고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이 됐고 당대표가 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탈당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무소속 지역구 국회의원입니다.
권영세 전 상황실장은 본래 친박계가 아니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며 측근이 됐습니다. 대선 이후 중국대사로 나갔다가 2016년 20대 총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유정복 전 직능본부장은 서병수 부산시장과 마찬가지로 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인천시장이 됐습니다. 인천시장으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홍문종 전 조직본부장은 자유한국당에서 친박 정치인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홍준표 후보가 친박세력을 바퀴벌레에 비유하자 “제정신이냐. 낮술 먹었냐”고 반박한 일이 있습니다.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지만 기초연금 정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됐습니다.
이주영 전 특보단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2016년 8·9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나섰지만 이정현 후보에게 졌습니다. 전당대회 낙선이 그에게는 새옹지마 아니었을까요? 지금은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직후보자 추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겼습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찍힌 현역의원들을 밀어내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운 신인들을 대거 집어넣는 ‘박근혜 공천’을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결과는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참패였습니다.
황우여 당대표는 2014년 8월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해 2016년 1월까지 행정부에서 일했습니다. 20대 총선에서는 인천연수에서 인천서을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선대위 실무진 중에서 백기승 전 공보상황실장은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지냈고 인터넷진흥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신동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과 정무비서관을 지냈습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권영진 전 전략조정단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대구시장에 당선됐습니다. 서장은 전 종합상황실 부실장은 국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히로시마 총영사를 하고 있습니다.
선대위 공식라인에는 없었지만 그 당시에도 ‘숨은 실세’로 불렸던 사람이 최경환 의원이었습니다. 최경환 의원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내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입각했습니다. 가히 박근혜 정권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13년 10월 재보선 화성갑에 출마해 화려하게 국회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2014년 7·14 전당대회에 출마했지만 김무성 후보에게 졌습니다. 그 뒤로 ‘친박좌장’이라 불리며 친박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지금 8선의 현역 국회의원입니다.
윤상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임이 두텁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내내 친박세력의 숨은 실세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가 터진 뒤 들어선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2017년 1월 최경환·서청원 두 사람은 당원권 정지 3년, 윤상현 의원은 당원권 정지 1년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계파갈등으로 분열을 일으켰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5월9일 대선 직전 홍준표 후보가 징계 해제를 선언했고 대선 직후 징계는 해제됐습니다.
이밖에 2013년 당시 유명했던 친박 의원들로 한선교, 서용교, 김재원, 김회선 의원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한선교, 김재원 두 사람은 20대 국회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공보단장을 하다가 하차한 김병호 전 의원이 있었는데 지금 언론진흥재단 이사장입니다.
친박계 의원 명단에는 유승민 의원도 있었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계가 많이 멀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는 이후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당선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를 원내대표직에서 쫓아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은 박근혜 정권 몰락의 서막이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2017년 5·9 대선에 바른정당 후보로 나서서 4등을 했습니다.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이혜훈 의원도 있었습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밖에 났지만 20대 총선에서 국회 재진입에 성공했고 탄핵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얼마전 바른정당 6·26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2013년 당시 조윤선 전 장관의 신분은 당선인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박근혜의 여자’로 여성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차례로 지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돼 재판을 받았지만 최근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정권의 신데렐라에서 감옥생활까지 겪은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 정책참모 그룹
당시 안종범 의원은 정책 메시지 단장이었습니다. 그는 2014년 6월 비례대표직을 그만두고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2016년 5월에는 좀더 요직인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는 청와대 수석을 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법적 지시를 그대로 이행했고 또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재판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지식인이 권력의 불법 행위에 가담했다가 몰락한 최악의 사례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대학교수 출신 강석훈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재선에 실패한 뒤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 생활을 함께 마무리했습니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외곽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만든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권 초기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밖에 났고 박근혜 정부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김상조 교수와 함께 문재인 후보 캠프에 전격 가담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국가미래연구원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자리 공약을 총괄한 노동정책 전문가 이종훈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승민 의원과 가까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견제를 받았고 20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바른정당에서 정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일찌감치 윤병세라는 인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외교부 장관 초기 그에게는 ‘오병세’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장관을 오년동안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습니다. 예상은 현실이 됐습니다. 그는 2017년 대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김장수 전 장관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이었고 국민행복추진위원회 국방안보추진단장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그는 국가안보실장, 주중대사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정권을 넘나들며 출세하는 사람들은 비결이 뭘까요?
■ 핵심 보좌관 그룹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기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정치를 하지 않는 보좌관들을 신뢰했습니다. 2013년 1월 박근혜 당선인 곁에는 이재만 보좌관,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 있었습니다. 이춘상 보좌관은 대선기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고리 3인방’은 청와대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다른 보좌관들이 가세했고 언론은 이들에게 ‘10상시’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정호성 비서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연결고리였습니다. 구속된 상태에서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재만 보좌관은 청와대 총무비서관, 안봉근 비서관은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했습니다. 이들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세 사람 이외의 보좌관들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박근혜 시대 파워엘리트’ 책에서 핵심 보좌관 그룹으로 소개한 사람들은 장성철·음종환·이창근·장경상·이희동·이동빈·남호균·김춘식·이춘호씨 등입니다.
■ 외부 영입 그룹
당시에는 김종인·김성주·안대희 세 사람을 이른바 ‘영입파 트로이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김종인 전 의원은 2012년 12월 대선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결별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내내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표의 요청으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민주당 총선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다시 문재인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민주당을 탈당해 대선출마를 선언했다가 포기하는 등 곡절을 겪었고 지금은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대선 캠프에서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를 2014년 5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전관예우 의혹으로 낙마했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 서울 마포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습니다. 김성주 전 공동선대위원장은 2014년 10월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됐고 최근 물러났습니다.
동교동계에서 영입한 한광옥 전 의원은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가 탄핵 국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했습니다. 김경재 전 의원은 청와대 홍보특보를 지냈고 자유총연맹 중앙회 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한화갑 전 의원, 김지하 시인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지만 특별한 보상을 받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영입 인사들 중에는 변추석 전 선대위 홍보본부장도 있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냈습니다. 조동원 전 홍보본부장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영입한 광고전문가입니다. 경기도 혁신위원장,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을 했습니다. 2016년 총선 공천 파동을 유머로 꾸민 ‘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가 조동원 본부장 작품이었습니다.
■ 원로 및 기타 그룹
‘7인회’ 멤버는 김용환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현경재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장이었습니다.
세간에는 이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문그룹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누구로부터도 자문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7인회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된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습니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은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며 박근혜 정권의 2인자로 군림했습니다. 그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김용환 전 고문은 2017년 4월 별세했습니다.
기타 그룹으로는 조해진 의원, 안형환·정옥임 전 의원,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김선동·구상찬 전 의원, 유영하 새누리당 군포시당협위원장이 박근혜 당선인을 물밑에서 지원한 인사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유영하 변호사가 지금 법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 인수위 그룹
헌법재판소장을 지냈던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됐지만 곧바로 낙마하는 불명예를 겪었습니다.
인수위원회 분과 22명 가운데 7명이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었습니다. 고용복지분과 간사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 옥동석 인천대 교수,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 윤병세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경제1분과 위원 홍기택 중앙대 교수, 경제2분과 위원 서승환 연세대 교수, 고용복지분과 위원 안종범 의원과 안상훈 서울대 교수 등입니다.
최성재 교수가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옥동석 교수는 조세재정연구원장·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홍기택 교수는 산업은행 회장, 서승환 교수는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각각 발탁됐습니다.
박근혜 당선인 비서실장이었던 유일호 의원은 정부 출범 뒤 새누리당으로 돌아가 대변인, 정책위의장을 했고, 2015년 3월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발탁됐습니다.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2016년 1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아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였던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는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으로 갔다가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이 됐습니다. 인수위 그룹에서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 도중 대형사고를 치고 물러났습니다.
권력무상(權力無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습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정치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중요한 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쥐고 있을 때는 가장 막강한 것이 정치권력입니다. 내려놓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치권력의 주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을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파워엘리트들도 이런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